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 특정 공간을 빌린 뒤 음식을 직접 만들어 판다. 2017년과 지난해 두 시즌에 거쳐 방송된 tvN 예능프로그램 ‘윤식당’을 떠올릴 만한 형식이다. 케이블 채널 tvN에서 방송 중인 예능프로그램 ‘커피프렌즈’와 올리브의 ‘국경 없는 포차’ 역시 연예인들이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판다. 출연자와 음식 종류, 촬영 장소만 다를 뿐 판박이나 다름 없다. tvN과 올리브는 CJ ENM 계열 채널이다. 시기와 채널만 달리해 3중 자기복제를 한 셈이다.
‘윤식당’ 판박이 ‘국경없는 포차’ ‘커피프렌즈’
자매 채널에서 제작했으니 표절과 관련한 법적 시비로부터는 자유롭다. 그렇다고 시청자까지 자기복제를 용인한 것은 아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 ‘커피프렌즈’, ‘윤식당’ 감독이 만든 건가. 너무 똑같다’(unicornS2*****), ‘(제작진은) 차별성을 줬다고 주장하겠지만 ‘국경 없는 포차’는 ‘윤식당’과 패널(출연자)만 바꾼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자기복제가 너무 심하다’(October4****) 등과 같은 비판 글이 올라온다. 화제가 된 프로그램을 지나치게 우려먹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케이블채널은 유료인데, 같은 계열사 채널들에서 똑같은 콘셉트를 세 차례나 반복하다 보니 안이한 제작이라는 뒷말도 나온다. 시청자들의 차가운 시선은 시청률로 나타났다. ‘국경 없는 포차’는 지난 20일 2%대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시청률 16%로 종방한 ‘윤식당2’(2018)의 8분의 1 수준이다.
도 넘은 방송사 자기복제
방송사의 ‘예능 자기복제’가 도를 넘고 있다. 지상파도 예외는 아니다. KBS는 집안 일을 돕는 남성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살림하는 남자들’을, SBS는 가족 관찰이란 공통분모를 지닌 ‘동상이몽-너는 내 운명’과 ‘미운 우리 새끼’를 내보내고 있다.
방송사의 거듭된 자기 복제는 매체 환경 변화와 관련이 깊다.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업체의 등장으로 매체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방송사가 변화보다 시장에서 검증받은 프로그램의 재활용으로 시청률을 안전하게 확보하려 하면서 자기복제 경향은 심해지고 있다. 지상파 프로그램을 만드는 한 외주제작사의 10여 년 차 PD는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살아남기 위해 ‘비슷하더라도 되는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프로그램을 유통하는 채널은 많아진 데 비해 예능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은 한정적이라 유사 프로그램 범람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지상파 드라마의 ‘막장 가속화’와 함께 방송사의 예능 자기복제가 국내 방송의 전반적인 질 저하를 초래하고 있어 업계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같은 포맷의 반복이 예능프로그램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교석 방송평론가는 “방송사의 자기복제로 새로운 형식의 예능프로그램 제작이 정체되면서 예능프로그램을 챙겨 보는 시청자들이 줄고 있는 분위기”라고 꼬집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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