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유소년 농구단 ‘글로벌 프렌즈’ 송기화 코치
※ 은퇴 이후 하루하루 시간을 그냥 허비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삶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은퇴 후 삶은 어때야 하는 걸까요. <한국일보>는 우아하고 품격 있게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2010년 농구 명문 인천 송도중학교에서 정년 퇴임한 송기화(68) 코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선생님, 우리가 평생 해왔던 농구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일을 해봅시다.” 대한농구협회 총무이사와 홍보이사를 지냈던 천수길(59) 한국농구발전연구소장의 연락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외의 벽에 몰린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자는 취지에 송 코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
인천 송도중ㆍ고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드 신기성과 현역 국가대표 주전 가드 김선형(SK)을 키워낸 ‘가드 조련의 대부’ 송 코치는 그렇게 농구 인생의 2막을 시작했다. 출발은 쉽지 않았다. 2010년 첫해 서울 보광초등학교 다문화가족 어린이 농구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도움의 손길이 적어 제대로 운영하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천 소장이 자비를 들여 명맥을 이어갔다. 당연히 송 코치의 보수는 없었다.
송 코치는 “퇴직하고 다문화 농구 팀에서 무보수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하니까 주위에서 하나같이 ‘힘든 결정을 했다’고 하는데, 난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했다”며 “나도 어렵게 농구를 해왔고, 천 소장의 뜻도 좋았다. 선수 시절과 지도자 생활을 합쳐 44년간 평생 농구만 하면서 받았던 혜택을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어려운 여건 속에 농구교실을 운영하던 중 여행사 하나투어가 다문화 유소년 농구 팀에 관심을 가지면서 지금의 ‘글로벌 프렌즈’가 탄생했다. 전에는 맨 땅에서 농구를 했지만 그 이후 매주 수요일 오후 이태원초등학교 강당에서 2시간 동안 날씨에 구애 받지 않고 아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칠 수 있게 됐다. 처음엔 아이들을 공개 모집했으나 지금은 아이들이 친구들을 하나, 둘씩 계속 데려와 따로 모집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농구를 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글로벌 프렌즈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매주 나오는 인원은 다르지만 평균 50명 정도 참석한다.
◇훈계 아닌 마음으로… 지도 방식의 시행착오
송도중ㆍ고, 명지대에서 선수 생활을 한 뒤 인성여고(10년), 송도고(5년), 송도중(12년)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던 송 코치는 글로벌 프렌즈 초창기에 시행착오를 겪었다. 운동만 하는 엘리트 선수 지도 방법에 익숙한 나머지 아이들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면 엄하게 꾸짖었다.
송 코치는 “한 아이가 농구공을 축구공처럼 발로 차는 걸 본 순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심하게 혼을 냈다”며 “아이의 어머니가 전화를 해 ‘나 때문에 아이가 농구하러 못 나가겠다’고 하니까 ‘아차’ 싶었다. 우리 팀에는 15개국 아이들이 있고, 문화 차이도 있는데 그 생각을 못하고 내 감정을 앞세웠다”고 떠올렸다.
이후 송 코치는 아이들에게 마음으로 다가갔다. 농구도 운동이 아닌 놀이로 접근할 수 있도록 드리블을 하면서 술래 잡기를 하거나, 가벼운 공으로 피구를 하는 등 재미를 느끼게 했다. 송 코치는 “아이들은 대화를 하고 싶어한다”면서 “마음을 열고 다가가니 서로 통하는 것도 많고, 내성적인 아이들이 인사성도 좋아졌다”고 웃었다.
현재 송 코치의 가장 큰 활력소는 글로벌 프렌즈와 만나는 시간이다. 월요일은 이태원초등학교 재학생 대상, 수요일은 나이와 학교를 가리지 않고 농구를 좋아하는 모든 아이들 대상으로 농구를 가르친다. 2010년부터 올해까지 10년째인데, 송 코치는 단 한번도 농구 교실에 빠진 적이 없다. 천 소장은 “좀 쉬시라고 해도 매번 나온다”며 “못 말리는 분”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인천 주안에서 이태원초등학교까지 지하철로 다니는 송 코치는 “지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며 “얘들하고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다. 몸이 아프다가도 같이 땀을 흘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괜찮아진다. 물론 한참 말을 안 듣는 나이 대라 미울 때도 있지만 아이들의 순수함에 금세 누그러진다”고 웃었다. 또한 “오고 가는 지하철에서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심리 관련 책이나 자기 계발 서적을 지금까지 100여권을 읽었다”며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손자를 가르치듯 볼을 잡아주고 함께 농구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때마침 송 코치에게 7년간 지도를 받고 대학생으로 훌쩍 큰 모로코 출신 메디가 인사를 위해 찾아오자 송 코치는 손자를 대하듯이 끌어안았다. 성인이 돼 요리사를 꿈꾸는 메디는 “코치님은 글로벌 프렌즈를 위해 매주 나오셨다”며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고마운 분”이라고 표현했다.
◇글로벌 프렌즈 출신 프로 선수도 한 명 봐야죠
송 코치는 단순히 농구만을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들이 단체 종목 농구를 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갖고 혼자가 아닌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도 익히도록 한다. 어느덧 호흡을 맞춘 지 긴 시간이 흘러 아이들의 협동심은 몸에 뱄다. 유소년 전국대회에 나갈 때마다 손을 맞대고 “하나, 둘, 셋, 팀워크!” 구호를 힘차게 외친다. 코트 위에서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패스’, ‘스크린’, ‘리바운드’를 강조하며 사기를 북돋는 등 다양한 국적의 정체성을 가진 아이들이 농구로 하나가 된다.
그 결과, 성적도 좋았다. 하나투어 전국 남녀 다문화&유소년 농구대회 다문화부에서 5회 우승, 1회 준우승을 거뒀다. 또 2017년 8월 유소년클럽 전국 대항전에서는 프로 팀 산하 클럽들을 잇달아 제압하며 2위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송 코치는 “글로벌 프렌즈에서 나중에 좋은 선수가 될 자원들도 좀 있다”며 두 명을 지목했다.
그 중 한 명은 필리핀 출신 샘 사무엘로, 고등학교 2학년인데 3대3 필리핀 농구 대표팀에 발탁됐다. 다른 한 명은 나이지리아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윌 프레드(용산고 1학년)로, 185㎝ 키에 탄력이 좋아 덩크슛도 가능하다. 송 코치는 “윌 프레드는 공부도 반에서 1, 2등을 할 정도로 잘한다”며 “학교에서 농구를 하자고 설득하고 있다는데, 엘리트 선수로 해도 대학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송 코치의 바람은 글로벌 프렌즈에서도 언젠가는 프로 선수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키워낸 주요 선수는 신기성, 김선형을 비롯해 국가대표 출신 가드 박찬희(전자랜드), 왕년의 여자농구 국가대표 정희숙 등이 있다. 또 남자 프로농구 선수는 총 30명 정도 배출했고, 이 중 20명이 가드다.
송 코치는 “글로벌 프렌즈에서 프로 선수가 나오면 그 동안 농구를 해왔을 때보다 더 큰 희열을 느낄 것”이라면서도 “한가지 아쉬운 건 일주일에 한 두 번으로는 부족하다. 공부나 운동은 시간을 투자한 만큼 성적이 나오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천에 제2의 글로벌 프렌즈를 만드는 것이 마지막 꿈이라고 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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