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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살충제의 비극, 암탉에게 마당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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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살충제의 비극, 암탉에게 마당을 허하라

입력
2017.08.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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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진열된 계란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왼쪽),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 스틸컷
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진열된 계란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왼쪽),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 스틸컷

“살충제 계란을 성인이 평생 매일 2.6개씩 먹어도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

살충제 계란 대란에 보건당국이 내놓은 답변이다. 묻고 싶다. 닭의 건강은? 사람들이 안전한 계란을 찾아 다닌다. 여름이면 진드기로 고생하다가 살충제를 뒤집어쓰는 닭의 안전은?

터질 게 터진 거다. 많게는 9단까지 층층이 쌓인 철제 케이지에 구겨 넣어진 산란계 한 마리가 차지하는 공간은 고작 A4 용지 2/3정도이다. 닭이 흙 목욕을 하면 진드기가 다 사라진다는 기사가 나오지만 공장식 축산의 산란계는 평생 한 번도 흙을 밟지 못한다. 날개도 푸드덕거리지 못하는 철장 안에서 기계처럼 계란만 찍어내다가 죽는다. 개 식용 논쟁 때면 차라리 개고기를 합법화하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번 사태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현재 합법화된 가축 시스템은 이보다 더 불온할 수 없다.

“나는 나의 건강이 아니라 닭의 건강을 위해서 채식을 한다”고 말한 작가 아이작 싱어처럼 나도 닭의 건강을 걱정한다. 평균 수명이 15년이 넘는 닭이지만 가축이 된 닭은 제 수명의 1/10도 살지 못한다. 고기로 먹는 육계는 생후 30일, 산란계는 케이지에 갇혀 알만 낳다가 생후 2년이 되기 전에 죽는데 살아있는 동안이 죽는 것보다 못한 지옥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각종 화학약품에 노출이 되니 면역력이란 게 있을 수 없고, 조류독감ㆍ진드기를 이길 힘이 없다. 지난 가을 시작된 조류 독감으로 3,800만 마리가 넘는 가금류가 살처분 되었다. 그리고 곧 다시 가을이 온다.

16일 전남 나주시 공산면의 한 산란농가 사육사에 산란계들이 모여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농가에서 생산한 계란을 수거해 조사한 결과 닭 진드기 박멸용으로 쓰이는 살충제 성분이 기준치의 21배를 초과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16일 전남 나주시 공산면의 한 산란농가 사육사에 산란계들이 모여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농가에서 생산한 계란을 수거해 조사한 결과 닭 진드기 박멸용으로 쓰이는 살충제 성분이 기준치의 21배를 초과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살충제 계란’이란 단어가 낯선 엄마가 질문을 쏟아냈다. 나와 공장식 축산 관련 다큐멘터리를 많이 본 엄마는 그간 동물복지 인증 계란을 구입했는데 친환경 계란에서도 살충제가 검출되었다는 소식에 놀란 모양이었다. 사실 동물복지 인증 계란은 인간이 아닌 닭의 삶의 질을 위한 선택이다. 이번 사태 후 쏟아진 기사 중에는 동물복지 인증은 사육 공간ㆍ환경 등 동물권 보장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살충제 관련 규정이 없어서 소비자 입장에서 대안이 아니라는 기사도 있었다. 지긋지긋하게 인간중심적이고, 사태의 원인도 못 짚는 코앞만 보는 기사다.

● 함께 보면 좋은 기사 ▶ 친환경과 동물복지 인증은 뭐가 다른가

엄마는 계란이 이 모양인데 닭고기는 괜찮겠냐고 묻는다. 육계는 태어난 지 30일 만에 죽어서 닭고기가 된다. 다시 말해 진드기가 생겨 살충제를 쓸 틈도 없이 죽는다는 뜻이다. 30일이라는 말을 엄마는 믿기 힘들어 했다.

슬픈 문답은 이어졌다. 이번에 살충제 계란을 낳은 닭들도 조류독감 때처럼 다 죽이는 거 아니냐고 걱정했다.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 농장의 닭이 약 3백만 마리 정도인데 다행히 살처분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검출된 살충제의 반감기가 일주일 이내이니 시간이 지나면 거의 독소가 빠지기 때문이다. 일부 농가는 강제 환우를 한다. 환우(換羽)는 일정 기간 동안 사료를 거의 주지 않고 물만 주면서 강제로 털갈이를 시키는 건데 이때 닭의 지방층에 쌓인 살충제가 함께 빠져나간다. 이 또한 잔인한 방법이지만 강제 환우는 공장식 축산 양계장에서 산란율을 높이기 위해 일상적으로 쓰는 방법이다. 살처분 보다 나을 뿐 지독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이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케이지에 닭을 가두고 계란을 생산하는 공장식 축산 방식은 변화해야 한다. 조금 비싸지만 닭의 고통을 줄인 계란을 구입하겠다는 소비자의 인식 변화, 밀집사육으로 키운 계란은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유통업체, 동물복지 농장을 지원하는 정책이 마련된다면 생산자는 변화할 것이다. 이미 유럽, 미국 일부 등 많은 곳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끼는 책인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은 산란계인 잎싹이다. 단 한 번이라도 알을 품는 것이 소원이지만 수많은 알을 낳고도 한 번도 품지 못한 암탉. 케이지에 갇힌 양계장의 삶에 지쳐가던 잎싹은 어느 날 생각한다. ‘뱃속에 알이 몇 개나 더 남았을까? 이게 마지막이었으면….’ 그러다가 병들어 껍데기도 여물지 못한 알을 낳고는 결심한다. ‘절대로 알을 낳지 않겠어! 절대로!’ 케이지에 갇힌 암탉들이 잎싹처럼 절대로 알을 낳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기 전에 그들에게 마당에 나와 알을 품는 것을 허해야 한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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