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멀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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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실 한 구석에 세워진 건조대에 지금 막 인화된 흑백 사진이 걸려 있다. 느리고 복잡해서 불편한 필름 사진은 모든 것이 빠르고 정확하며 즉흥적인 디지털로부터의 탈출이자 아날로그 감성으로의 회귀다. 쉽게 찍고 쉽게 얻는 사진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겐 필름 사진이 나오기 전까지 감당해야 할 불안감마저 가슴 설레는 경험이다. 대학생 유홍현(20)씨는 “흑백 필름으로 찍고 현상 인화까지 해보면 사진은 셔터를 누르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장소 협조> 서강대학교 사진 동아리 ‘서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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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 필름 위에 루페(Loupe)가 놓여 있다. 루페는 필름의 초점이나 노출은 물론 촬영된 피사체의 표정 등을 자세히 볼 수 있는 확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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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동카메라에 필름을 장착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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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색 암등이 켜진 암실에서 흑백 사진 인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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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끈한 디지털 사진의 홍수 속에서 빛이 새어 들거나 거친 입자가 드러나는 등 필름 사진의 ‘허점’이 특별한 사진으로 통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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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름 일부가 강한 빛에 노출되면서 해당 부분이 사진 상으로 하얗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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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카메라에 밀려 사라질 뻔 한 미국의 필름 제조사 코닥(KODAK)이 최근 필름의 인기에 힘입어 이미 단종된 베스트셀러 필름 ‘엑타크롬(Ektachrome)’의 생산을 재개하기로 했다. 엑타크롬은 일명 ‘슬라이드 필름’으로 불리는 컬러 포지티브 필름의 한 종류로 입자가 특히 부드럽고 자연색에 가까운 발색이 가능해 슬라이드 필름의 대명사로 불렸다. 디지털이 일반화 된 영화계에서도 필름으로 촬영하는 작품이 다시 늘고 있다. 현재 국내 개봉중인 영화 ‘덩케르크’ 역시 아이맥스 필름과 65mm 필름으로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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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8일 사진 연구모임이 열린 서울 마포구 대현동에 위치한 현대사진연구회 작업실에 중형 필름카메라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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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내 단계] 필름 사진 애플리케이션 ‘구닥카메라’는 디지털 사진을 필름 사진처럼 보이게 하는 필터 기능 외에 사진을 찍고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아날로그식 경험을 제공한다. 앱을 구동하면 실제 1회용 카메라와 동일한 크기의 뷰파인더를 통해서만 피사체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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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닥카메라’로 촬영한 어린이들의 모습. 필름 사진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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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문 단계] 평소 필름 사진이 궁금하던 차에 여행이나 특별한 행사를 계기로 1회용 카메라를 사용해 보는 이들이 많다. 초점과 노출이 자동으로 조절되고 플레시까지 내장된 1회용 카메라의 가격은 1만2,000원 정도다. 1회용 카메라를 든 모습과 1회용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왼쪽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zizidnjfem_b(인스타그램), 전영은(26)씨, 왕태균씨(32)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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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급 단계] ‘철컥’ 하는 기계식 카메라의 손맛은 아날로그로, 사진의 보관이나 공유는 디지털로 해결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필름 사진을 즐기는 방식이다. 필름 구입부터 현상, 인화까지의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을 최소화 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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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 단계] 현대사진연구회 회원 노병진(42)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대현동에 위치한 공동 암실에서 필름을 현상하기 위해 약품을 준비하고 있다. 필름 사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사진이 완성되는 모든 과정을 통제하려는 고수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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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름 크기 그대로 인화하는 밀착 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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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대학교 사진 동아리 ‘서광회’ 회원이 암실에서 흑백 인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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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계식 수동카메라와 필름.

필름 사진, 부활하다


거친 입자, 제멋대로 번진 빛…

SNS 사로잡은 ‘불확실한 아름다움’

"바로 확인할 수 없으니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찍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직장인 이경희(28)씨는 얼마 전 후배와 함께 떠난 일본 여행에 1회용 필름카메라를 들고 갔다. 간편하고 성능 좋은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 대신 필름카메라로 여행을 기록한 이유를 그는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내키는 대로 찍고, 곧바로 확인하고 공유하는 인스턴트 사진 시대에 느리고 불편한 필름 사진이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완벽에 가까울 만큼 매끈한 디지털 사진에 대한 반감일까, 거친 입자와 빛 번짐 등 필름 사진의 불완전한 요소를 이씨처럼 아날로그 감성을 쫓는 사람들은 “오히려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필름 한 통으로 찍을 수 있는 매수가 24장 정도 밖에 안 된다는 단점 역시 한 컷 한 컷 신중하게 찍게 하는 ‘희소성’으로 받아들인다. 사진을 기다리는 동안 맘껏 설렐 수 있는 특권을 누리거나 ‘철컥’ 하는 기계식 카메라의 손맛에도 쉽게 중독된다. 서강대학교 사진 동아리 ‘서광회’ 회장 윤석주(22)씨는 “셔터를 누르고 필름 감는 레버를 젖힐 때의 느낌 반, 사진에 대한 기대 반’으로 필름 사진을 표현했다.

