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경제’ 가속화 기대… 사생활침해 우려 목소리도
‘4차 산업의 원유’라 불리는 ‘데이터 3법(개인정보법ㆍ신용정보법ㆍ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데이터는 미래의 석유”라며 데이터 산업 육성을 강조하고 그 해 11월 정부여당의 주도로 발의된 지 1년 2개월 만이다. 이날 법안 통과로 데이터 활용 관련 규제가 일부 완화돼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개인정보 유출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데이터 3법은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한 ‘가명정보’ 개념을 신설하고 개인의 동의 없이 이러한 가명정보를 금융ㆍ연구ㆍ통계작성 등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신용정보법ㆍ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다른 법에서 개인 정보와 관련한 중복되는 내용을 모두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이관하도록 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키워드가 가명정보다.
가명정보는 개인 식별이 가능한 ‘개인정보’와 식별이 불가능한 ‘익명정보’ 사이의 중간 개념이다.
쉽게 말해 ‘서울 종로구 수송동 110번지에 사는 45세 남성 홍길동’은 개인정보지만 ‘서울 종로구 거주 40대 홍○○’는 가명정보다. 이 가명정보로 개인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40대 남성’과 같은 익명정보보다는 구체적이다.
이런 가명정보는 개인정보와 달리 정보주체, 즉 홍길동의 동의가 없어도 제3자에게 제공해 통계작성이나 산업적 목적을 포함하는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 가명정보 뿐만 아니라 개인정보도 ‘수집 목적과 합리적으로 관련된 범위’에 있다면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개정안에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개인정보보호 관련 정책을 심의ㆍ의결하는 합의제 행정기관인 위원회를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합의제 중앙행정기관(장관급)으로 격상하고 여러 부처에 분산된 개인정보보호 업무를 위원회로 일원화하는 내용이 뼈대다.
산업계는 본격적으로 ‘데이터경제’ 시대가 열릴 거라며 기대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그간 법적 근거가 없어 데이터 관련 사업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다며 불만이 많았다. 앞으로 통신ㆍ금융ㆍ유통 등 서로 다른 분야의 데이터를 결합해 다양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 적정성평가 절차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적정성평가는 EU가 GDPR을 기준으로 상대국의 개인정보보호 수준을 평가하는 제도다. 평가를 통과하면 해당국 기업은 EU에서 수집한 개인정보를 역외로 이전하는 것이 허용되나 그렇지 못한 국가는 기업이 개별적으로 표준계약을 체결하는 등 행정 부담을 지게 된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EU 측과 관련 내용을 협의해왔지만, EU의 요구수준을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국내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평가가 미뤄져 왔다. 행안부 관계자는 “우리 개인정보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EU에서 적정성평가 초기결정을 내리게 된다”며 “법이 시행되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새로 출범하는 하반기에는 적정성평가 최종결정이 내려져 발효되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명정보로 인한 사생활침해 우려도 여전하다.
가명정보에 다른 정보를 추가해 개인을 재식별할 경우 개인은 5년 이하 징역과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고 기업은 연 매출액의 3%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 등은 보호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반발하고 있다.
다른 정보를 결합해도 누구의 정보인지 식별할 수 없는 익명정보와 달리 가명정보로는 개인을 식별하는 게 가능할 수 있으며, 온라인상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데이터를 가명정보와 결합해 악용하는 사례가 늘 것이라는 우려다. 또 의료정보나 유전자 정보, 생체인식 정보 등 사실상 가명처리가 어렵거나 쉽게 재식별이 가능한 개인정보를 어떻게 취급할지도 불분명하다.
이날 김종대ㆍ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개인정보보호법ㆍ신용정보법 개정안에 대해 각각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 한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토론에 나서기도 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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