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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닻 올린 문재인 정부의 실용 외교

입력
2017.06.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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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 입장을 미국 측에 설명하면 수긍하는데, 우리 언론은 ‘미국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라’면서 과도하게 우려하는 것 같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발언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여부를 둘러싼 한미 간 잡음에 대한 우려를 전하자, 청와대 고위 관계자로부터 돌아온 답변이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측의 우려만 부각하는 우리 언론에 적잖은 아쉬움을 표했다.

언론의 우려는 예측불허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언행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과 전혀 다른 외교 문법을 구사한다. 특히 한반도와 관련해 주한미군 분담금과 사드 배치 비용을 거론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재앙’이란 표현에도 스스럼이 없다. “북한 핵 대응에 모든 옵션을 검토하라”는 그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교 무대에서 철저한 미국 중심주의적 사고를 행동으로 옮기는 그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만큼이나 문재인 정부에 더 큰 위험 요인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대북정책에 있어 햇볕정책을 추진하고 계승한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를 잇는 좌파 정부란 이유에서다. 이들이 추구하는 자주ㆍ균형외교 기조가 냉엄한 국제주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하는 입장에선, 가뜩이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자주ㆍ균형 외교를 논하는 건 본전도 얻지 못할 것이란 회의가 짙게 깔려 있다.

하지만 양국 간 마찰을 겪으면서도 국군의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 등 굵직한 결정을 내린 것은 노무현 정부였다. 이 과정에서 무역개방과 해외파병을 반대한 진보세력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당시 정책 결정권자들에 대해 이념적이라는 우려 속에도, 그들의 결정은 대체로 한미동맹에 수렴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 “임기 첫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결정이 이라크 파병이었다”면서 “어렵고 고통스런 결정이었지만, 파병을 계기로 북핵 문제는 대통령이 바라던 대로 갔다”고 했다. 문 대통령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은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었다. 문 대통령은 그래서 “우리가 파병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면서도 “더 큰 국익을 위해 필요하면 파병할 수도 있다. 그것이 국가 경영”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에 앞서 펴낸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트럼프의 외교정책이나 대북정책이 어떤 방식이든 우리는 실용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외교ㆍ안보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던 한 인사도 “외교란 구호로 해결되지 않는다. 때론 내 속을 숨겨야 하고 때론 과장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에겐 30일 한미 정상회담이 국가 경영자로서 사실상 첫 외교무대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와 앞으로 양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갈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에 앞서 청와대 인사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은 ‘굳건한 한미동맹’이다. 문 대통령은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도 “연기하거나 결정을 뒤집을 생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오히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쪽이 정부에 입장이 바뀌었느냐고 반발해야 할 처지다.

그럼에도 언론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오로지 “미국이 먼저냐, 북한이 먼저냐”고만 묻고 있다. 우리 정부의 태도가 미국에 오독될 수 있다는 섣부른 비관은 정작 우리의 협상 입지를 좁힐 수 있다.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말이 있다. 수많은 사전 조율을 거쳐 마련되는 정상회담인 만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의지가 담긴 말이다. 실용 외교를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언론이 차분하게 문재인 정부 외교를 바라봤으면 싶다.

김회경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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