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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꼬리 무는 대학가… 징계 관대하고 예방교육 안 받은 탓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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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꼬리 무는 대학가… 징계 관대하고 예방교육 안 받은 탓도

입력
2018.03.15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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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ㆍ학생 간 엄격한 상하관계

성범죄 드러나도 파면 드물어

4년간 35명 중 11명만 해임

교수들 예방 교육 66%만 참여

2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체육관 앞에서 'H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학생모임'에 참여 중인 재학생들 2018학년도 입학식에 입장하는 신입생들 앞에서 팻말과 현수막을 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H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학생모임'은 지난해부터 '갑질'을 해왔다는 의혹을 받는 사회학과 해당 교수에 대한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2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체육관 앞에서 'H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학생모임'에 참여 중인 재학생들 2018학년도 입학식에 입장하는 신입생들 앞에서 팻말과 현수막을 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H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학생모임'은 지난해부터 '갑질'을 해왔다는 의혹을 받는 사회학과 해당 교수에 대한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대학)본부는 책임지고 H 교수를 파면하라!”

지난 2일 서울대 입학식. 설레는 표정으로 행사장으로 발길을 옮기던 신입생들 앞에 굳은 표정의 선배들이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이들 손에 들린 피켓에는 학교 본부에 H 교수의 파면을 요구하는 글들이 적혀 있었다. H 교수는 대학원생들에게 냉장고 청소, 자동차 점검 등 사적인 일을 시킨 것은 물론이고, 여학생 몸을 만지거나 성적 사생활을 얘깃거리로 삼는 등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지난해 6월 학내 인권센터로부터 ‘정직 3개월’ 권고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피해 학생들의 고통에 비해 처벌이 너무 약하다”며 “결국 다시 아무렇지 않게 교단에 설 것이고 그 모습을 우리는 지켜볼 수가 없다”는 게 학생들 요구였다.

대학이 들불처럼 번져가는 미투(#Me Too) 중심지가 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교수에 대한 제자의 성범죄 폭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교수와 학생 간 엄격한 상하관계 때문이라는 지적과 함께 교수에게 관대한 징계와 쓸모 없는 성범죄 예방 교육 등이 성범죄에 취약한 상아탑을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관대한 징계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교육공무원 징계양정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성희롱의 경우 고의성이 있을 때 파면 또는 해임을 내리게 하고, 단순 과실일 때는 강등 또는 정직 등을 부과토록 하고 있는데, 대부분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정직으로 결론 내려지는 게 현실이다.

최근 여학생 3명을 상대로 속옷 끈을 고쳐준다며 신체 접촉을 하는 등 9차례에 걸쳐 성추행을 하고 이를 소문 낸 학생을 찾아가 협박한 지방 국립대 교수, 학생들과 함께 간 MT에서 동료 여 교수 팔과 손을 만지며 “교수님과 잘 거니까 방을 따로 마련하라”고 하고, 실제 수면 중인 동료를 껴안은 사립대 교수 등이 성비위로 적발이 됐는데, 한결같이 정직 3개월이라는 징계가 내려졌다. 반면 성범죄가 인정돼 파면·해임된 교수는 소수에 불과하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4년부터 4년간 성범죄로 징계를 받은 국립대 교수 35명 중 파면이나 해임 중징계를 받은 교수는 11명(31%)에 불과했다.

대학 교수는 성폭력 예방교육을 가장 적게 받는 집단 중 하나로도 꼽힌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성희롱 등 폭력예방교육 실적 점검 결과를 내놨는데, 대학 전임교수 이상의 교육 참여율은 66.5%로 다른 국가기관(87.1%) 지방자치단체(82.9%) 공직유관단체(92.3%)보다 현저히 낮았다.

그렇다고 교육을 강제할 수도 없다. 지난달 8일 서울대에서는 학내 인권센터가 추진 중인 ‘인권ㆍ성평등 교육 필수화’ 심의가 열렸지만 일부 교수가 “성평등 교육 필수화는 교수들을 잠정적 성범죄자 취급하는 것 아니냐” “지금도 우리 XX학과 교수들은 거의 교육을 이수하지 않는다”고 반발, 보류 처리됐을 정도다. 여가부 관계자 역시 “학문의 권위 앞에서 잠재적인 성범죄자 취급 받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교수들이 많다”고 전했다.

정미혜 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교육 이수 실적 보고를 기관 단위로 하게 되어 있는데, 이는 학생 교수 직원 등 주체가 다양한 대학에서는 적절하지 않다”며 “방식 자체를 개편해야 실효성 있는 교육이 이뤄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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