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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왼쪽)와 탄핵을 촉구하는 태극기가 만났다. 촛불집회에 나온 이모(48ㆍ남)씨가 탄핵 반대 집회를 마치고 귀가하는 사람들을 향해 태극기와 ‘즉각탄핵’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이 촬영된 직후 격분한 탄핵 반대 측 참가자가 태극기를 빼앗으려 하면서 소란이 일었다. 이씨는 사태가 진정된 후 "태극기가 친박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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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26일 열린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는 참가자 뒤로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심현철 코리아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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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열린 촛불집회에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깃발 위로 태극기가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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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광장 한 편에 노란 리본이 달린 태극기가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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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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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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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 참가자들은 태극기를 앞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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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4ㆍ19 혁명 당시 거리로 나선 학생이 태극기를 펼쳐 든 채 절규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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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5월 계엄군에 의해 사망한 희생자의 유족이 태극기로 덮인 관 위에 엎드려 오열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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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월 10일 부산 문현 로터리 부근에서 경찰이 다탄두 최루탄을 발사하며 대형 태극기를 앞세운 가두시위를 저지하자 한 시민이 “최루탄을 쏘지 마라"고 외치며 달려가고 있다. 고명진 전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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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12월 15일 주한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 효순, 미선 양 추모 집회가 열린 서울광장에 대형 태극기가 펼쳐져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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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중생 추모 열기가 해를 넘겨 이어진 가운데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삼일절을 맞아 한미동맹강화를 주장하는 집회를 열고 대형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 유엔기를 펼쳤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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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등 보수단체 회원 1만여 명이 2004년 9월 17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수호 집회에서 손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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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9월 8일 서울 시청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전시작전권 환수 협상 중단을 촉구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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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6월 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북핵 폐기 촉구 국민대회에서 대형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펼쳐져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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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 태극기에 쓰인 문구가 눈에 띈다.

광장의 애국심 쟁탈전… 누구를 위한 태극기인가


#2017년 광장의 두 태극기

지난 1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와 탄핵을 촉구하는 태극기가 조우하면서 일대 소란이 일었다. 오후 6시경 태극기를 들고 촛불집회에 나온 이모(48ㆍ남)씨가 서울 광화문역 부근에서 역시 태극기를 들고 귀가하는 탄핵반대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즉각탄핵’피켓을 들어 보였다. 이때 한 노인이 이씨 가슴에서 노란 리본을 발견하고는 ‘빨갱이’라고 외쳤고 다짜고짜 태극기를 빼앗으려 들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주변에 있던 양쪽 집회 참가자들이 가세해 언쟁을 벌이는 와중에 노인은 이씨의 노란 리본을 뜯어냈다. 결국 출동한 경찰에게 이씨가 태극기를 넘겨주면서 상황은 끝이 났다. 이씨는 “태극기를 들고 있으니 촛불집회 참가자들도 ‘저쪽 아니냐’고 오해를 하더라”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태극기를 들 수 있지만 친박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2017년 겨울 광장에서 태극기를 든 자는 탄핵 반대를, 태극기를 들지 않은 자는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는 세력으로 양분된다. 태극기가 이편과 저편을 구분하는 식별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상황에서 서로 생각이 다른 이들의 태극기가 공존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태극기를 들고 촛불집회에 참가한 박기덕(50ㆍ남)씨는 “‘태극기 집회’는 말도 안 된다. 저들 때문에 어버이, 엄마, 태극기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있다. 우리가 태극기를 더 많이 들어서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봉사단체 ‘노란리본공작소’는 “태극기를 민주시민 곁으로 되찾아 오자는 취지”로 노란 리본이 달린 태극기를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반면 촛불에 맞서 태극기를 든 이들은 “촛불은 종북, 태극기는 애국”이라고 주장했다. 한 70대 남성은 “촛불집회 참석한 사람들은 죄다 빨갱이다. 특검, 언론 전부 빨갱이다”라며 핏대를 세웠다. “젊은 사람들이 방송과 언론에 선동당해 속고 있으니 나라 걱정에 태극기를 들지 않을 수 없다”는 60대 여성의 한탄도 들렸다.

생각은 다르지만 국기(國旗)로서의 숭고함은 미약하게나마 광장의 이편과 저편을 관통하고 있었다. 가정 게양용 태극기를 들고 촛불집회에 나온 20대 남성은 “저 사람들이 태극기를 어떻게 사용하든 내가 생각하는 태극기의 의미는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고, 60대 탄핵반대 집회 참가자 역시 “태극기 집회든 촛불 집회든 태극기를 드는 것은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보여 주는 것기이 때문에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라는 소신을 밝혔다.

촛불집회 속 태극기

보수단체 집회 속 태극기

#현대사에 남은 태극기의 자취

좌우 진영을 막론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태극기를 내세웠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태극기를 펼쳐 든 신념과 성향이 좌에서 우로 이동하면서 광장의 태극기가 상징하는 의미 또한 달라져 왔다.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태극기는 억눌린 민심을 표출하는 최선이자 최후의 수단이었다. 1960년 4ㆍ19혁명 당시 거리로 뛰쳐나온 학생과 시민들의 손에 들려 있던 태극기엔 독재와 부패를 청산하려는 민주주의 혁명의 의지가 담겼다.

19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폭도’ ‘빨갱이’로 매도 당한 광주시민들은 태극기를 통해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계엄군과 대치한 금남로 시위에서도 태극기는 휘날렸고 무력진압에 희생된 시민들의 관은 태극기로 감싸졌다.

태극기는 1987년 6월항쟁 당시 민주화를 향한 시민의 열망을 상징했다. 학생들은 대형 태극기를 들고 가두시위에 나섰고 직접 만든 태극기를 시민들에게 나눠 주었다. 당시 한국일보 기자로서 6월항쟁을 기록한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장은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문익환 목사가 열사들의 이름을 부르는 동안 수많은 태극기가 소리 없이 펄럭이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등장한 태극기가 ‘민주’ ‘자주’‘반미’의 의미였다면 2000년대 이후 보수단체가 들고 나온 태극기는 ‘한미동맹’과 ‘안보’를 상징했다.

2002년 주한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 추모 집회에서 군중이 성조기를 찢고 대형 태극기를 등장시키며 ‘SOFA협정 개정’을 외쳤고, 비슷한 시기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들은 맞불 집회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앞세우고 ‘한미동맹’을 강조했다.

그 후 2004년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등의 국가보안법 사수 궐기대회를 비롯해 전시작전권 환수 반대(2006년), 한미 FTA 비준 촉구(2008년, 2011년), 탄핵 반대(2017) 등 보수단체 집회에서 태극기가 단골로 등장했다.

대부분의 보수단체 집회에서 태극기가 상징적 역할에 그쳤던 데 비하면 최근 탄핵 반대 집회는 태극기를 유독 적극적으로 앞세우고 있다.‘애국’을 대통령 개인의 구명과 동일시 하는 동시에 상대편을 ‘종북’세력으로 몰아세우는 수단으로 태극기를 이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진규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탄핵을 반대하는 쪽에선 촛불에 대항할 상징으로 누구도 선뜻 공격하기 어려운 태극기를 영민하게 채택한 셈”이라면서 “그러나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 성조기가 등장하면서 태극기 자체의 순수함마저 사라져 버렸다”고 평가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등록: 2017.02.15 04:40 수정: 2017.02.15 09:45 박서강 기자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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