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세계 7위 거대시장 AEC, 한국 경제 살려 줄 특효약”

입력
2018.01.04 04:40
5면
0 0

*단일 시장으로 결속한 동남아

2020년까지 성장률 5.6% 전망

15~64세 생산가능인구 증가세

대외개방 추구하며 교류도 활발

*中ㆍ日은 이미 주도권 쟁탈전

시진핑ㆍ아베 매년 2ㆍ3차례 방문

동남아 주요국에 수백억弗 투자

*아세안 “한국 협력 절대 필요”

中ㆍ日 경제 의존도 줄이기 원해

“국내 기업들 단기적 투자 대신

장기적인 시각 갖고 진출해야”

인도네시아 등 젊은 인구 대국인 동남아 국가가 한국이 내세운 ‘신 남방정책’을 바탕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주요 도시 곳곳에서 개발 붐이 일고 있는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등 젊은 인구 대국인 동남아 국가가 한국이 내세운 ‘신 남방정책’을 바탕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주요 도시 곳곳에서 개발 붐이 일고 있는 인도네시아.

“우리나라(필리핀) 평균 연령은 23세입니다. 그런데 한국(2017년 41.2세)은 40세가 넘죠.”

한국과 필리핀이 경제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를 묻자, 카를로스 도밍게스 필리핀 재무장관은 기다렸다는 듯 두 나라 인구 통계부터 제시했다. 근면한 국민성, 앞선 기술력을 자랑하지만 한국은 고령화와 성장잠재력 하락 위험에 직면했지만, 필리핀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도밍게스 장관은 “두 나라는 최적의 협력조건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신 남방정책’, 한국병 치유의 특효약

한국과 다른 처지여서 오히려 서로 도움이 될 조건을 갖춘 나라는 동남아에서 필리핀뿐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등 대부분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회원국들은 ▦평균 연령 20대 ▦연 5% 내외의 높은 성장률 ▦자원부국이란 공통점을 갖추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동남아 지역국가의 2010년부터 2020년까지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5.6%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세계 평균 성장률(4.0%)의 1.4배다.

인구 구조도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2010년 5억9,000만명이던 총인구가 2020년 6억7,000만명으로 증가하고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추세가 이어져 2050년에는 7억9,000만명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경제 성장의 원동력인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0년부터 2025년까지 지속적으로 늘어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에서는 생산가능인구가 25%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 정세도 고도 경제성장에 유리한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현재 아세안이라는 느슨한 수준의 연대에 머물렀으나, ‘뭉쳐야 번영한다’는 점을 자각하면서 동남아 국가들이 2016년 이후 ‘아세안경제공동체’(AEC)라는 깃발 아래 단일 시장으로 결속하고 있다.

아세안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추이.
아세안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추이.

AEC는 기존 아세안 10개국이 주축이 되어 결성됐는데, 경제통합 선언으로 순식간에 인구(2017년ㆍ6억5,000만명)는 세계 3위, 경제 규모(2017년ㆍ국내총생산 합계 2조7,200억달러)로는 세계 7위의 거대시장으로 부상했다. AEC가 추구하는 지향도 경제 성장에 유리하다는 평가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우선 보호주의에도 불구하고 AEC는 경제블록이면서도 대외 개방을 추구한다. 아직 충분한 구매력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7억명에 육박하는 인구가 받쳐주는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해외투자를 적극 유치하는 한편, 회원국간 자본ㆍ인력ㆍ기술의 자유롭고 활발한 교류와 분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가톨릭대 경영학부 김기찬 교수는 “동남아 국가와의 교역과 협력이 강화된다면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 남방정책’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특효약이라는 것이다.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장관 재임 시절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장기적으로 20%까지 낮추는 정책을 추진했었다”며 “신 남방정책은 ‘사드 파동’에서 위험성이 확인된 과도한 중국 의존도(2016년ㆍ25.1%)를 낮추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ㆍ일본의 선제적 진출

