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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쪽이 '진짜'일까? 작정하고 들여다 보지 않으면 구분하기 어렵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가품을 촬영해(사진 왼쪽 회색 배경) 정품 사진 위에 얹었다. ‘문재인 안경’으로 잘 알려진 린드버그 모르텐 가품(2만5,000원)과 정품(6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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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키 에어맥스 90 가품(2만원)과 정품(1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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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클리 죠브레이커 가품(1만8,000원)과 정품(2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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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자전거 제조업체 피나렐로사의 도그마 F8 몸체 가품을 기반으로 한 자전거와 업체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정품. 고급 카본으로 제작된 정품 몸체 가격은 500만원이 넘는다. 가품은 10분의1 수준인 50만원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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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헬멧 전문 제조업체 카스크가 제작한 자전거용 헬멧 프로톤 가품(3만5,000원)과 정품(29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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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짝퉁러'가 된 이유


‘짝퉁’은 특정 제품을 베낀 가짜다. 시장질서를 어지럽히고 저작권과 상표권을 침해하므로 짝퉁의 제조 및 판매자는 물론 구매자도 사회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소비자 보호 장치가 없으니 제품 하자나 배송 지연 등으로 인한 피해에도 속수무책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원죄적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난 짝퉁이 좋다"고 선언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값이 싸서, 정품과 별 차이 없어서, 정품 제조사의 고객관리가 맘에 안 들어서 등 짝퉁을 선택한 이유도 다양하다.

그들의 당당한 짝퉁 찬가 속엔 정품 시장의 왜곡된 유통구조와 지나친 가격 거품, 갈수록 커지는 소비 격차에 대한 불만과 항의도 섞여 있다.

# 어설픈 유사품보다 성능까지 베낀 ‘짝퉁’이 낫다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강모(34)씨는 4년 전 이른바 ‘문재인 안경’으로 유명한 린드버그 모르텐 안경을 큰맘 먹고 구입했다. 60만원이 넘는 고가라 망설였지만 1.9g에 불과한 경량 소재만은 만족스러웠다. 평소 안경을 쓰고 운동하면서 벗겨지지 않을까 불안했던 강씨는 비슷한 모양의 국산 제품을 살펴본 후 무척 황당했다. 무게나 착용감 등 성능은 따라가지 못하면서 디자인만 흉내 낸 제품 가격이 20만~30만원 대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강씨는 지난해 2월 두 번째 모르텐을 구입했다. 가격은 첫 제품의 20분의 1 수준, ‘짝퉁의 천국’이라 불리는 중국의 인터넷 쇼핑몰 ‘알리 익스프레스(Ali Express)’에서 해외직구로 구입했다. 정품 못지않은 착용감과 저렴한 가격 덕분에 운동용으로 부담 없이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강씨는 “안경을 쓰고 운동을 해도 벗겨지거나 미끄러지지 않고, 무엇보다 정품 같은 가벼움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 ‘호갱’ 되느니 ‘짝퉁’ 산다

경기 김포시에 사는 신모(32)씨는 2015년 겨울 15만원짜리 나이키 운동화 ‘에어맥스 90’의 짝퉁을 중국의 인터넷 쇼핑몰에서 2만원 정도에 구입했다. 신씨는 “가격이 워낙 저렴해서 받아 보고 ‘아니다’ 싶으면 버릴 생각이었는데 배송상자를 여는 순간 믿기 힘들 정도로 정품과 똑같은 운동화가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신씨가 짝퉁을 구매한 결정적 이유는 국내 유통구조에 대한 불신이었다. 당시 인터넷 오픈마켓 등을 통해 짝퉁 운동화를 정품이라고 속여 판 업자들이 적발됐는데 피해자만 5,000여명에 달했다. 신씨는 속아서 짝퉁을 구매하는 ‘호갱(어수룩한 손님)’이 되느니 차라리 ‘진짜’ 짝퉁을 최대한 싸게 사는 편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신씨는 “양말에 브랜드 로고가 번지는 등 정품 구매자들 사이에서 제기됐던 이염 현상도 짝퉁 운동화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선수도 아닌데… 짝퉁이면 충분해

“잘 알지도 못하는 고차원적인 기능은 필요 없어요. 선수도 아닌데.” 경기 성남시에 사는 천모(33)씨는 자전거를 탈 때면 1만8,000원짜리 짝퉁 고글을 착용한다. 유명 스포츠 브랜드 오클리 제품을 흉내 낸 것인데 프레임과 다양한 색상의 렌즈 여러 개가 포함된 가격이 정품의 10분의1도 안 된다. 천씨는 “눈 부심과 바람을 막아주는 기능만 있으면 저 같은 아마추어한테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팔아놓고 단종, 괘씸해서 정품 안 사!

대전 서구에 사는 김모(31)씨는 정품 제조사에 대한 불만 때문에 짝퉁을 선택했다. 김씨는 얼마 전 4년 정도 쓴 유명 브랜드 고글의 렌즈 코팅이 벗겨진 것을 발견했다. 렌즈만 새로 구입해 끼우면 될 일이었지만 이미 단종돼 구할 수가 없었다. 25만원짜리 고글은 그렇게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김씨는 “쓸데없는 기능을 탑재한 신제품으로 가격만 올리고 기존 구매자는 신경도 안 쓴다. 괘씸해서라도 다시는 정품을 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4일 중국 오픈마켓에서 짝퉁 고글을 구매한 김씨는 배송을 기다리고 있다.

# 정품도 어차피 ‘메이드 인 차이나’

서울 송파구에 사는 손모(41)씨는 자타공인 자전거 마니아다. 그가 타는 자전거는 겉으로 보기에 1천만원 대의 고가 제품 같지만 실제로는 그 10분의 1 정도인 짝퉁이다. 손씨는 주로 인터넷 해외직구를 통해 중국산 짝퉁 부품을 구입하고 직접 조립한다.

주변에서 짝퉁을 알아보고 안전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지만 손씨는 개의치 않는다. 중국산 부품의 품질이 전반적으로 향상됐다는 믿음 덕분이다. 그는 “지금은 짝퉁이라고 무턱대고 무시하기보다 양질의 제품을 잘 고르는 안목이 더 중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복잡한 유통과정에서 지나치게 부풀려진 정품 가격도 손씨가 짝퉁을 고집하는 이유다. 그는 “고가의 유명 브랜드 제품도 알고 보면 중국에서 생산된 것들”이라며 “유럽이나 미국 등지를 거쳐 국내에 수입되면 가격이 ‘뻥튀기’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상황에서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뛰어난 짝퉁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 무시 못할 짝퉁 피해, 감당할 수 있나요?

정품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제품 불량으로 인한 피해를 소비자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수입 자전거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박재형(50)씨는 “헬멧이나 몸체, 바퀴 등 안전과 직결되는 부품의 경우 짝퉁 제품을 쓰다 사고가 나면 크게 다칠 수 있는데도 피해를 보상받을 길은 없다”고 말했다.

중고시장에서는 짝퉁이 정품으로 둔갑하면서 발생하는 피해도 적지 않다. 설령 짝퉁임을 밝히고 판매하더라도 상표권 등 지적 재산권 침해는 피할 수 없다.

허경옥 성신여자대학교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가짜 제품 사용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다양성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과시적이고 허황된 소비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가짜 제품 사용이 근절되지 않으면 지적재산권 침해로 중소 브랜드를 보호하고 육성하기 어렵고 안전한 소비 생활이나 시장질서 확립도 요원해 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등록: 2017.03.30 04:40 수정: 2017.03.30 04:40 김주영 기자박서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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