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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은 알았을까… 적산가옥이 카페로, 요정이 게스트하우스가 될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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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은 알았을까… 적산가옥이 카페로, 요정이 게스트하우스가 될 줄

입력
2018.12.11 18:00
수정
2018.12.11 18:39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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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 근대문화유산과 유달산 

국내 네 번째 개항지인 목포 만호ㆍ유달동 일대에는 당시의 건물을 그대로 이용하는 상가와 주택이 수두룩하다. 문화재청은 2023년까지 이 지역을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재생할 계획이다. 목포=최흥수기자
국내 네 번째 개항지인 목포 만호ㆍ유달동 일대에는 당시의 건물을 그대로 이용하는 상가와 주택이 수두룩하다. 문화재청은 2023년까지 이 지역을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재생할 계획이다. 목포=최흥수기자

목포는 부산, 원산, 인천에 이어 국내에서 네 번째로 개항한 항구다. 그러나 다른 지역이 외세의 강압이나 불평등조약에 근거해 타율적으로 개항한 것과 달리 목포는 고종의 칙령으로 개항이 이루어졌다. 일본의 요구에서 비롯했지만 대한제국 정부의 의지도 반영된 개항이었다. ‘주한일본공사관 기록’에도 일본과 상의 없이 개항 날짜를 1897년 10월 1일로 잡았다고 적고 있다.

적어도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기 전까지 한국인이 자주권을 행사한 목포 원도심은 근대도시의 구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노적봉 자락 만호ㆍ유달동 일대에는 당시의 외관을 유지한 관공서와 상가 건물이 다른 도시에 비해 유난히 많다.

유달산에서 내려다보면 일본인 거주지인 조계지와 섬 주민들이 이주해 형성한 서산동 달동네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유달산에서 내려다보면 일본인 거주지인 조계지와 섬 주민들이 이주해 형성한 서산동 달동네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목포문화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옛 호남은행 목포지점 건물.
목포문화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옛 호남은행 목포지점 건물.
목포근대역사1관으로 사용되는 옛 일본영사관 건물.
목포근대역사1관으로 사용되는 옛 일본영사관 건물.
목포근대역사2관으로 사용되는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
목포근대역사2관으로 사용되는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
목포근대역사2관에는 일제강점기 목포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목포근대역사2관에는 일제강점기 목포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 시작은 현재 목포문화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옛 호남은행 목포지점이다. 1920년에 광주에서 설립한 호남은행이 1929년 신축한 건물이다. 호남은행은 지역의 부호로 알려진 현준호, 김상섭, 김병로 등이 당시 돈 150만원을 자본금으로 설립했다. 일본 자본의 참여를 허용하지 않고 일본인을 채용하지 않은 민족 자본이었으나, 호남은행은 식민정책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942년 일본 자본에 강제 합병당한다. 현재 ‘목포문화원’ 현판이 걸린 돌에는 나중 이름인 ‘주식회사 조흥은행 목포지점’이라는 현판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노적봉 바로 아래 옛 일본영사관 건물은 목포의 근대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정면으로 당시 일본인 조계지와 항구가 직선으로 보이고 뒤로는 유달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한눈에도 최고의 자리로 여겨진다. 1900년 건립한 이 건물은 광복 후 목포시청, 목포시립도서관, 목포문화원 등으로 사용하다 현재는 목포근대역사1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시실에는 목포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7개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건물 뒤편에는 태평양전쟁에 대비해 일제가 파놓은 방공호가 있다. 82m 길이의 방공호에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정면으로 170m 정도 떨어진 목포근대역사2관은 일제 수탈의 상징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었다. 1층과 2층 전시장은 일제 강점기 목포의 모습과 일제의 침략상을 살펴볼 수 있는 사진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본정통(本町通)’이라 불리던 원도심 중심가와 유달산을 비롯한 관광지 사진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어, 당시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다.

현재 빈집으로 남아 있는 옛 화신백화점.
현재 빈집으로 남아 있는 옛 화신백화점.
옛 동아부인상회 안뜰에서 본 모습. 당시는 큰 백화점이었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옛 동아부인상회 안뜰에서 본 모습. 당시는 큰 백화점이었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옛 동아부인상회 부근 거리의 일부 건물은 당시 분위기를 살려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옛 동아부인상회 부근 거리의 일부 건물은 당시 분위기를 살려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요정 건물은 게스트하우스로 변신했다.
일제강점기 요정 건물은 게스트하우스로 변신했다.
아담한 카페로 변신한 일본식 주택.
아담한 카페로 변신한 일본식 주택.

식민지 수탈의 암울함이 묻어나는 대형 건축물에 비해 상업 중심가에 남은 건물에선 당시의 생활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현재 ‘창작센터 나무숲’ 간판이 걸린 2층 건물은 ‘동아부인상회 목포지점’이었다. 부인들에게 필요한 가정용품과 생활용품을 판매한 곳으로 당시 신문에서 ‘목포의 대백화점’이라 소개할 정도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소박하기 그지없어 2층 복도에서 내다보이는 풍경은 정겹기까지 하다. 동아부인상회와 쌍벽을 이루던 옛 화신백화점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근대 백화점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지만, 내부는 비어 있다. 페인트 칠마저 희미해져 가는 건물 정면에 영어로 ‘김영자 아트홀’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유달산 남동쪽 기슭 이훈동정원은 1930년대 일본식 정원이다. 일본인 우치다니 만페이의 소유였던 정원은 광복 후 해남 출신 박기배 의원에 넘어갔다가 1950년대에 고 이훈동 조선내화 회장이 인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식 건물 외형에 한국식 거실과 서양식 응접실로 개조한 저택 주변에는 향나무, 일본동백 등 400여그루의 다양한 희귀 수종을 식재해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한다. 동백이 활짝 핀 연못 주변에 작은 석탑도 아기자기하게 배치돼 있다. 정원은 토요일 오후 2~4시에만 무료로 개방한다.

