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윤 기자

등록 : 2018.05.14 14:00
수정 : 2018.05.14 14:07

[카드뉴스] ‘여론을 가장한 공작’ 댓글부대의 계보

등록 : 2018.05.14 14:00
수정 : 2018.05.1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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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의 수사가 진행되며 거대한 전말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닙니다.

국정원 알파팀, 심리전단, 십알단과 박사모를 거쳐 드루킹까지 당도한 댓글부대의 계보. 지금껏 당신이 보아온 것은 과연 ‘진짜 여론’이었을까요? 한국일보가 짚어봤습니다.

기획 제작 : 박지윤 기자

“종북 좌파가 승리하면 우리도 없어진다. 그들이 다시는 이 사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박사모의 구호도, 어버이연합의 선동 문구도 아니다. 한 중앙행정기관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 과격한 발언의 주인공은 바로 원세훈(67) 전 국정원장.

그는 2012년 대선 당시 직원들에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유리한 댓글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던 장본인이다. 5년이 흐른 지난달 19일, 대법원은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마음 편히 박수만 칠 수 없는 분위기다. 1세대 댓글부대가 퇴장한 자리에 2세대 댓글부대가 등장한 탓이다.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방하는 댓글들은 5년 전 상황과 겹쳐졌다.

‘친보수’ 댓글 부대의 계보를 잇는 사건인 줄로만 알았으나 붙잡힌 사람들은 뜻밖에도 오랜 시간 진보 인사들을 지지해온 민주당원들. 여론을 호도하는 댓글 부대는 진영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존재해왔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댓글부대는 시작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이명박(MB) 정권에 큰 타격을 가하던 2008년 봄, 당시 국정원은  민간 여론조작 단체를 만들었다. 일명 ‘알파팀’.

‘큰 그림’은 주로 국정원이 그렸다. 민간 댓글부대 ‘알파팀’은 그들이 깔아 둔 멍석 위에서 재주를 넘는 식이었다. 국정원의 지시를 받은 청년들은 정권을 옹호하고 비판세력을 공격하는 글을 조직적으로 써내기 시작했다.

"1) 악플이 달릴 때마다 틈틈이 들어와 답 댓글을 달 것. 2)여러 아이디로 로그인하여 게시물에 ‘찬성’ 버튼을 여러 번 누를 것, 3) 링크를 여러 사이트로 옮겨 클릭을 유도할 것.”  이 세심하고 꼼꼼한 매뉴얼에 따라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따박따박 월급이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건당 2만5000원~5만원 상당의 고료, 집회 현장에서 충돌을 찍어오면 20만원까지도 뛰었습니다.” 

 2009년 원세훈 국정원장이 취임하면서  민간인 ‘알바’들로 구성된 점조직 형태의 댓글부대는 아예 정보원들이 직접 투입되는 국정원 내 ‘공식 조직’의 형태로 발전했다.

한 사람당 여러 개의 아이디를 번갈아 사용해 ‘일당백’의 역할을 해내는 것은 기본. 타깃으로 삼은 글에 찬성과 반대를 반복 클릭해 정부 여당과 보수 정권에 유리한 전략으로 베스트 게시판을 도배했다.

“놈현이가 저 세상에 와서 보니 아주 큰 죄가 많았군요~ 살아있을 때 잘하지~ 왜 거기 가서 죽어서 후회하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정국이 경색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한 층 높은 수위의 비방글이 등장했다. 4대강 문제가 불거졌을 때에도, 천안함 사건이 터졌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내부 조직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도 민간인 댓글 알바를 꾸준히 고용해 영향력을 높여나갔다. 차기 대선까지 손을 뻗치며 급기야는 꼬리를 잡히고 만 2012년 당시, 국정원 내 심리전단 산하 민간인 댓글부대의 규모는 무여 3,500여명. 

이들에게는 매달 3억원 안팎, 1년이면 30억원에 이르는 거액이 지급됐다.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국정 활동에 소요되는 경비, 그래서 감사원의 감시 조차 받지 않는 돈, 특수활동비가 그 원천이었다. 국민의 피땀으로 일궈진 세금이 결국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데에 쓰여온 셈이었다.

“우리는 십만 명의 박근혜 알리기 유세단, 십알단입니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SNS 미디어본부장으로 활동한 윤정훈 목사는 소셜미디어 업체를 차리고 직원 7명을 고용해 계정을 조직적으로 운영하며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게 여론 몰이를 시도했다. 

지난해 검찰이 재수사에 나서면서 국정원과 윤 목사 사이에 여러 차례 통화한 내역과 ‘검은 돈’이 오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개 목사의 개별행동인 줄로만 알았던 ‘십알단’ 또한 국정원의 댓글 부대였을 가능성이 밝혀진 것. 

‘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인 ‘박사모’는 18대 대선 당시 아예 “우리의 대권 플랜은 트위터 장악”이라는 입장을 공공연히 표명하기도 했다. 이들의 목표는 트위터 전체를 ‘박근혜 찬양’으로 도배하는 것. 스스로를 ‘사이버 전사대’로 불렀다. 

오로지 ‘양’으로 승부하던 10년 전에 비해 오늘날의 댓글 공작은 고도로 발전했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포털로 뉴스를 소비한다는 점, 기사의 내용 자체보다는 댓글 평가에 집중한다는 점을 이용해 댓글의 공감수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의 주범 ‘드루킹’ 김동원(49)씨 일당은 아예 매크로 자동화 서버를 자체적으로 구축하기도 했다. 가동하기만 해도 클릭수가 자동으로 올라가는 것은 물론,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

게다가 진보진영의 지지자들이 현 정권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조작을 벌였다. 정치적 잇속과 당장의 이해관계에 따라 노선을 달리했다는 점에서 혼란은 가중됐다. 강한 공권력이 개입한 ‘댓글부대 1세대’는 보수정권의 몰락과 함께 과거가 됐지만, 새로운 형태의 ‘댓글부대 2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여론의 대세를 가늠해볼 단서, 정보의 신빙성을 평가할 기준. 그렇게 오늘날의 댓글은 기능성은 물론, 최소한의 신뢰도 잃었다.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어 <댓글부대>(은행나무)를 저술한 소설가 장강명 씨는 출간 당시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뛰어난 기자나 세상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어도 현재의 인터넷 환경이란 몇 사람이 작정하고 몇 달간 꾸미면 다들 속을 수밖에 없다.” 

그의 소설에는 히틀러의 선전부장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명언이 등장한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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