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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대란’으로 확인된 중국의 또 다른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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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대란’으로 확인된 중국의 또 다른 힘

입력
2018.04.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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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저장성 타이저우시의 재활용 수거장에서 한 노동자가 플라스틱병을 담아 옮기고 있다. EPA연합뉴스
중국 저장성 타이저우시의 재활용 수거장에서 한 노동자가 플라스틱병을 담아 옮기고 있다. EPA연합뉴스

중국이 전 세계에서 몰려오던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자 미국과 유럽연합(EU)ㆍ호주ㆍ일본ㆍ한국 등 지구촌 전체가 경기를 일으키고 있다. 자국의 환경과 자국민의 건강을 명분으로 내세운 중국의 조치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물론 근저에는 중국 경제의 자신감이 깔려 있다. 쓰레기 논란을 통해서도 굴기(崛起ㆍ우뚝 섬)를 꿈꾸는 중국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중국은 그간 전 세계 폐기물의 약 50%를 수입해온 ‘쓰레기 수입대국’이었다. 개혁ㆍ개방을 전면화하면서 왕성한 제조업 호황을 지속할 수 있었던 한 요인이 바로 외국으로부터 수입한 재활용 가능 폐기물이었다. 중국 내에서 각종 제조업에 필요한 원자재나 부자재를 모두 조달하기 힘든 상황에서 이를 메우기 위해 해외에서 수입한 쓰레기를 재활용했던 것이다. 1995년에 450만톤이었던 중국의 연간 쓰레기 수입량은 2016년에 4,500만톤으로 10배나 늘었다. 이 기간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사실 이 과정은 선진국들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미국을 비롯해 쓰레기 배출이 많은 나라는 비싼 인건비와 환경오염에 대한 민감성 때문에 쓰레기 재처리ㆍ재활용이 어려웠다. 반면 중국은 인구는 넘쳐나고 인건비는 낮았으며 원ㆍ부자재 수요도 많았다. 그 결과 선진국들의 쓰레기는 자연스레 중국으로 몰렸다. 미국에서 버려지는 플라스틱 음료수 용기의 절반 가량이 컨테이너박스에 실려 중국 톈진(天津)항에 도착하는 등 미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재활용 자원은 2016년 기준으로 56억달러(약 5조9,900억원)에 달했다. 관련 일자리만도 4만개가 넘는다. 영국도 연간 폐플라스틱 배출량의 3분의 2에 달하는 270만톤을 중국에 수출해왔다. 중국은 곳곳에 산재한 재처리 공장을 가동해 값싼 재활용품을 만듦으로써 신제품 원료를 사용할 때보다 싼 가격 차이만큼 이익을 챙겼다. 미국이나 유럽의 소비자들도 싼 제품을 사용할 수 있었다. 어느 쪽도 손해보지 않는 그야말로 선순환구조였던 셈이다.

하지만 중국은 내부적으로 골병이 들어가고 있었다. 웬만한 규모의 쓰레기 재처리 공장에선 시간당 50톤 이상의 폐수를 방류한다. 이는 200명이 하루에 사용하는 물의 양에 맞먹는다. 베이징(北京)이나 광저우(廣州) 등 대도시 주변에는 이른바 ‘쓰레기 도시’도 적지 않다. 수입 폐기물 집산지로 유명한 허베이(河北)성 원안(文安)시나 광둥(廣東)성 구이위(貴嶼)시 등이다. 이들 지역의 물과 토지는 심각한 중금속 오염물질로 범벅이 되어 있다는 수많은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에는 구이위에 거주하는 아동 80%의 혈액에서 납 성분이 높게 검출되기도 했다.

여기에 중국 경제의 전반적인 성장에 따라 중국 내에서 수거되는 재활용 쓰레기가 양과 질 모두에서 수입 쓰레기를 충분히 대처할 수 있게 됐고, 재처리 공정과 기술의 발달에 따라 각 분야별 제조업에서 필요로 하는 질 좋은 원ㆍ부자재의 생산과 공급도 상당 부분 가능해졌다. 여러 측면에서 더 이상 외국의 쓰레기를 수입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하루 아침에 쓰레기 대란을 일으킨 건 아니다. 중국은 2013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취임 후 지속적으로 환경문제를 정책 우선순위에 두어 왔다. 그 해에는 특히 중국 해관(세관)이 사상 처음으로 쓰레기를 불법으로 수입한 업체를 적발해 처벌했고, 관영 CCTV는 쓰레기산으로 둘러싸인 지방의 중소도시나 폐기물 처리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에 따른 토양ㆍ수질오염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사실상 그 때부터 쓰레기 수입 제한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2015년 1월에는 대기오염방지법을 시행했고, 지난해 4월에는 외국 쓰레기 수입 금지 및 고체폐기물 수입 관리제도 개혁 실시 방안을 만들었다. 철강ㆍ화학 등 주요 환경오염 유발 업종과 기업들에 대한 감찰을 대폭 강화하는 동시에 지난 1월부터 환경보호세도 도입했다. 2016~2020년에 환경보호에 쓰일 예산만 8조2,000억위안(약 1,390조원)에 달한다.

중국은 지난해 7월 예고에 따라 올해 1월부터 폐비닐 등 일부 재활용 고철쓰레기 수입을 중단한 데 이어 지난 19일 추가로 고체쓰레기 32종에 대한 수입 중단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올해 말부터는 폐전자제품과 폐PET병 등을, 내년 말부터는 목재 폐기 부스러기와 폐텅스텐 등을 각각 수입하지 않을 예정이다. 얼마 전 폐비닐 수거 문제 등으로 홍역을 치른 우리로서는 훨씬 더 심각한 쓰레기 대란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중국의 쓰레기 수입 제한 조치를 두고 미국과 EUㆍ일본ㆍ호주 등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의무에 위배될 수 있다며 시행 중단을 요청했다. 이들은 자국 폐기물과 외국산 폐기물의 차별, 과도한 무역 제한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중국은 “위험물질의 국제 이동에 관한 바젤협약에 따라 외국 폐기물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못박았다. 환경문제에 관한 시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 최고지도부의 의지도 확고하다. 기존의 환경보호부에 국토자원부 등의 환경 관련 업무를 귀속시키고 법 집행력을 강화한 생태환경부도 출범시켰다. 외국에서 수입하는 쓰레기 양을 점진적으로 줄이겠다는 정책 방향은 명확한 셈이다.

중국 정부의 일련의 조치는 자국의 환경과 자국민의 건강을 명분으로 한 조치이자, 중국이 제조업에 필요한 원ㆍ부자재의 생산과 공급을 충족시킬 수 있는 역량과 기술을 갖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의 태도 변화에 따라 전 세계 국가들은 과도한 포장과 과소비 등 환경문제에 대한 고심에 빠졌다. 미국과 EU 등은 중국을 대체할 쓰레기 수입국으로 인도ㆍ이집트ㆍ베트남ㆍ인도네시아 등을 꼽는다. 하지만 재활용 쓰레기 수입 2위 국가인 인도의 수입량은 중국의 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해서 중국발 쓰레기 대란은 피하기 어렵다. 전 세계에 값싼 공산품을 공급해주던 중국은 이제 지구촌 전체를 향해 환경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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