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후 86명 사망, 4500명 부상]
오토바이와 싼 시급으로 10대들 유혹
무면허 알고도 부모 동의 없이 일 시켜
사망사고 나도 업주는 벌금형 30만원뿐
경기 이천시 삼거리 바닥에 앳된 10대 소년이 쓰러졌다. 지난해 8월 5일 오후 6시 11분 사고 현장에서 200m가량 떨어진 떡볶이 가게 소유의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달리던 아이는 왼쪽에서 다가오는 경차를 발견해 속도를 줄였지만, 과속방지턱을 넘은 뒤 중심을 잃고 오토바이에서 튕겨 나갔다. 소년은 달려오던 차량에 그대로 머리를 부딪쳐 사망했다. 당시 목숨을 잃은 유다윗군의 나이는 고작 15세(중학교 3학년). 원동기장치자전거(오토바이) 면허 취득(16세 이상 가능) 조차 불가능한 어린 소년은 어쩌다 떡볶이 가게 배달 오토바이를 몰았고, 비참한 죽음에 이르게 됐을까.
이후 경찰 수사에 따르면 유군의 죽음을 막을 수 있던 장치들은 어른의 이기심에 의해 철저히 무력화되어 있었다. 무면허임을 알면서도 설득하고 유혹해 고용했고, 헬멧을 쓰지 않은 채 다녀도 방치했다. 철없이 배달 일에 뛰어든 아이들을 말리기는커녕, 부추기고 이용까지 했다. 올해 4월 제주 도로에서 쓰러진 고교 2학년 김은범(17)군도 오토바이 면허를 따기 전이었음에도 닦달하는 업주에 못 이겨 배달에 나섰다가 세상을 떠났다. 아이를 무면허 오토바이 배달로 내몰아 사망에 이르게 한 업주는 고작 3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졌을 뿐이다. 푼돈만 쥐여줘도 오토바이에 오르는 아이들을 부모 동의 없이 고용했고, 현행법은 이러한 어른들의 편이었다.
한국일보가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10대 사망자 산재 신청 자료에 따르면, 유군과 김군처럼 배달을 하다 사망한 10대 청소년은 2010년 이후 현재(2018년 10월)까지 86명에 달했고, 부상자는 4,500명을 넘어섰다. 올해 4월 경기 고양시에서 사망한 고교 2학년 윤상민(가명ㆍ17)군의 아버지 윤현식(가명)씨는 “사망 사고 후에야 상민이가 밤에 오토바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라며 “자식에게 오토바이 타라고 허락할 부모가 누가 있겠느냐”고 말하면서 눈물을 쏟았다.
◇떡볶이 먹으러 오던 중학생이 배달원으로
유군은 사망 닷새 전 해당 떡볶이 가게 업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당시 배달원이 부족했던 업주는 과거 배달대행업체를 통해 유군이 배달 일을 딱 한 번 했던 사실을 기억해냈다. 유군은 이전에도 중학교 교복을 입고 이곳을 드나들며 떡볶이를 먹곤 했다. 유군이 중학생임을 모를 리 없었지만 그는 다급함이 앞섰다. 업주는 주변 고등학생 배달원들로부터 유군의 전화번호를 확보해 “사흘만 일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유군은 이를 받아들였다. 면허증에 대한 질문은 빠져있었다. 계약은 ‘시급 9,000원’으로 간단했다.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그렇게 사흘간의 단기 계약이 끝나던 날, 업주는 다시 유군에게 “시급을 올려줄 테니 더 일하자”고 제안했고, 나흘째 되던 날 유군은 사고를 당했다. 아버지 유재천씨는 “아들이 오토바이 타기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 평소 크게 혼냈다”라며 “가족 몰래 타다 걸려 야단친 뒤에는 용돈을 두둑이 주며 달랬고 자전거를 사주기도 했고, 주말마다 친척 집에 보내는 등 오토바이와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유군을 이용하려던 어른들은 비단 떡볶이 가게 주인만이 아니었다. 급한 대로 저렴한 일당만 주고 아이들에 일을 시키려는 업주들은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아이의 심리를 파고들었다. 이천 시내 배달대행업체와 족발집 등은 기존 배달 청소년들로부터 알게 된 유군에게 ‘러브콜’을 보내왔다. 이들은 한 번도 유군이 중학생인 사실, 필연적으로 무면허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았다. 아버지 유씨는 “한번은 아들에게 배달 일을 줬다고 의심되는 가게에 찾아가 면허도 없는 애한테 이런 거 시키면 고소하겠다고 난리를 피웠다”라며 “인근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절대 일을 시키지 못하도록 강하게 얘기했지만 별수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이 배달 일을 시킨 족발집을 고소하면 아이도 처벌받는다고 했지만 이를 감내하고 고소장을 제출했어요. 결국 족발집은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고, 무면허인 아이만 보호관찰 1년을 받았습니다.”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업주들에 의해 유군은 다시 배달 일을 맡았고, 끝내 도로 위에서 숨을 거뒀다.
