작품은 배우를 잘 만나야 성공한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잘 만나야 산다. 그것은 작품이 크고, 배우가 유명하고와는 별개다.영화에서도 궁합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원(21·단국대 연극영화과 2년)에게 첫 영화 ‘진실게임’은 행운이었다.
'진실게임'으로 대종상 신인상
"묻어뒀던 분노 폭발하듯 연기"
‘진실게임’은 무슨 대단한 작품도, 빼어난 예술영화도 아니었다. 돈이 없어 억지로 찍었고, 그러다보니 스타를 쓸 수 없었다.
그렇지만 하지원으로서는 연기를 마음대로 펼쳐보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마다 양념삼아 기용하는 신인으로서는 정말 귀한 기회였다.
하지원은 그 기회를 결코 헛되이 낭비하지 않았다. “이 한번으로 내 인생의 모든 것이 결정될 수 있잖아요.”
인기가수 팬클럽 회장인 여고생으로 나온 그녀와 검사인 안성기의 심리 대결이 영화의 거의 전부인 ‘진실게임’에서 그는 조금도 어색해 하지 않았다.
그의 이중성은 안성기가 “저 꼬맹이한테 너무 당하는거 아니야”라고 할 정도로 강렬하고 매서웠다. 영화는 흥행에 참패를 했지만, 그 매서움으로 하지원은 올해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 여우주연상을 따냈다.
그래서 그는 ‘진실게임’이 아버지 같고, 데뷔작 ‘진실게임’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사람들이 그 영화를 잘 모르면 가슴이 아프다.
신인상 수상으로 이미지나 인기가 아닌 연기하는 배우로 출발한 하지원. 그 강렬한 인상은 혼자만이 아닌 일곱명이 함께 하는 공포영화 ‘가위’(22일 개봉·28일자 18면 소개)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인간으로서의 소외와 안타까움, 귀신으로서 분노와 복수라는 이중역할. 은주는 분명 공포의 중심이었다.
그와 최정윤(선애 역)의 연기로 ‘가위’는 할리우드의 어설픈 모방 냄새가 진하지만 공포물로서 살아났다. “촬영 때 내가 표현하고 싶은대로 되면 온몸에 소름이 끼쳐요. 평소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식혀 놓았던 가슴 속에 있는 분노나 화가 영화에 나오는것 같아요.”
연기를 하게 된 동기 역시 그렇다. 고3때 서울서 수원으로 전학을 간 하지원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싫어”하는 급우들 속에서 지냈다.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나누고, 소리도 질러보고 싶은데. 그러다 우연히 대본을 읽었다.
“정말 가슴 속에 눌려있던 모든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배우가 되기로 했다. 그리고 1년 반 동안 연기 수업을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산을 뛰고, 비디오 드라마 보고 실제 연기자와 나를 비교하면서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따금 단역으로 얼굴을 비치는 자신의 처지. 우울증이 왔다. 재즈를 배웠다. 자유롭게 춤을 추면서 당당하고 대담해졌다.
그리고 ‘진실게임’과 드라마 ‘학교 2’오디션에 나갔다. 둘 다 뽑혔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이미지의 여고생이었다. ‘느낌대로 했어요. 촬영 전 미리 현장에 가서 그 분위기와 친해지려고 했죠. 감정에 거짓이 없어야 연기가 나와요.”
그의 연기가 강렬한 이유는 눈빛이다.
천성적으로 그는 눈을 통해 감정을 이야기한다. 배우에게 강한 눈빛은 분명 장점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하지원은 악녀 역을 두 번 했다. 그것을 조금 정화해보고 싶다는 하지원. 아직 해보고 싶은 연기가 많은 ‘연기하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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