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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란의 비극, 반짝 관심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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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란의 비극, 반짝 관심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입력
2015.09.0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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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인 760명 국내 난민 신청

지금까지 달랑 3명 인정 받아

"애도하는 시민 보며 희망 느껴요"

박지훈(맨 왼쪽) 변호사와 헬프 시리아 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서울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아일란 쿠르디 추모제’를 열고 시리아 난민 문제 해결과 인도적 지원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박지훈(맨 왼쪽) 변호사와 헬프 시리아 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서울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아일란 쿠르디 추모제’를 열고 시리아 난민 문제 해결과 인도적 지원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인권단체 ‘헬프 시리아’의 박지훈(36) 변호사는 지난해 6월 서울 양천구 출입국관리소에서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출입국관리소의 철창 안에는 시리아 내전을 피해 한국에 온 A씨가 불법체류 혐의로 갇혀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A씨와 같은 처지의 외국인들이 가득했다. 헬프 시리아의 한 멤버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출입국관리소에 온 박 변호사는 A씨의 강제 송환을 막기 위해 ‘난민 자격 인정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A씨에게 정치적, 종교적 박해를 받았다는 증거를 요구했다. 가족들의 절반이 내전으로 사망한 사실에 대해서도 입증을 주문했다. 지난 6일 서울 명동에서 만난 박 변호사는 “4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사망증명서를 뗄 수도 없다”며 “이런 어려움을 헤아리지 않는 사법 절차가 답답했다”고 말했다. A씨는 재판에선 패소했지만 정부에서 난민보다 권리 보장 수준이 낮은 ‘인도적 체류 허가’ 자격을 받았다.

시리아 난민 어린이 아일란 쿠르디(3)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은 우리에게 난민들의 혹독한 삶과 전쟁의 비참함을 알려줬다. 하지만 국내에도 지금까지 760여명의 시리아인들이 난민 신청을 했고, 단 3명만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헬프 시리아는 이처럼 내전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시리아인과 국내에 있는 중동계 외국인을 돕기 위해 만든 단체다.

헬프 시리아의 창립은 시리아 출신 유학생 압둘 와합(32)과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시리아 최고 대학 다마스쿠스대 법학과를 졸업한 변호사인 압둘 와합은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내전의 참상을 국내에 알리는 인권운동가로 변신했다. 그를 만난 것은 5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아랍어를 배웠던 최영길 명지대 아랍학과 교수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박 변호사는 “평소 중동 국가의 정치ㆍ문화에 매력을 느끼던 차에 최 교수님에게 아랍어를 배우고 싶다고 이메일을 보내면서 중동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고 했다. 금세 의기투합한 30대의 두 젊은이는 2013년 6월 시리아 내전이 격화되자 함께 헬프 시리아를 만들었다. 박 변호사는 “헬프 시리아는 중학교 교사, 공무원 등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인도주의적 단체”라고 소개했다. 지난해부터 헬프 시리아의 사무국장을 겸하고 있는 박씨도 본업은 한 대기업의 사내 변호사다.

이들은 시리아 난민을 돕기 위해 매년 모금 운동을 이어 왔다. 지난해 7월에는 직접 시리아로 가 난민들에게 생활용품을 전하기도 했다. 아울러 매주 수요일에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아랍어와 시리아 문화를 가르치는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지난해 6월 국회 ‘시리아의 인권상황과 한국사회의 역할’ 토론회에서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상에 맞는 지원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IS(이슬람국가)와 같은 테러리스트를 왜 도와야 하냐”, “우리도 먹고 살기 바쁘다”, “이슬람교가 많아지는 것 아니냐” 등의 냉소적인 반응에는 가슴이 아리지만, 박 변호사는 “아일란의 죽음에 슬퍼하는 시민들을 보며 희망을 느낀다”고 했다. 헬프 시리아가 이날 오후 6시 서울 명동거리에서 연 ‘아일란 추모제’에는 50여명의 시리아ㆍ중동계 외국인뿐만 아니라 명동을 찾은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애도를 표시했다.

헬프 시리아의 다음 계획은 시리아 난민촌에 이불을 보내는 것이다. 시리아 난민촌은 주로 산악 지역에 있어 난민들이 혹독한 추위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시리아와 직접 교류하는 일본 시민단체와 함께 구호 활동을 벌일 계획”이라며 “아일란의 죽음이 ‘반짝 관심’으로 끝나지 않도록 꾸준히 활동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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