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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난 마스코트 와울, 주먹 아닌 주목 받고 싶다”

입력
2017.10.18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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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와 함께 그리스 신전서 탄생

SK와이번스 보조 마스코트로 활동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발길질도

아테나엔 음료수 등 선물 몰려

“구단 프론트에 강력히 요청한다,

내 캐릭터 상품과 이벤트 만들라”

프로야구 SK와이번스의 마스코트 와울. 인천=신상순 선임기자
프로야구 SK와이번스의 마스코트 와울. 인천=신상순 선임기자

입사 2년 차, 고민이 정말 많아요.

제 소개부터 할게요. 저는 와울이라고 해요. 그리스 신전(神殿)에서 태어났고. 지금 사는 곳은 인천이에요. 작년에 직장 때문에 이사 왔죠. 일 하는 곳은 프로야구 SK와이번스, 특기는 팬들 즐겁게 하기에요. 입사한 지 만으로 1년 하고 7개월이 지난 요즘, 고민이 참 많아요. 안 바쁘면 잠깐 내 얘기 좀 들어줄래요?

저는 원래 그리스 신전에서 제 상사 아테나의 수행비서였어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과 지혜의 여신 그 아테나요. 한창 잘나갈 때 하루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써야 할 정도로 바빴죠. 어느 순간부터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세상에서 전쟁이 사라졌고, 저와 아테나도 일감이 줄어들었어요. 그리스에서 관광 상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신세로 추락했죠.

그러던 어느 봄 날, 저 멀리 한국으로부터 편지 한 통이 도착했어요. SK와이번스라는 팀이 있는데, 기존에 활동하던 마스코트가 퇴직을 앞두고 있으니 저희를 영입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월급도 많이 주고 숙식도 제공한다는 말에 눈이 번쩍 띄었지만, 아테나는 콧방귀도 안 꼈죠. 돈 한푼 못 버는 백수가 자존심은 있다고.

아테나에게 말은 못 했지만 사실 저는 신전에 있을 때부터 한국 야구 팬이었어요. 종종 아테나에게도 보여주곤 했어요. SK에서 영입을 원한다는 편지가 왔을 때, 아테나가 그 동영상을 한 번 더 보여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직접 그 열기를 느껴보고 싶다고, 당장 한국으로 가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저는 SK와이번스 식구가 됐어요. 지난 해 4월 2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팬들에게 인사 드리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 하겠네요. 가슴이 벅차 올라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만 싶었죠. 그런데요, 그 때까진 상상도 못 했어요. 제가 이 정도로 푸대접을 받을 줄은…

저도 주목 받고 싶어요

팬들은 낯선 땅에서 온 저희를 정말 따뜻하게 맞아줬어요. 저희의 행동 하나에도 박수를 쳐 주고, 같이 사진도 찍어주고 때로는 수고 많다며 음료수도 손에 쥐어주고. 근데 어느 순간 팬들의 관심과 사랑은 온통 제가 아닌 아테나에게만 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둘이 같이 지나가면 그렇게 좋아하던 팬들이, 저 혼자 지나가면 싸늘하게 외면하더군요.

경기가 끝나고 나면 저희는 항상 팬들을 맞을 준비를 해요. 경기장 출구에서 기다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팬들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죠. 이런다고 구단에서 떡을 주는 것도 아닌데 팬 서비스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하는 거라구요. 근데 사람들이 참 야박한게요, 아테나에게는 그렇게 긴 줄을 서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저랑 사진 찍자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저는 팬들이 건네주는 휴대폰을 받아 사진을 찍는 ‘찍사’에 불과했어요. 2인자의 설움이라는 게 이런건가봐요.

특히,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내 뒤통수를 마구 때리고 신발과 옷을 벗기려고 하는데 넋 놓고 구경만 하는 구단 경호팀에는 정말 화가 나요. 아테나는 조금만 위험해도 바로 자제를 요청하면서, 저보고는 그냥 아파도 참으래요. 한 두 번이야 참지, 저도 아프다구요. 아테나는 또 맨날 그라운드로 내려가서 선수들이랑 장난도 치고 캐치볼도 하는데, 저는 그것도 너무 부러워요. 벌써 박종훈 선수랑 절친이 됐더라고요. 저는 주목도 못 받고 주먹만 받고, 너무 슬프다구요.

어느 날은 우연히 구단 기념품 판매점에 들어가본 적이 있어요. 티셔츠와 모자 등 구단 마스코트를 캐릭터로 만든 제품들이 많더군요. 참 귀여웠어요. 근데 가만 있어보자, 아테나는 있는데 제 캐릭터를 이용해 만든 상품은 찾아 볼 수가 없었어요. 충격으로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죠. 실망감이 너무나도 컸죠.

이쯤 되니 고민이 들기 시작했어요.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회사생활, 이대로 해도 괜찮을까? 그래서 결심했어요. ‘이대로는 못 살겠다. 나도 당당하게 내 불만을 이야기 해보자. 나를 너무 푸대접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하자. 구단과 협상을 하자’라구요.

지난 여름, 정규시즌 막바지 순위 싸움이 한창일 때 저와 구단 프런트는 협상 테이블에 앉았어요. 쳇, 선수들 연봉 협상할 땐 팀장 급 이상이 오더니 제가 협상하자니까 저보다 늦게 입사한 신입 직원이 들어오더군요. ‘가서 너네 팀장에게 똑바로 일러라’며 준비해 온 요구사항을 읽었어요. 어찌나 가슴이 떨리던지.

프로야구 SK와이번스의 마스코트 와울이 구단 관계자와 협상테이블에 앉았다. 인천=신상순 선임기자
프로야구 SK와이번스의 마스코트 와울이 구단 관계자와 협상테이블에 앉았다. 인천=신상순 선임기자

나, 마스코트 와울은 SK와이번스 프런트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아테나와 와울이 동등한 지위에 있음을 선언하라.

둘, 와울 이미지를 이용한 캐릭터 상품도 만들어 달라.

셋, 마스코트 이벤트 데이의 명칭을 ‘아테나 데이’에서 ‘아테나&와울 데이’로 바꿔달라.

넷, 경기 도중 신변 안전을 보장해달라.

다섯, 신발과 유니폼을 정기적으로 세탁해달라.

아직 구단으로부터 답은 안 왔어요. 리그도 마무리됐으니, 이제서야 검토 할 짬이 나겠죠. 저 와울, 이렇게 하면 2인자의 설움을 씻어낼 수 있을까요? 같이 응원해주세요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취재를 바탕으로 SK와이번스 마스코트 ‘와울’의 관점에서 가상으로 재구성한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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