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테기 외무ㆍ스가 관방장관 냉랭… 日 언론 “美 보란듯 환담 연출”
태국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성사된 한일 정상 간 환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의미 있는 만남”이라고 평가한 반면 일본 측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깜짝 대화 제의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자연스럽게 응한 자리였을 뿐, 강제동원 배상문제 등 현안에 대한 일본의 ‘원칙적인 입장’을 확실히 전달했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짧은 대화로는 관계 진전의 물꼬를 트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5일 2박 3일의 태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방콕을 떠나기 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아베 총리와 대화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의미 있는 만남을 가졌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같은 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아베 총리가 (전날 환담에서) 문 대통령에게 일본의 원칙적인 입장을 제대로 전달했다”며 “한일 관계에 대해 계속해서 일관된 입장에 기초해 한국 측에 현명한 대응을 요구해 갈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 온도차를 드러냈다.
그는 “아베 총리가 대기실에 들어가 각국 정상과 악수를 하는 중 문 대통령과도 악수를 해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빈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라며 “한국이 발표한 고위급 협의 제안에 대해선 아베 총리는 종래대로 외교 당국 간 협의를 통해 현안을 해결하자는 취지로 응했다”고 양국 간 인식 차이를 부각했다. “매우 우호적이며 진지한 분위기였다”고 한 청와대 발표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또 청와대 발표와 일본 외무성 발표 내용의 차이에 대한 지적엔 “한국 측 발표에 대해서는 한국 측에 물으라”라고 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장관도 “10분간 대화를 주고받은 것을 가지고 크게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며 “(고위급 협의 제안의 경우) 레벨의 문제보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다음 달 중국에서 열리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한일 정상회담 개최 여부도 강제동원 배상 해법 제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유지 여부 등 한국 측의 태도 변화를 주시하면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요미우리(讀賣)신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강제동원 배상과 관련해 “여러 가지 선택지를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일본 정부 관계자가 밝혔다. 양국 간 교착상황 타개를 위해 외교 당국이 아닌 청와대 고위 관계자를 대화 창구로 하는 방안도 제안했다고 전했다.
일본 언론들은 한국이 대화에 적극 나서는 것은 지소미아 종료를 우려하는 미국과 국내 여론을 의식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한국 측에서 한일이 대화가 가능한 관계라는 것을 미국에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요미우리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거론하면서 “내우외환으로 이보다 더 한일관계를 꼬이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의 견해를 전했다. 산케이(産經)신문도 “아베 총리와의 환담을 연출, (일본과의) 문제 해결 의사가 있다는 점을 국내에 어필할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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