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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집배원의 과로사

입력
2017.02.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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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 전남 보성에서 주로 일했던 류상진씨는 40년 집배원 생활을 마친 2015년 ‘밥은 묵고 가야제!’라는 책을 냈다. 그가 집배원 일을 막 시작한 1975년 7월 주민들이 읍내에 가면 사다 달라던 소주, 라면, 진통제를 구입해 자전거에 싣고 가다 고랑으로 빠져 소주병은 깨지고 라면과 진통제는 흙투성이가 돼 마음 졸였던 ‘작가의 말’부터 흥미진진하다. 한 할아버지가 쪽파 종자 다듬는 일을 시킨다며 류씨 앞에서 아내를 흉보고, 어떤 할머니는 류씨가 보는데도 눈물을 흘릴 정도로 이들의 관계는 스스럼이 없다.

▦ 책에는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살겠다면서 정자에 반짝이 조명등을 설치하겠다고 의논해 오는 노인이 나오고, 류씨만 보면 술 한잔 하라는 할아버지도 등장한다. 모두 친근하고 정겹다. 그래서 류씨가 우편물만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들 또는 말벗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류씨뿐 아니라 집배원이 독거노인을 방문해 안부를 묻고 건강을 살핀다는 식의 사연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러나 그런 흐뭇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미담에 가려 있던 집배원들의 과다 노동이 논란이 되고 있다.

▦ 집배원 사이에 “죽으면 무릎부터 썩어 없어질 것”이라는 자조적 농담이 있다고 한다. 요즘 집배원들이 많게는 하루 2,000통의 우편물을 배달하고 시골에서는 100㎞ 이상을 오토바이로 달릴 때가 있다는 보도를 접하면 이런 말이 나오는 배경이 보인다. 이들은 시간을 맞추기 위해 점심을 거를 때도 많다. 또 배달 일을 마치면 우체국으로 돌아가 다음날 배달할 우편물을 밤늦게까지 분류해야 한다. 종이 편지는 줄었지만 수취인에게 직접 전하는 등기와 택배가 늘어 업무 강도는 강해졌다고 집배원들은 하소연한다.

▦ 40대 집배원 조만식씨가 6일 충남 아산의 우체국 근처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40분 거리에 집이 있지만 일이 많아 방을 따로 구해 혼자 지냈다. 그는 전날인 일요일에도 출근해 우편물 분류작업을 했다. 지난 1년 동안 숨진 집배원 9명 중 7명이 과로사 의심을 받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배달물량ㆍ세대수 증가 지역의 집배원 증원 등을 약속했지만 현장에서는 미흡하다는 반응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에 따르면 집배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888시간으로 2015년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 2,113시간보다 훨씬 길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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