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에 인수된 스위스 IDQ
‘비눗방울’에 암호키 심어
정보 훔치는 순간 사라져
양자컴퓨터로도 못 뚫어
금융•항공 등 활용 무궁무진
“양자암호가 필요한 시대는 이미 임박했습니다. 우리는 일찍부터 연구를 시작했고, 그렇기 때문에 기술에 자신이 있습니다.”
1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난 그레고아 리보디 IDQ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다가올 5G 시대 핵심 보안기술인 양자암호통신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2001년 설립 당시부터 양자암호 기술을 연구해온 IDQ는 보유한 관련 특허만 50여개로, 현재 양자암호통신 분야에서 중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 매출액 1위에 올라 있다. 리보디 CEO는 “앞으로 5년 이내에 수조원대 양자암호 시장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가까운 미래 ‘꿈의 컴퓨터’라 불리는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 존재하는 모든 정보가 쉽게 해킹이 가능해진다. 현재 기술로 만들어낼 수 있는 암호는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일정한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가 뚫을 수 없는 건 같은 양자 기술을 활용해 해킹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양자암호통신뿐이다.
양자암호통신이란 정보를 열어볼 수 있는 암호키를 만든 뒤 이를 빛 알갱이(광자)에 실어 보내는 기술이다. 리보디 CEO는 “기존 암호통신이 ‘테니스 공’ 각각에 암호키를 심어 전달하는 방식이었다면, 양자암호통신은 ‘비눗방울’에 암호키를 심는다”면서 “중간에 누군가가 정보를 훔쳐가려고 시도하는 순간 암호키가 사라지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핵심 기술은 패턴 예측이 불가능한 순수 난수(random number)를 만들어내는 기술과, 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술이다. IDQ는 2002년 최초의 양자암호생성기(QRNG)를, 2006년엔 최초의 양자키분배(QKD) 서비스를 출시할 정도로 이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를 지키고 있다. 주요 고객은 보안이 중요한 국가기관, 금융, 우주항공 분야 등 수백 곳에 달한다. 안전성이 가장 중요한 5G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SK텔레콤이 지난달 700억원을 투자해 IDQ 주식 50% 이상을 확보한 이유도 여기 있다.
SK텔레콤이 IDQ를 선택한 핵심 이유 중 하나는 IDQ와 제네바대 간의 탄탄한 산학연계에 있다. IDQ에서 차로 5분 남짓 거리에는 IDQ 공동 창업자이자 양자 분야 세계적 석학인 니콜라스 지상 교수와 휴고 즈빈덴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제네바대 물리학부 건물이 있다. 이곳에서는 양자 기술에 대한 기초 연구와 이후 이를 어떻게 산업에 적용할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다. 석ㆍ박사 연구생들이 연구에 한창인 실험실을 직접 소개한 지상 교수는 “제네바대에서 연구된 양자 기술은 IDQ가 우선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IDQ에 필요한 연구가 있을 땐 제네바대에 먼저 요청해야 한다”면서 “학계가 학문 연구에서 끝내지 않고 산업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 교류하는 게 IDQ 기술의 원천”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IDQ가 SK텔레콤을 받아들인 이유는 뭘까. 리보디 CEO는 “도시바ㆍ화웨이 등과 시장에서 싸우기 위해서는 강한 파트너가 필요했다”면서 “SK텔레콤과 파트너십을 맺으면 많은 통신사에서 양자암호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IDQ와 공동 최고기술책임자(CTO) 체제를 가동하고 글로벌 양자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다. 한명진 SK텔레콤 GA그룹장은 “양사 역량을 공유해 IDQ를 세계 1위 유니콘 기업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IDQ는 양자암호통신 외 양자센서 분야에서도 강점을 보인다. 양자센서는 60㎞ 떨어진 곳에 있는 촛불을 감지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로, 자율주행차나 위성, 반도체 영역 등에서 널리 활용될 수 있다. 박진효 SK텔레콤 ICT기술원장은 “IDQ와의 파트너십으로 5G시대 대한민국이 통신과 보안 모든 분야에서 앞서나가는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제네바=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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