유군의 중학교 선배 최한별(가명)군은 “일부 대형 프랜차이즈를 제외하고 소규모 음식점 10곳 중 8곳은 아예 (오토바이)면허 확인을 안 한다”라며 “서류를 가져오라고 해도 제출하지 않으면 굳이 확인을 안 할 정도로 허술해 무면허로 고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최군은 또 “배달대행을 하다 보면 바쁠 때는 20분 안에 3, 4개 배달을 완료해야 할 때도 있는데 10분도 안 돼 가게에서 독촉 전화가 온다”라며 “배달대행업체별로 하루에 한 번은 사고가 난다고 보면 되고 다섯 번 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면허 탈락에도 “가게가 급한데 나가야지”
지난 4월 8일 배달 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은범(17)군도 상황은 비슷하다. 부모님과 떨어져 제주도에서 누나들과 살던 은범군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이전에도 이마트에서 물건을 옮기거나 가게 서빙을 보는 등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그런 김군은 어느 순간부터 배달 아르바이트에 눈을 돌렸다. 평소 오토바이를 타진 않았지만 배달 일로 더 나은 시급을 받는 것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 마침 친구가 일하던 족발 가게에 자리가 생겼고, 김군은 일을 하고자 오토바이 면허 시험에 응시했지만 실기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친구 정지훈(가명)군은 “사장님한테 은범이가 면허시험에 떨어져 합격 후 출근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홀 서빙부터 하면 된다며 당장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오후 5시부터 자정까지 근무로 받은 돈은 일당 5만원. 150만원이 채워지면 월급을 주는 구조로 근로계약서는 역시 없었다.
하지만 사장은 돌변했다. 김군 출근 첫날 사장은 정군에게 전화를 걸어 위치를 확인한 뒤 “그렇게 배달 나갔을 때 주문이 또 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냐. 가까운 곳은 은범이에게 배달을 시켜라”라고 말했다. 정군은 이에 “일주일 뒤면 면허 시험이 있는데 지금은 안 된다”라고 답했지만 사장은 “그럼 가게가 돌아가겠느냐”라며 김군에게 배달을 지시했다. 매주 화요일 오토바이 면허 시험을 준비하던 김군은 결국 사장의 지시에 따라 오토바이에 올라야 했다. 김군은 첫날부터 제주시 아라동 인근 시청, 법원쪽 배달을 맡았다. 정군은 “은범이가 되도록 가까운 곳을 배달 가도록 했지만 오토바이 운전이 미숙해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라며 “은범이도 ‘불법인데 해도 되는 건가’라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김군이 배달 일을 시작한 두 번째 날에는 오토바이가 고장 나기도 했다. 다행히 배달지에 도착한 뒤라 부상은 없었고 정군이 은범이를 데리고 가게로 돌아왔다. 그렇게 고장난 오토바이를 수리한 뒤에도 바로 배달에 나섰고 나흘째 되던 날 결국 사고를 당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준비위원장은 “해가 갈수록 개선되고는 있지만 지방은 노동권에 대한 지원이나 인식이 부족해 소규모 가게들은 무면허 고용을 많이 한다”라고 말했다.