단일시장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 동남아 지역은 이미 주요 선진ㆍ강대국의 진출을 끌어내고 있다. 최근 아세안과 상설 협력체를 ‘아세안+3(한국ㆍ중국ㆍ일본)’에서 ‘아세안+6(호주ㆍ인도ㆍ뉴질랜드 추가)’로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도 이 지역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호주, 뉴질랜드, 인도가 발 빠르게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맹주 중국과 일본은 아세안을 둘러싼 주도권 쟁탈전을 이미 오래 전부터 벌이고 있다. 두 나라는 한국의 ‘신 남방정책’ 선언 훨씬 전부터 이 지역에 공들여 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매년 2, 3차례 동남아 주요 국가를 방문, 인프라 개발에 대한 참여 의지를 밝히고 대규모 지원도 약속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동남아 지역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일본은 아베 총리가 방문할 때마다 수백억달러 투자를 약속하고 있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 메콩강 유역 국가들의 인프라 투자에 70억달러를 지원한 게 대표적이다. 중국도 넘쳐나는 외화보유액을 이용, 철도에서부터 부동산까지 거의 모든 부문에서 ‘싹쓸이’ 투자에 나선 상태다. 중국 최대 민영투자회사인 민성(民生)증권이 캄보디아 대기업 LYP그룹과 수도 프놈펜 근처에 15억달러를 들여 2,000만㎡ 규모의 복합 위락시설을 건설키로 한 것을 비롯해 필리핀, 라오스, 미얀마 등지에서는 철도, 항만건설에 중국 자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한국, 동남아 균형정책ㆍ한류가 돌파구

중국ㆍ일본의 물량경쟁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지만, 주요국 핵심각료를 포함해 다수의 전문가는 ‘한국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아르준 고스와미 ADB 지역협력국장은 “아세안에서 한국은 중진국 함정을 돌파한 선진국으로 통한다”며 “2차 대전 직후에는 똑같이 빈곤했으나, 단기간 세계 주요 경제국으로 도약한 한국 발전 경험의 전수를 원한다”고 말했다. 고스와미 국장은 “한국 내부에서는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동남아 국가에는 여러차례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극복해 온 한국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와얀 딥타 인니 중기부 차관.
와얀 딥타 인니 중기부 차관.

와얀 딥타 인도네시아 중기부 차관도 “인도네시아는 농촌지역 개발 운동 일환으로 ‘1촌 1특산물’ 운동을 펼치고 있다”며 “한국의 농촌 근대화 운동인 새마을운동 발전 경험을 전수받고 싶다”고 밝혔다. ‘신 남방정책’ 실천 방안에는 현 정부가 선호하는 특정 분야ㆍ이슈 대신 한국 경제의 전체 발전과정을 긍정적 시각에서 조망한 현실적 대안이 담겨야 한다는 얘기다.

한류를 바탕으로 고양된 한국의 국가 이미지와 중국ㆍ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동남아 국가의 전략적 선택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지렛대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응답한 아세안의 한 고위 관리는 “중국ㆍ일본의 투자가 반갑지만, 그들의 경제적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질 가능성에도 우리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존도 심화에 따른 위험 부담이 없는 한국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남아 국가 대부분이 중국ㆍ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를 원치 않는 만큼 후발주자인 한국에 전략적으로 기회의 문을 제공하는 순간을 제대로 포착해야 한다는 얘기다.

가톨릭대 김 교수는 “한국 기업들도 아세안 지역의 저임 노동력만 노리고 진출해 투자 성과를 독차지하려는 단기적 투자 대신, 투자 이익을 공평하게 나누는 호혜적 접근 등 장기적 시각을 갖추고 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정부도 국내 기업 및 현지 한상(韓商)과의 유기적 연계를 바탕으로 ‘신 남방정책’의 구체적 방안을 이른 시일 내에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닐라ㆍ자카르타=조철환 국제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