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우리 정부에 요청한 양국 간 협의에 응할 것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왕 위안부 사죄’발언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응을 촉구하며 압박에 나섰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13일 한일 정부가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장관 간 회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는 15~17일 독일에서 열리는 뮌헨안보회의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한 후속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한일 외교장관은 지난달 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회담을 가졌다. 두 장관은 당시 대법원 판결, 한일 간 ‘레이더ㆍ위협비행’논란 등의 갈등에도 외교당국 간 긴밀한 소통이 중요하다는 인식에 공감했다. 이번 회담이 성사될 경우, 일본 정부는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우리 정부에 요청했던 정부간 협의에 응할 것을 재차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전날 주일 한국대사관의 김경한 공사를 불러 정부간 협의 요청에 대한 답변을 줄 것을 요구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9일 징용공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이 끝났다면서 청구권협정에 의거한 정부간 협의를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그러면서 ‘30일 이내(2월 8일)’에 답변을 줄 것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일본 측 협의 요청을 수용하지 않고 외교 채널을 통한 협의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일본은 30일이 경과했음에도 한국 측의 답변이 없다는 이유로 계속 답변을 재촉하고 있다. 한국 측이 정부간 협의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제3국 위원이 포함된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할 방침이다. 이는 일본 정부가 분쟁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한국 측이 수용하지 않고 있다는 국제 여론전 성격이 강하다.
일한의원연맹 회장인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자민당 의원도 1박2일 일정으로 전날 한국을 방문, 한국 측 한일연맹의원연맹 회장인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만찬을 가졌다. 누카가 의원은 이 자리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한 우려를 전하는 등 최근 한일관계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누카가 의원은 이날 이낙연 국무총리를 면담한 자리에서 문 의장에게 “귀를 의심할 만큼 믿을 수 없는 발언”이라고 항의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또 대법원 판결을 둘러싼 일본 정부의 양국 간 협의 요청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날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문 의장의 발언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많은 (일본) 국민들이 놀라움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라며 “문 의장이 같은 취지의 발언을 반복해 매우 유감이다. 사과와 철회를 요구했다”고 답했다. 고노 외무장관도 “한국 측에 8~12일에 걸쳐 5번 항의하고 사과와 철회를 요구했다”며 “성의 있는 대응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일본 공산당 위원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문 의장의 발언과 관련, 일본 정부에 사죄의 책임이 있지만 현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사죄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일본 정부, 특히 총리 자신이 육성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쇼와(昭和ㆍ1926~1989) 천황이 전쟁의 최고책임자라고 생각하지만 현재 천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일왕의 정치 관여를 금지한 일본 헌법 3조를 설명하고 아베 신조 총리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치권에선 신성시하는 일왕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문 의장 발언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