‘찰칵’ 셔터 손맛에 반하고

인화될 때까지 설레고

아날로그 감성에 20대 열광

코닥은 단종 필름 다시 생산

필름 사진 열풍은 20~30대 위주의 SNS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뜨겁다. ‘#필름’ ‘#필름사진’ 등의 해시태그가 달린 사진 게시물은 150만 건이 넘고 게시물마다 ‘감성사진’ ‘느낌 좋네요’ 같은 코멘트가 빠지지 않는다. 필름 제조사도 바빠졌다. 디지털카메라에 밀려 파산했다 다시 일어선 코닥이 최근 베스트셀러인 '엑타크롬' 필름 생산을 재개했고 롤라이도 필름 신제품을 출시했다. 서울 종로3가에서 사진기자재 도매업을 하는 민수홍(57)씨는 "작년 말부터 필름을 찾는 손님이 갑자기 많아졌는데 대부분 20대 초반"이라고 전했다. 남대문시장의 카메라 전문점에도 중고 필름카메라를 찾는 고객들의 발길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과 필름을 오가며 작업을 하는 홍진훤 사진가는 필름 사진 인기의 원동력을 “모든 것이 즉각적인 사회에 대한 피로감”으로 진단했다. 그는 “필름이 지닌 불확실성과 더불어 결과가 나올 때까지 통제 불가능한 과정을 디지털 세대들이 새로운 놀이로 즐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채승우 사진가는 “사진의 내용보다 복고적 형식만을 쫓는다. 디지털에서 보기 힘든 허점을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종의 유행일 뿐 오래 가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휴대폰으로 흉내 내다

어느새 암실 실습…

필카에 빠지는 4단계

※4단계로 분류해 본 ‘필름 사진 즐기기’

스쳐 지날 유행이든 새로운 사조의 등장이든 디지털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존재 자체로 특별한 필름 사진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방식의 ‘필름 사진 즐기기’를 사진의 완성 과정에 개입하는 정도에 따라 네 가지 단계로 분류해 보았다.

#1단계 흉내(필름 없이 필름을 즐긴다)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필름 사진이 주는 느낌을 즐기는 단계다. 최근엔 필터 수준을 넘어 사진을 찍고 확인하는 과정까지 아날로그 방식을 재현한 앱 ‘구닥카메라’가 인기다. 필름 한 통에 해당하는 24장을 찍고 나면 한 시간이 지나야 24장이 리필 되고 사진 확인도 3일 후에 가능하다. 개발사인 ‘스크류바’의 조경민 마케터는 “망각의 시간을 뚫고 온 사진이 ‘3일 전에 이런 추억이 있었어’라며 선물을 전달하는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구닥카메라는 출시 3주 만에 우리나라와 태국 필리핀에서 앱스토어 유료 앱 중 다운로드 건수 1위를 기록했다.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 유저들이 휴대폰의 시간 설정을 바꿔 하루 만에 사진을 확인하는 ‘꼼수’를 쓰기도 한다.

#2단계 입문(1회용 카메라로 부담 없이)

필름 사진을 쓰는 가장 초보 단계다. 1회용 카메라는 작고 가벼운데다 초점과 노출이 자동이라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 필름에 빛이 새어 드는 등 의외성과 불확실성이 큰 점도 매력이다. 필름의 느낌을 알고 싶어 1회용 카메라를 구매한 정수빈(27)씨는 “어두운 곳이나 근접 촬영이 어렵고 가벼워서 흔들리는 단점 때문에 조심스럽게 찍게 된다. 결과물을 보고 나서 필름카메라를 살지 결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3단계 중급(아날로그로 찍고 디지털로 즐기기)

전영은(26)씨는 지난해 외할아버지로부터 필름카메라를 물려받았다. 1회용 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따뜻함과 설렘이 좋아 필름카메라를 구입하려던 참이었다. 전씨는 “태어난 순간부터 고교 졸업식까지 따라다니던 할아버지의 오래된 카메라가 나의 보물 1호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외할아버지에게 사진을 보여주진 못했다. 스캔 이미지를 PC에 저장하고 SNS를 통해 공유할 뿐 인화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씨처럼 카메라의 손맛은 아날로그로 즐기되 보관이나 감상은 디지털 방식으로 해결하는 이들은 중급으로 분류했다.

#4단계 고급(현상 인화까지 내 손으로)

수동카메라로 찍고 현상 인화까지 전 과정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즐기는 고수들이다. 작업 공간부터 약품, 기자재 등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동호회에 가입해 공동 암실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사진연구회(네이버 카페 ‘포토이즘’) 회원인 김민수(42)씨는 최신형 DSLR을 두루 섭렵하다 필름 사진에 정착했다.?그는?“수백 장을 찍고 좋은 장면을 고르는 디지털과 달리 그날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르게 보이는 필름 사진에 끌렸다”고 말했다.?장보연(37)씨는 직접 현상 인화 작업을 하는 이유를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 인화지에 적당한 톤으로 맺혀 떠오르는 순간을 맛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미소 인턴기자
등록: 2017.08.03 04:40 수정: 2017.08.09 04:52 박서강 기자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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