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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처럼 떠난 그들, 빈 자리는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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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처럼 떠난 그들, 빈 자리는 영원히

입력
2017.02.2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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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오후, 부고가 날아들었다. 원로 배우 김지영. “아, 그 분… 아프셨구나…”영정 속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누군가 죽음은 육체의 숨이 다하는 순간이 아니라, 망자의 빈 자리가 채워지는 순간이라고 했다. 배우로 기억되는 이들의 죽음이 더디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아직 채워지지 않는, 오래 채워지지 않을 빈 자리들이 남아 있다.

JTBC드라마 판타스틱(2016년)에 출연한 김지영(오른쪽). MBC 제공ㆍJTBC 캡처
JTBC드라마 판타스틱(2016년)에 출연한 김지영(오른쪽). MBC 제공ㆍJTBC 캡처

‘억척 같은 인생’ 김지영

원로 배우 김지영이 2월 19일 별세했다. 향년 79세.2년 전 폐암 선고를 받은 사실은 부고가 나기 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방영된 JTBC 드라마‘판타스틱’이 마지막 작품. “니는 천 년을 살 관상이다. 삼시세끼 잘 먹고 건강 잘 챙기라”. 암환자인 여주인공을 손주며느리로 인정하고 용기를 주는 시할머니 역할이었다. 거짓말 같은 해피엔딩이었는데 드라마와 현실은 달랐다.

남편과 사별한 뒤 1986년 그는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마리아 막달레나. 2006년 가톨릭 ‘서울주보’에 실린 그의 신앙고백은 고단했던 삶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이다. 밖으로만 돌던 남편이 중병에 걸려 돌아오고 13년 넘게 병수발을 들었다. 자식을 키우고 약값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욕심이 나도 의상 구입비가 없어 좋은 배역은 일부러 마다했다. 매번 하찮은 역할이었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쌓은 세월이 팔도 사투리를 가장 잘 소화해내는 배우를 만들었다. 경상도 할머니로, 전라도 어머니로, 그의 연기는 언제나 숨쉬듯 편안했다. 2005년엔 드라마 ‘장밋빛 인생’으로 KBS 연기대상 여자조연상을 받았다. 연극무대까지 헤아리면 연기를 시작한 지 52년 만에 받은 첫 상이었다. 그는 투병 중에도 연기를 놓지 않았다. 두 달 전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고도 촬영장에 복귀할 준비를 했다고 한다.

1996년 ‘공주는 외로워’로 큰 인기를 얻은 김자옥. tvN ‘꽃보다 누나’(2013년), KBS드라마 ‘사랑의 조건’ (1982년) 출연장면. (시계방향)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6년 ‘공주는 외로워’로 큰 인기를 얻은 김자옥. tvN ‘꽃보다 누나’(2013년), KBS드라마 ‘사랑의 조건’ (1982년) 출연장면. (시계방향)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리운 공주 김자옥

“넌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마도 마지막 긴 여행이었을 tvN‘꽃보다 누나’에서 후배 이미연에 건넨 다정한 말 한마디. 환하고 따뜻한 미소의 김자옥은 2014년 대장암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환갑을 조금 넘긴 나이였고 아들의 결혼식을 몇 달 앞둔 초겨울이었다.

아버지 김상화 시인은 ‘콩알만 한 우리 자옥이/쪼그마한 내 딸 자옥이/바람이 불면 어쩌나/굴다가 구르다가 다칠라/자옥이 가는 길에 아픔이 없어라/사뿐사뿐 꿈을 밟고 가거라’며 셋째 딸의 행복을 빌었지만 순탄치만은 않은 인생이었다. 이혼과 재혼, 남편의 사업실패…. 아역배우서 시작해 비련의 여인으로, 푼수 끼 넘치는 공주로, 우아한 사모님으로 쉼 없이 현장을 누볐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그가 보여준 중년연기자의 신산한 삶이 겹쳐지는 그림이었다. “여름에는 더위에 살이 무르는 데도 겨울에는 살바람에 살이 트는 데도, 아주 우리가 화면 속에서 웃으니까 그것들은 우리가 거져 돈 버는 줄 아나 봐”. 극중 윤여정의 독설에도 생글 웃어넘기고 마는 그의 모습은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 [DB에서 온 그대] '꽃누나' 김자옥을 보내며)

MBC드라마 ‘대장금’(2003년) ‘사랑이 뭐길래’(1991년) ‘서울의 달’(1994년)에 출연한 여운계. (시계방향) 한국일보 자료사진
MBC드라마 ‘대장금’(2003년) ‘사랑이 뭐길래’(1991년) ‘서울의 달’(1994년)에 출연한 여운계. (시계방향) 한국일보 자료사진

카리스마 여운계

배우 이영애는 2015년 한류 공로상을 받으며 “대장금에 함께 출연했던 여운계 선생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2009년 세상을 떠난 그를 잊지 않은 모습이었다.“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라는 어린 장금의 유명한 대사는 정상궁 마마로 분한 여운계의 엄하고도 자상한 카리스마에 힘 입은 것이기도 했다.

“아줌마 소리를 듣기 전에 할머니 소리부터 들었다”는 그는 20대부터 노역들을 주로 연기했다. 그의 이름을 들으면 집안의 정신적 지주인 노마님이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는 이유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개성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그는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2007년 신장암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는 듯 보였으나 1년 반 만에 암세포가 폐로 전이됐다. 수술날짜까지 잡았지만 촬영 중 걸린 감기가 폐렴으로 번져 손 쓸 새도 없었다. 가족들은 연기 재개를 말리지 못한 걸 자책했다. 하지만 “배우 여운계라고 하면 사람들이 끝까지 연기하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해주면 좋겠다. 나는 죽을 각오로 무대에서 연기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죽음이라는 연기를 하고 싶다”던 그의 말을 곱씹으면 시간을 돌려도 그를 말리진 못했을 것 같다.

박선영 기자 philo9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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