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3살에 일본에 끌려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이제 저는 92살입니다. 죽기 전에 꼭 진실을 밝히길 원합니다.”
7일 서울고법 행정3부(부장 문용선) 심리로 열린 위안부 합의 협상 문서 공개소송 항소심 법정. 송기호 변호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호소문을 낭독했다.
길 할머니는 열세 살 나이에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지옥 같았던 4년여의 세월이 지나고 광복 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몸이 만신창이가 돼 가족이 있는 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길 할머니는 호소문에서 “일본이 위안부 문제의 진실인 강제연행을 인정했는지를 국민이 알게 해주시길 간절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길 할머니는 법정에 직접 나오는 대신 육필로 쓴 호소문을 보냈다.
송 변호사는 대신 읽은 호소문을 제출한 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때만 해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마흔 분이 살아 계셨지만, 지금은 길 할머니를 포함해 스물 두 분밖에 남지 않았다”며 “이 사건은 단순히 외교관계의 성격이 아니라 할머니들의 권리구제라는 점을 헤아려달라”고 강조했다.
이 소송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12월 28일 한ㆍ일 양국이 맺은 ‘일본군 위안부 협상’ 과정에서 ‘위안부 강제연행’ 문제에 대해 협의한 문서 공개를 요구하며 외교부를 상대로 제기된 것이다. 이듬해 1심은 “일본과의 외교적 신뢰관계에 다소 불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면서도 “12ㆍ28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로 관련 문제가 최종적ㆍ불가역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라면 피해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 정부가 어떠한 이유로 사죄 및 지원을 하는지, 그 합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 판결했다. 외교부의 불복으로 이 사건은 항소심에 올라왔고, 재판부는 다음달 18일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송 변호사는 “할머니들의 평균 연령이 92세에 달해 자칫 생전에 진실을 보지 못하거나 일본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보지 못한 채 돌아가실 수도 있다”며 외교부의 신속한 정보 공개를 촉구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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