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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신원조회에 막혀 美 매티스 전우 ‘정 하사’ 끝내 못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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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신원조회에 막혀 美 매티스 전우 ‘정 하사’ 끝내 못 찾아

입력
2017.03.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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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가 지난달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 방한 이후 해병 전우회 등에 배포한 '정 하사' 찾기 안내문 내용.
해병대가 지난달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 방한 이후 해병 전우회 등에 배포한 '정 하사' 찾기 안내문 내용.

귀신 잡는 해병대도 45년 전 ‘정 하사’를 끝내 찾지 못했다. 정 하사는 지난달 방한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만나고 싶은 과거의 전우”라고 지목하면서 트럼프 정부 시대 한미 군당국을 잇는 미담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하지만 본인 동의 없이 신원조회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군에서 확보한 인적 사항과 해병 전우회를 수소문하는 것만으로는 찾는 게 불가능해 해병대는 더 이상의 추적을 포기하기로 했다.

매티스 장관은 지난달 2일 한민구 국방장관과의 만찬 도중 과거 한미 연합훈련 당시 강릉에서 한국 해병대와 훈련하던 시절 얘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정 하사(staff sergeant Mr. Jeong)에게 도움을 받았고, 지금의 내가 있도록 도움을 줬다”며 “내 군 생활에 영감을 줬던 그를 꼭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추운 날씨에도 김치를 가져다 줘서 그 덕분에 낯선 한국 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도 했다.

매티스 장관은 1969년 해병대에 병사로 입대한 뒤 제대했다가, 다시 장교로 임관해 중부군사령관을 거쳐 장관에 오른 ‘전설’이다. 해병 소대장 시절 오키나와와 하와이에 근무하며 1972년부터 3년간 한국을 찾아 상륙훈련을 했다고 한다.

당시 매티스 장관의 방한은 트럼프정부 출범 이후 가뜩이나 미 관료와의 스킨십이 아쉽던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다. 하물며 해병대의 전설이 김치와 정 하사라는 한국과의 인연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으니, 우리 정부로서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 상황이었다. 정 하사가 매티스 장관과 포옹하는 장면이라도 연출한다면 한미동맹에 이보다 더 좋은 호재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매티스 장관이 정 하사에 대해 “군 생활에 영감을 줬다”고 극찬하면서 궁금증은 증폭됐다. 정 하사가 군에서도 촉망 받는 ‘에이스’였다는 의미다. 한미 해병대의 연합 훈련은 미군 소대장이 우리측 분대원을 지휘하는 방식이기에, 우리 군은 정 하사가 매티스가 이끄는 소대에 속했던 분대장일 것으로 추정해 탐문에 나섰다.

단서는 고작 성씨가 ‘정’이라는 것과 1972~1974년이라는 매티스 장관의 한국 근무기간이 전부였지만, 불가능이 없는 해병대 정신을 감안하면 정 하사를 찾는 건 시간 문제로 보였다. 해병대는 1972년도로 추정되는 정 하사의 군번과 기수를 담은 안내문을 만들어 해병 전우회와 기수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파했다. 나이는 65~75세로 추정됐다.

마침내 정 하사로 보이는 8명을 찾아냈다. 이중 2명은 사망했고, 2명은 연락이 닿았지만 매티스 장관과는 연관이 없었다. 문제는 나머지 4명이었다. 병적 기록부에 적힌 입대 당시 주소는 바뀐 지 오래이고, 군번과 주민번호를 파악했지만 비공식적으로 소재를 파악하는데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신원조회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미관계의 대의를 위해 어디까지나 선의로 정 하사를 찾고 있지만, 범죄 혐의가 없는 사람을 무턱대고 조회하는 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탄핵 정국 이후 정부가 국민들의 불신을 받는 상황인터라 국방부는 행정자치부나 경찰에 아무런 협조 요청도 못하고 냉가슴만 앓았다. 군 내부에서도 정 하사를 찾는 게 취지는 좋지만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한미관계의 신선한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정 하사 찾기 프로젝트’는 이렇게 한달 여 만에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어딘가에서 살아있을 정 하사가 해병대의 간절함을 알고 제 발로 걸어 나오지 않는 한 말이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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