상록수 숲으로 한겨울에도 푸르른 이훈동정원.
상록수 숲으로 한겨울에도 푸르른 이훈동정원.
이훈동정원은 1930년대 일본인이 조성했다.
이훈동정원은 1930년대 일본인이 조성했다.
조선내화 목포공장 내부. 영화 촬영 문의가 많지만 안전 문제 때문에 불허하고 있다.
조선내화 목포공장 내부. 영화 촬영 문의가 많지만 안전 문제 때문에 불허하고 있다.
공장 내부에 프레스와 가마 등 일부 생산시설이 남아 있다.
공장 내부에 프레스와 가마 등 일부 생산시설이 남아 있다.

1997년 문을 닫은 온금동의 조선내화 목포공장도 등록문화재에 이름을 올렸다. 1930년대 세운 벽돌 굴뚝을 비롯해 3개의 굴뚝이 상징처럼 우뚝 선 공장 내부에는 독일제 프레스와 가마 등 일부 생산시설이 남아 있다. 천장의 거대한 철골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내 영화 촬영 의뢰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안전 문제로 허가를 내주지 못하는 형편이다.

목포 원도심에는 이외에도 문화센터로 활용하는 일본 불교사원 동본원사, 1930년대 요정 건물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한때 해외에 대리점을 낼 정도로 번성했던 갑자옥모자점, 현재 건어물 창고로 사용하는 붉은 벽돌창고, 아담한 카페로 변신한 일본식 가옥 등 당시 건물을 활용한 상업 시설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문화재청은 내년부터 2023년까지 이들 건물과 거리를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재생할 계획이다.

유달산 초입의 노인바위. 바로 앞 노적봉을 지키고 있다.
유달산 초입의 노인바위. 바로 앞 노적봉을 지키고 있다.
유달산은 도심공원처럼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다.
유달산은 도심공원처럼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다.
유달산 중턱의 ‘목포의 눈물’ 노래비.
유달산 중턱의 ‘목포의 눈물’ 노래비.

목포 원도심을 돌고 나면 발길은 자연스럽게 유달산으로 향한다. 유달산은 해발 228m로 높지 않지만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산세가 웅장하다. 고래바위, 애기바위, 얼굴바위, 흔들바위, 종바위 등 발길 닿는 곳마다 온갖 형상의 바위가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목포의 영산이다. 정상인 일등바위로 오르는 중간중간에 조성한 전망대에서는 목포 원도심과 삼학도, 신시가지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가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노래비와 정오를 알리는 오포(午砲)도 등산로에서 볼 수 있다. 명산을 알아보기는 일본인도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에 세운 88개의 야외 불상은 사라졌지만, 일등바위 동쪽 벽면에는 일본인이 숭상하는 홍법대사와 부동명왕 조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제의 잔재라며 없애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러자면 또 다른 자연 훼손을 피할 길이 없어 어쩌지 못하는 형편이다. 다만 부동명왕 조각 옆 ‘유달산신사(儒達山神社)’라 새긴 글에서 ‘사(社)’자만 희미하게 지워진 상태다.

유달산 일등봉에서 본 이등봉과 목포 북항 모습.
유달산 일등봉에서 본 이등봉과 목포 북항 모습.
해질녘이면 다도해로 떨어지는 일몰 풍경이 아름답다.
해질녘이면 다도해로 떨어지는 일몰 풍경이 아름답다.
유달산 일등봉 바위에 일인들이 새긴 부동명왕. 유달산신사의 마지막 한 자는 희미하게 지워져 있다.
유달산 일등봉 바위에 일인들이 새긴 부동명왕. 유달산신사의 마지막 한 자는 희미하게 지워져 있다.
유달산 일등봉 기슭 바위에 일본인들이 새긴 홍법대사 조각. 홍법대사(774~835)는 가가와현 출신으로 일본 헤이안시대 승려다.
유달산 일등봉 기슭 바위에 일본인들이 새긴 홍법대사 조각. 홍법대사(774~835)는 가가와현 출신으로 일본 헤이안시대 승려다.

넉넉잡아 1시간을 걸어 일등봉 정상에 오르면 목포대교 너머 화원반도와 다도해로 떨어지는 일몰 풍경이 일품이다. 산 전체가 도심공원이나 마찬가지고, 등산로 주변으로 가로등이 설치돼 있어 해가 져도 하산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다. 등산 시작점은 노적봉과 유달산을 갈라놓은 도로로, 목포근대역사1관 바로 뒤편이다. 현재 고하도와 유달산을 연결하는 해상케이블카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내년 2월까지 일등봉으로 바로 오르는 등산로는 폐쇄한 상태다. 일등봉을 코앞에 두고 반대 방향으로 우회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목포=글ㆍ사진 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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