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의 강압적인 체포 과정에서 숨진 뒤 이에 항의하는 차별 반대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시위대의 제스처가 눈길을 끈다. 일부 지역의 경찰들이 한쪽 무릎을 꿇는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하는가 하면, 눈을 내린 채 한쪽 팔을 들고 서 있는 시위대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제스처의 배경엔 인종차별에 반대해왔던 미국 사회의 흔적이 담겨 있다.
◇나이키 광고까지 실렸던 ‘한쪽 무릎꿇기’
1일(현지시간) 미국 CNBC 방송에 따르면, 플로리다ㆍ샌타크루즈ㆍ캘리포니아주(州) 등 미 일부 지역에서 경찰들이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제스처인 ‘무릎꿇기’를 선보이며 시위에 동조하고 있다. 미 캘리포니아주의 샌타크루즈 시 경찰은 공식 트위터에 “샌타크루즈 경찰은 평화 시위를 절대적으로 지지한다”며 흑인과 백인 경찰관 2명이 오른쪽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을 게시했다. 플로리다주에서도 경찰 10여명이 ‘무릎꿇기’를 하는 사진이 등장했다.
이 같은 ‘무릎꿇기’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제스처로 등장시킨 사람은 전 미국 프로미식축구리그(NFL) 선수 콜린 캐퍼닉(33)이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캐퍼닉은 2016년 8월 진행된 한 경기에서 미국 국가가 연주될 때 국민의례를 하는 대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미국 경찰의 총격으로 흑인이 잇따라 사망하는 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 캐퍼닉은 “흑인과 유색인종을 탄압하는 나라의 국기에 존경을 표하기 위해 일어설 수 없다”고 말했다.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9월 22일 한 연설에서 “NFL 구단주가 국가와 국기에 존경을 표하지 않는 선수에게 ‘지금 당장 저런 개XX를 경기장에서 쫓아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가”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이틀 뒤 NFL 경기에서 백인을 포함한 200여명의 선수가 무릎을 꿇었고, 10월 8일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인디애나 폴리스 콜츠의 경기를 보러 경기장을 찾았다가 상대 팀 49ers 선수 20여명이 ‘무릎꿇기’를 하는 것을 보고 경기장을 떠났다. 다음해엔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캐퍼닉을 ‘저스트 두 잇’ 캠페인 30주년 광고 모델로 발탁하기도 했다.
◇콜린 캐퍼닉 등장 40년 전에도… 올림픽 육상 선수는 팔을 들었다
콜린 캐퍼닉 이전에도 제스처를 통한 인종차별 반대 시위도 있었다. 1968년 멕시코시티 하계올림픽 남자 육상 200m 시상식에서 미국 육상 선수 존 카를로스(75)는 검은 장갑을 낀 손을 치켜들고 고개를 숙인 채 인종 차별에 항의 표시를 했다. 카를로스는 올림픽이 금지하는 정치적 의사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올림픽 선수촌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카를로스는 백인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고 미 육상계에서 쫓겨나다시피 했고, 그의 아내는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미국 내 인권 의식이 개선되며 카를로스는 1984년 LA올림픽 준비위원회에 고용됐다. 2011년 자서전을 내는가 하면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는 “1000번의 기회가 다시 주어지더라도 내 행동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회적 발언도 이어 나갔다. 이후 카를로스의 제스처는 미국 내 인종차별 반대의 상징이 되어 최근 시위에도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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