◇부모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고용
윤상민군의 아버지 윤현식씨는 아들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오토바이를 타고 퇴근 중이던 상민군은 지난 4월 어느 밤 좌회전하던 차량과 충돌했다. 윤군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고 후 40분 만에 숨졌다.
윤군도 가족 몰래 오토바이 배달에 나섰다. 1월 말부터 고양시 배달대행업체를 통해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일했다. 하루 10~20건씩 배달 일을 했다. 동료에 따르면, 사고 당일 윤군은 “오늘은 더 늦게까지 해도 된다”고 말한 후 11시 이후까지 배달 콜(호출)을 기다렸다. 보통 마지막 콜은 12시까지 떨어진다. 윤씨는 아들이 밤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줄 알았고, 아들의 시신을 확인하고서야 윤군이 위험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8세 미만 청소년을 고용하려면 친권자 동의서가 있어야 하지만, 윤씨는 그런 동의서를 써본 적이 없다. 고양고용노동지청 관계자는 “친권자 동의 없이 청소년을 고용할 경우 처음 시정명령을 내리고, 기간 내 시정이 안 되면 청소년 1인당 80만원, 1년 내 2차로 또 적발되면 150만원, 1년 내 3차 적발에는 300만원의 과태료를 고용주에게 부과한다”고 설명했다. 첫 적발이면 사실상 불이익이 없으며, 아무리 많이 적발 돼도 최고액이 300만원을 넘지 않는다. 더구나 윤군이 배달대행업체와 근로계약이 아닌 특수고용직(자영업자로 분류)으로 용역계약 등을 맺고 일했다면, 부모 동의서가 없어도 불법이 아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친권자 동의서는 사용종속 관계가 입증 돼야 한다”고 한계를 설명했다. 청소년의 밤10시 이후 야간근로도 원칙적으로 금지(본인 동의와 고용부 승인이 있으면 예외적으로 허가)되지만, 이 역시 특수고용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 윤군을 고용한 업주는 보통 오토바이를 리스해 주는 대신 본인이 구입한 후 윤군에게 주고 윤군의 수입에서 비용을 빼갔다. 윤군은 그렇게 오토바이를 소유하게 됐지만, 대가는 생명이었다. 윤현식씨는 “업주가 부모 몰래 오토바이로 아이들을 꾀는 것”이라며 “사실상 앵벌이를 시키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잦은 사고 수리비도 모두 아이들의 몫이다. 윤군과 함께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 친구 박정후(가명)군은 “오토바이가 타고 싶고 용돈도 벌고 싶어 배달 일을 했는데, 나중에 사고가 난 오토바이 수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일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상민군이 지난해 11월 친구 배달 오토바이를 빌려 탔다가 사고가 나는 바람에 100만원 가량의 수리비를 윤씨가 대신 낸 적도 있다.
윤군은 오토바이 면허는 딴 상태였지만 헬멧을 쓰지 않았다. 윤씨는 “늘 헬멧을 쓰고 다녔는데 그날따라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했다. 사망원인이 장파열이었기 때문에 헬멧을 썼다고 해도 안전을 담보하지 못했을 수 있다. 정후군은 “헬멧을 쓰면 불편해 잘 안 쓴다”며 “업체에서 굳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윤씨는 아들 사고 후 생업을 그만뒀다. 윤군은 병원 이송 중에 “많이 아프다”고 말하는 등 의식이 있는 상태였다. 구급차량이 오기 전 다른 운전자가 윤군을 싣고 자동차로 10분 거리의 병원으로 옮겼다. 윤씨는 ‘119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문가들이 이송했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며 사고지점에서 병원까지 직접 운전해보는 등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아버지를 속이고 아들에게 배달 일을 시킨 업주를 처벌하고 싶지만 현행법상 방법이 없다는 변호사 자문을 받고 속만 삭였다.
“사고 이후 거리에서 배달하는 오토바이를 보면 다 상민이 같은 어린아이들 같아요. 다른 아이들은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바랄 뿐입니다.” 윤씨는 상민이 친구 일곱 명이 배달 일을 했던 것을 알고, 이를 말리는 역할을 했다. “상민이 친구 ○○가 다시 오토바이 배달을 한다는데 걱정입니다. 부모와 담임선생님에게도 알렸습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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