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4월까지 95건 쏟아졌지만
대부분 국회 문턱 못 넘어
올해 1월 서지현 검사의 상사에 의한 성희롱 피해 고발은 한국 사회를 뒤집어 놓았다. 문화계와 학계 등 전분야에 미투(#MeToo) 바람이 불었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국회에는 연일 ‘미투법’이 쏟아졌다. 1월말부터 4월말까지 불과 3개월 사이 ‘미투’라는 용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거나 성폭력, 성희롱, 성차별 대책을 담은 이른바 ‘미투법’은 95건이나 발의됐다. 올해 정기국회가 끝난 12월 현재 그 많은 법들은 어디로 갔을까.
11일 여성가족부 등에 따르면 올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미투 관련 대책 법안(9개)은 10개가 채 되지 않는다.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중복 발의됐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미투법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해도 터무니없이 적은 실적이다. 지난 10월 정부 차원에서 연내 입법에 노력하겠다고 밝힌 미투와 디지털성범죄 관련 법안 22개 중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도 5개뿐이다. 그나마도 전기통신사업법일부개정안(정보통신사업자의 삭제ㆍ접속차단 등 조치 의무 신설)이나 공중위생관리법일부개정안(공중위생영업자의 동의를 얻어 영업소에 불법촬영카메라 설치 여부를 검사하고 확인증을 발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 등은 각각 2016년과 2017년에 발의돼 이미 논의 중이던 법안들이었다. 정부가 주력했던 데이트폭력 등 피해자에 대한 정부 지원 근거를 담은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정안이 이달 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성과도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원안보다 후퇴했다는 평가가 있다.
특히 체감하는 입법 효과는 더 적다. 직장 등 일반적인 생활 공간에서 성폭력 방지 제도를 마련할 때 근거가 되는 법안들은 대부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탓이다. 대표적인 법안이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사항을 노사협의회 협의 사항으로 명시토록 한 법안(근로자참여및협력증진법 개정안)과 노동위원회를 통한 성희롱 구제 절차를 신설하는 법안(노동위원회법 개정안), 사업주의 성희롱이나 징계 미조치 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법 개정안) 등이다.
미투가 유독 많았던 의료계와 학교 안 성폭력을 막기 위한 법안들 역시 계류 중이다. 전공의 성폭력 등의 가해자에 대한 지도전문의 자격 취소 등을 담은 전공의법 개정안과 징계위원회에 학생 참여를 허용하고 외부위원 총수 확대와 여성위원 참여 제고 등의 내용이 포함된 교육공무원법 개정안ㆍ사립학교법 개정안이다. 미성년자가 성폭력 등 성적침해를 당한 경우 피해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 진행을 유예토록 한 민법개정안 역시 국회에서 잠 자고 있다.
결국 이슈가 터질 때만 반짝 하는 국회의원들의 ‘보여주기 행태’가 이번에도 되풀이된 거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김수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부장은 “국회의원들이 실제 법안 통과에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며 “연내 임시국회가 열린다면 미투 관련 법안들이 조속하게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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