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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누구나 마음 속에 오두막 한 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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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누구나 마음 속에 오두막 한 채 있잖아요

입력
2017.08.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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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주 배리빌에 있는 자크 클라인의 공동체 ‘비버 브룩’에 처음으로 지어진 오두막집. 원목 골조 헛간의 목재를 가져다 재활용했다. 판미동 제공
미국 뉴욕주 배리빌에 있는 자크 클라인의 공동체 ‘비버 브룩’에 처음으로 지어진 오두막집. 원목 골조 헛간의 목재를 가져다 재활용했다. 판미동 제공

캐빈 폰

자크 클라인 외 지음ㆍ김선형 옮김

판미동 발행ㆍ340쪽ㆍ2만8,000원

“우리가 첨단기술의 세계로 더욱 깊숙이 빠져들어 갈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 풍광은 점점 더 숭고해진다. 통나무집 사진은 야생의 자연을 당장이라도 들어가 살 수 있는 주거공간으로 재구성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 환상이 현실인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이런 사진을 볼 때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 속에 언제라도 노력하면 지을 수 있는 집 한 채씩을 품고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 ‘비미오(vimeo)’의 공동 창업자인 자크 클라인은 2010년 숲 속에 오두막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온라인 사이트 ‘캐빈 폰’을 만들었다. 캐빈 폰은 오두막을 뜻하는 캐빈(cabin)과 포르노(pornography)를 합친 말이다. 특정 대상에 대한 애정을 강조하기 위해 최근 성애(性愛)라는 단어가 자주 쓰이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캐빈 폰은 ‘오두막 성애’ 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2010년 이후 캐빈 폰에는 1,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했다. 전세계 1만2,000여명이 자신이 지은 집 사진을 보내왔다. 책 ‘캐빈 폰’에는 이중 아홉 집의 이야기가 담겼다. 가장 고전적인 통나무 오두막부터 황야 한가운데 농가주택, 나무 위에 매달린 고공주택, 땅 속을 파고 들어가 지은 흙집까지, 자신이 꿈꾸던 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어한 이들의 행복한 집 짓기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국 뉴욕주 볼튼랜딩에 샘 콜드웰이 지은 단풍당 제조소. 증기가 빠져나갈 수 있게 구멍이 뚫린 박공지붕 형태로 지었다. 판미동 제공
미국 뉴욕주 볼튼랜딩에 샘 콜드웰이 지은 단풍당 제조소. 증기가 빠져나갈 수 있게 구멍이 뚫린 박공지붕 형태로 지었다. 판미동 제공
미국 북서부 아이다호주에 이선 슐루슬러가 지은 트리 하우스. 9m 상공 위에 매달린 집은 매년 조금씩 지상으로 내려오는 중이다. 판미동 제공
미국 북서부 아이다호주에 이선 슐루슬러가 지은 트리 하우스. 9m 상공 위에 매달린 집은 매년 조금씩 지상으로 내려오는 중이다. 판미동 제공

미국 북서부 아이다호주 샌드포인트에 사는 이선 슐루슬러는 자칭 ‘아드레날린 중독자’다. 열두 살 때 이미 제 손으로 나무 위에 집을 지어 본 그는 스물세 살 무렵 진지하게 ‘트리 하우스’ 건축에 돌입했다. 가족들이 사는 통나무집 옆에 우뚝 솟은 전나무 위에 자기만의 집을 짓기로 한 것. “꿈을 품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마흔 살, 쉰 살이 되고 어느 날 문득 꿈을 길가에 버리고 왔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시간과 체력이 충분할 때 꿈을 이루기로 결심한 이선은 자재를 고르고 스케치를 시작했다. 나무에 못은 박지 않기로 했다. 못 박기는 나무의 생장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그보다는 방법부터 결과물까지 “속속들이 내 것”이라는 느낌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목재를 나무줄기에 대고 쇠줄로 칭칭 감아 고정시키는 방식을 고안한 그는 지상 1m 위에서 안전성을 실험한 뒤 원래 목표한 9m 상공 위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2013년 6월에 시작해 8월까지, 3평이 조금 안 되는 육각형 평면의 집을 만드는 데 석 달 가량이 걸렸다. 집을 완성한 뒤 그는 자전거를 이용한 엘리베이터까지 만들었다. 공중에 매달린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밟으면 그 동력으로 자전거가 조금씩 올라가는 방식이다.

아무리 튼튼하게 지었다고 해도 사고를 피할 수 있을까. 걱정할 필요 없다. 이선의 트리 하우스는 1년에 60㎝씩 야금야금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다. 매년 보강공사를 하고 있다지만 천천히 내려와 5,6년 뒤에 이륙하는 모양새도 괜찮을 것 같다.

독일 작센주 오베르비젠탈에 세바스티안 하이제가 지은 집. ‘캐빈 폰’에는 전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집 사진 200여장이 담겼다. 판미동 제공
독일 작센주 오베르비젠탈에 세바스티안 하이제가 지은 집. ‘캐빈 폰’에는 전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집 사진 200여장이 담겼다. 판미동 제공

이 밖에도 땔감으로 만든 노천탕에서 몸을 녹이는 이들과 판잣집 안에서 단풍당(메이플 시럽)을 끓이며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는 이들, 숯더미 위에 양 어깨살을 조려 먹는 이들의 모습이 두루 비춰진다. 책에는 아홉 채의 집 외에도 전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집 사진 200여장이 풍성하게 실려 화보집을 방불케 한다. 넋 놓고 보다 보면 어느새 사직서를 내고 있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자크 클라인의 경고는 우리를 어느 정도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

클라인은 책을 출판하기 전, 이미 뉴욕주 배리빌의 울창한 숲 지대를 사들여 그곳에 오두막 공동체인 ‘비버 브룩’을 만들었다. 자연 속에서 함께 집을 만들고 예술과 음식을 누리기 위해 클라인이 내세운 입주 자격은 “튼튼한 심장” 그리고 “강직한 노동 윤리”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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