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상 인정 안돼 각하돼야’ 외교 루트로 우리 정부에 전달
위안부 피해자 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일본 측이 사실상 공식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향후 재판 진행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2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일본 정부가 한국 재판의 피고가 되는 것은 국제법상 인정되지 않아 소송이 각하돼야 한다”는 입장을 외교 루트를 통해 우리 정부에 전달했다. 일본 외무성은 다른 국가의 재판권 행사로부터 면제된다는 ‘주권 면제’라는 국제법상 원칙을 이유로 거론했다.
앞서 길원옥(92)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은 2015년 체결된 ‘한일 위안부 협정’에 반발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하지만 일본 측이 주권침해 등을 이유로 소장을 받지 않으면서 3년째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3월에야 법원이 소송 서류를 법원 게시판에 게시하는 ‘공시송달’ 절차의 개시를 결정했고, 민사소송법에 따라 이달 9일 0시를 기해 서류가 전달된 것으로 간주되면서 재판 절차의 시작이 가능해졌다. 이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본 측이 뒤늦게 우리 정부에 항의성 의견을 전달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미 공시송달 효력이 발효된 만큼 변론기일 지정은 물론, 판결선고까지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일본 측이 재판거부 의사를 밝힌 만큼 재판부가 변론기일을 열어도 피고 측은 계속 불출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재판부로서는 부담이다.
원고 측은 재판 절차 개시에 대비한다는 방침이다. 피해자 소송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지향의 이상희 변호사는 “피고 측이 출석하지 않아도 재판 진행에는 문제가 없다”며 “향후 재판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주장하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입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일본 측의 ‘주권면제’ 주장에 대해서도 “2004년 이탈리아 대법원이 반인륜범죄에 대해서는 피해자들의 인권이 더 중요하다며 주권면제를 배제한 사례가 있다”며 “많은 국제법 학자들이 이를 지지하고 있고, 이번 재판에서도 이 사례를 적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일본 측이 우리 법원이 아닌 정부를 통해 입장을 전달한 것에 대해 “한국 사법시스템을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지금까지 재판을 거부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정부를 통해 사법부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며 “우리의 사법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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