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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서울 노량진의 한 독서실 출입문에 책장을 살살 넘겨달라는 내용의 메모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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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을 앞두고 예민해진 공시생들에게 사탕 포장지 바스락거리는 소리 역시 참기 어려운 소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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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노량진의 한 독서실 내 어느 공시생의 책상에 기침약 등 다양한 약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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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김모씨의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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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펜을 잡은 임용고시 준비생 김모(26)씨의 손가락. 그는 “항상 불안해서 자꾸 손가락을 뜯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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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서울 노량진의 한 독서실에 적막감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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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동기부여를 위해 해당 책상에서 공부하고 합격한 공시생의 명단을 붙여 놓기도 한다. 사진은서울 노량진의 한 독서실 책상.

소음, 냄새, 징크스… 노량진 공시촌은 전쟁 중


“한번 떨어지고 나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졌다. 시험 결과는 오롯이 내가 다 책임져야 하는데…” 21일 서울 노량진의 한 독서실에서 만난 양모(23)씨는 시험에 대한 불안감으로 힘들어 했다. 지난 7월 추경예산안이 통과되면서 하반기 공무원 채용규모가 1만 명 가량 늘어나게 됐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일명 ‘공시생’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오히려 커졌다. 기존 경쟁률이 워낙 높은 데다 추가채용 소식에 공시생 숫자도 크게 늘면서 합격의 문이 더욱 비좁아졌다는 생각 때문이다. 본격적인 하반기 공무원 채용 시즌을 앞둔 서울 노량진 공시촌은 어느 때보다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저기요, 귀에 거슬리거든요

운명을 가를 시험이 다가오면서 예민해진 공시생들에겐 타인의 책장 넘기는 소리에도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서울 노량진의 한 독서실 출입문에 붙은 경고성 협조 메모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포장지 바스락거리는 거 귀에 거슬려요! 나가서 드세요~’처럼 사탕이나 초콜릿 포장지 뜯는 소리는 아예 추방 대상이다. 담배냄새, 땀 냄새가 불편하니 옷을 자주 갈아 입으라는 권고문에선 ‘관리 못하면 이성친구도 안 생긴다’는 따끔한 충고도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소음 유발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책상 앞에 쪽지를 써 붙이기도 한다. ‘저기… 옷걸이에 옷 걸고 할 때 살짝살짝 해주실 수 있을까요…? 깜짝깜짝 놀라서요 ㅠㅠ. 부탁 드립니다…!’. 부드럽고 간곡한 표현임에도 타인의 공간에 불쑥 등장한 쪽지는 그 자체로 엄중한 경고다. 문제가 되는 구성원에게 강력한 제재가 필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적어 관리자에게 건네는 경우도 있다. 이 곳에선 건강 관리마저 소음 발생을 억제하기 위한 필수 덕목이 된다. 감기라도 걸려 기침을 하거나 코를 킁킁거리면 독서실 내 다른 구성원의 공부에 방해가 되므로 반드시 협조해야 한다.

#링거 투혼

건강 관리와 시험 준비는 서로 모순 관계다. 채용 시즌을 맞은 노량진 공시촌에선 더더욱 그렇다. 운동이나 휴식시간마저 쪼개 책상 앞에 앉아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에 무리가 오고 압박감과 불안감으로 인해 정신 건강마저 해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고시생의 책상 위엔 항상 감기약과 소화제 등 각종 상비약이 세트로 놓여 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김모(27)씨는 얼마 전 책상 앞에 ‘링겔(링거) 맞으러 가기!!’라고 쪽지를 써 붙였다. 김씨는 “하루 15시간 반 정도 공부를 하는데 식사시간 20분을 빼면 휴식시간도 딱히 없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체력이 안 바쳐줄 때가 있다” 며 “이럴 때 영양주사를 맞으면 효과가 직방(곧바로)이다. 노량진 쪽 병원에 가면 내 나이 대 환자들로 항상 붐빈다”고 말했다.

#징크스와의 싸움

시험을 앞두고 머리카락이나 수염을 자르지 않고 손톱도 깎지 않는 경우는 흔하다. 잘려나간 신체 일부와 함께 그 동안 쌓아온 지식까지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나름 심리적 안정을 찾고 시험 당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한 징크스는 시험 준비를 오래할수록 종류가 늘어난다. 3년째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김모(26)씨는 시험 한 달 전부터 사소한 변화를 기피한다. 휴대폰 배경도 바꾸지 않고 펜을 다 쓰고 나면 잉크만 충전해서 사용한다. 김씨는 “내가 공부한 지식이 펜에 그대로 담겼는데 새 펜으로 바꾸면 그게 없어질까 두렵다”고 말했다. 또한, 시험장에 들고 가는 가방은 절대 가벼워선 안 된다. 가방이 꼭 머리(두뇌) 같아서 속이 비어 가벼우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시험 때마다 소변 관리에 실패한 김모(25)씨는 자칫 긴장감마저 징크스가 될까 봐 불안하다. 그래서 이번엔 한방 안정제나 병원 처방약을 먹어볼 생각이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으면 나중에 좋지 않다는 통념 때문인지 정신과 보다 신경과에서 병원 처방을 받으라는 조언도 주변에서 들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공시생의 경우 시험 일주일 전부터 다양한 편의점 음식을 먹어보는 ‘적응훈련’도 한다. 시험 당일 어차피 김밥이나 도시락, 빵 등 편의점 음식을 사먹어야 하는데 혹시 탈이라도 나면 시험을 망칠 수 있으니 미리 적응하기 위해서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미소 인턴기자
등록: 2017.08.27 09:00 수정: 2017.08.27 16:48 박서강 기자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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