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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풍자했다가 침몰한 ‘세월오월’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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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풍자했다가 침몰한 ‘세월오월’도 건졌다

입력
2017.03.28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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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외압에 창고로 유폐됐다가

3년 만에 광주시립미술관 내걸려

5월 11일까지 세월호 작품 24점 전시

윤장현 시장 압력 굴복 시인 속

“진짜 외압 주체 밝혀라” 목소리도

28일 오전 광주시립미술관 건물 외벽에 홍성담 작가 작품 ‘세월오월’ 원작을 3배 크기로 확대해 실사 출력한 대형 걸개그림이 내걸려 있다. 이 걸개그림엔 홍 작가가 당초 박근혜 전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했다가 논란이 일자 닭 모습으로 바꿔 그린 부분이 그대로 담겨 있다.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28일 오전 광주시립미술관 건물 외벽에 홍성담 작가 작품 ‘세월오월’ 원작을 3배 크기로 확대해 실사 출력한 대형 걸개그림이 내걸려 있다. 이 걸개그림엔 홍 작가가 당초 박근혜 전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했다가 논란이 일자 닭 모습으로 바꿔 그린 부분이 그대로 담겨 있다.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28일 오전 3층짜리 광주시립미술관 건물 외벽에 초대형 걸개그림 하나가 내걸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하며 세월호 참사를 다룬 홍성담 작가의 작품 ‘세월오월’이다. 크기가 무려 가로 31.5m 세로 7.5m에 달한다. 시립미술관과 광주비엔날레재단, 5ㆍ18기념재단이 이날 세월호 3주기 추모전 ‘홍성담 세월오월’에 전시한 홍 작가의 세월오월 원작(가로 10.5m 세로 2.5m)을 3배로 확대해 실사 출력한 것이다.

5월 11일까지 전시될 세월오월이 세상 밖으로 ‘인양’된 데는 세월호처럼 3년이 걸렸다.

“박근혜 정부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는 죄로, 세월오월이 홍 작가 표현대로 “창고에 유폐”된 건 2014년 8월. 침몰한 세월호를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과 주먹밥을 만들었던 오월 어머니들이 힘차게 들어올리는 모습을 담은 이 작품에서 홍 작가가 박 전 대통령을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로 묘사한 게 논란의 불을 당겼다. 홍 작가는 박 전 대통령 부분을 닭 모양으로 바꿔 다시 그렸지만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에 전시하려던 재단 측이 이를 유보하자 결국 작품 전시를 자진 철회했다. 당시 윤장현 광주시장은 “세월오월의 전시 여부는 광주시가 아닌 광주비엔날레재단 전문가들의 판단에 맡긴다”는 말로 정치적 논란 상황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윤 시장은 지난해 11월 갑자기 세월오월 전시가 무산된 데 대해 “당시 김종 문화제육관광부 제2차관의 외압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당시는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정부가 궁지에 몰리던 때였다. 이를 두고 “전형적인 정권 눈치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 전 차관이 압력성 전화를 걸어왔다”는 윤 시장의 ‘뒤늦은 고백’ 은 외려 외압 주체 논란을 불러왔다. 김 전 차관이 “그런 사실이 없다”고 완강히 부인한 데다, “윤 시장이 세월오월 작품을 전시하지 못하는 이유로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전화 때문이라는 얘기를 했었다”의 윤 시장 지인의 폭로까지 나온 것이다. 당시 윤 시장은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일축했지만, 3년 만의 세월오월 전시를 계기로 “이젠 김기춘도 구속됐으니 윤 시장은 눈치 보지 말고 세월오월 전시 무산을 둘러싼 진실을 말하라”는 쓴소리도 나온다. 일각에선 31일 열릴 전시회 개막 행사에 윤 시장과 후배인 홍 작가가 모두 참석할 예정이어서, 이 자리에서 윤 시장이 진실을 털어놓을지 여부가 관심을 끈다.

홍 작가는 이번 전시에 세월호 관련 회화 작품 24점을 내놓았다. 홍 작가는 이 작품들을 통해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 어떤 고통을 당하면서 숨져갔는지, 죽음을 앞둔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이들의 영혼은 지금 어디를 서성이고 있는지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고문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그였기에 가능했다. 홍 작가는 1989년 대형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를 슬라이드로 만들어 그 해 7월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보낸 사건으로 안기부에 끌려간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3년 4개월의 옥살이를 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는 국가폭력에 의해 아이들과 승객들이 3일간에 걸친 물고문으로 죽어간 대학살극”이라며 “이번 전시는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공감하고 진실을 인양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림 속 아이들과 깊은 대화를 나눠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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