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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엄마 재판장’의 호통

입력
2017.06.2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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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몇 달 뒤 세종증권 매각 비리로 기소된 형 노건평씨의 재판이 열렸다. 당시 재판장인 조병현 부장판사는 노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며 매섭게 나무랐다. “‘내가 키웠다’고 자랑하던 동생이 자살했고 이제 해 떨어지면 동네 어귀에서 술 마시며 신세 한탄하는 초라한 시골 늙은이의 외양을 하고 있다. 동생을 죽게 만든 못난 형으로 전락했다.”노씨는 선고공판 내내 고개를 숙인 채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는 ‘호통판사’로 불린다. 국내 최초의 소년재판 전담 판사인 그는 비행청소년들에게 “무릎 꿇고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열 번 말하라”고 호통치는 모습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그가 처음 소년재판을 맡았을 때 하루에 처리해야 할 사건은 평균 100여건에 달했다. 한 아이에게 할애된 시간은 불과 3분. 이름 부르고 비행사실 읽고 처분 내리기도 모자란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호통 재판’을 시작했다고 한다.

▦ 정유라씨 이화여대 입시ㆍ학사 특혜 비리로 기소된 최순실씨 1심 선고에서 재판장인 김수정 부장판사의 질타가 눈길을 끌었다. “자녀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하기엔 자녀에게 너무나도 많은 불법과 부정을 보여 줬고, 급기야 비뚤어진 모정은 결국 자신이 아끼는 자녀마저 공범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고 최씨를 꾸짖었다. 김 판사의 통렬한 비판은 그가 두 자녀를 둔 어머니이어서 울림이 컸다. “‘빽도 능력’이라는 냉소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우리 사회에 생기게 했다”는 말은 이번 사건을 접하는 모든 부모들의 심정을 나타낸 것이다.

▦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무엇보다 판사들이 높은 법대에서 내려와 시민들과 함께 같은 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 22일 여중생들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항소심 재판에서 재판부가 피고인들에게 “이게 과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며 1심보다 형량을 높인 것도 평범한 일반인의 심정을 대변한 것이다. 판사를 포함한 소수의 법률전문가 집단이 ‘그들만의 언어’ 로 재판을 해 오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시민들의 상식과 요구를 담아 호통치고 꾸짖는 판사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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