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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땅 잃고 오르다

입력
2014.12.1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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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이 13일 새벽 경기 평택시 쌍용차 평택공장 70m 높이 굴뚝에 오른 건 “현재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에게 손을 내밀어 달란 부탁을 하기 위해서”다. 항소심의 ‘해고 무효’ 판단을 대법원이 뒤집은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은 재직 중인 노동자들만 갖고 있다는 게 이들 판단이다. 사진은 상고심 결과가 나온 지난달 13일 대법원 정문에서 눈물 흘리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이 13일 새벽 경기 평택시 쌍용차 평택공장 70m 높이 굴뚝에 오른 건 “현재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에게 손을 내밀어 달란 부탁을 하기 위해서”다. 항소심의 ‘해고 무효’ 판단을 대법원이 뒤집은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은 재직 중인 노동자들만 갖고 있다는 게 이들 판단이다. 사진은 상고심 결과가 나온 지난달 13일 대법원 정문에서 눈물 흘리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올라가면 맞설 게 더 많다. 혹한과 맹풍. 공포와 고독. 끌어내리려는 중력. 엄습하는 허무. 쫓겨간 셈이다. 온통 자본 차지인 땅. 벼랑에 선 노동자들. 동지가 호소한다. 어깨를 겯자.

“1931년 5월 29일 새벽. 평원고무공장 여공 강주룡(1901~1932)은 밤새 광목을 찢어 만든 줄을 타고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올랐다. 살인적인 임금 삭감에 파업과 단식으로 맞서다 공장에서 쫓겨난 뒤였다. (…) 한국노동운동사에 기록된 첫 고공농성이다. 2014년 12월 13일 새벽.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김정욱과 이창근이 평택공장 70m 높이 굴뚝에 올랐다. 사측의 정리해고에 맞서 싸운 지 6년, 항소심의 ‘해고무효’ 판단을 가볍게 뒤집은 대법원 판결로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진 뒤다. (…) “콧물이 고드름으로 변해 버리는” 혹한에 “육모방망이보다 더 아픈 바람 몽둥이”를 견디며 이들은 외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굴뚝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약하고 무서움 또한 많고 여린 인간인지를 알리기 위해 올랐습니다. 도와주십시오.” 80여년 세월이 무색하게, 설 땅을 잃고 하늘로 오르는 노동자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회사 분할매각으로 일터를 잃은 원사생산업체 스타케미칼의 차광호씨가 구미공장 굴뚝에 오른 지 오늘로 206일째. 케이블업체 씨앤앰이 도급업체를 바꾸는 과정에서 해고된 하청업체 노동자 임정균, 강성덕씨도 서울 태평로의 대형 전광판에서 37일째 농성 중이다. 이 땅에서 노동자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아프게 보여준다. “당신들이 외롭지만 완전히 고립된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쌍용차 고공농성을 응원하기 위해 광화문광장 1인 시위를 시작한 배우 김의성씨의 말이다. (…) 하늘에 오른 노동자들은 오늘도 칼바람을 견디며 온 몸으로 외치고 있다. “여기, 사람 있소!” 그 안타까운 외침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눈꽃처럼 거리에, 광장에 내려 앉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이들이 손을 내밀어야 할 때다.”

-고공에서의 외침(한국일보 ‘지평선’ㆍ이희정 논설위원) ☞ 전문 보기

““…… 나는 저 망루로 올라갈 거요. 그래서 이 세상을 어둠으로 몰아넣은 어둑시니를 내려다보려 하오. 어둑시니 맞설 수 있는 것은 불가사리뿐이오. 우리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것이 어둑시니라면 불가사리는 저들을 향한 우리의 분노라오.” 12월13일 새벽, 내가 내년에 무대에 올릴 인형극 대본의 마지막 대사를 쓰고 있을 때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김정욱이 70m 굴뚝 위에 올랐다. (…) 재개발 이야기를 다룬 창작인형극 번길을 지켜라 뚝딱의 무대가 완성돼가던 2009년 1월에는 남일당 참사가 일어났고, 백석의 개구리 한솥밥을 인형극으로 만들었던 2011년에는 4대강 문제와 강정마을 해군기지 싸움이 벌어졌다. 인형극이 연대와 평화의 도구가 되길 바라는 우리는 인형극 무대를 끌고 남일당 골목, 대한문 앞, 양평 두물머리와 강정마을을 찾았고 현장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우리는 그것이 예술의 또 다른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초부터 지금까지 억울한 죽음의 행렬을 수도 없이 목도해야 했던 2014년의 현실 앞에서는 어떤 이야기도 떠오르지 않았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노숙과 단식을 하고, 굴뚝으로 전광판으로 올라야만 하는 세상에서는 희망을 은유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우연히 그림책에서 본 불가사리가 떠올랐다. 온갖 쇠를 삼키던 송도 말년의 불가사리가 말이다. (…) 지배계급에게는 위협이었지만 민중들에게는 희망과 평화의 상징이었을 불가사리로 인형극을 만들기로 했다. 불가사리가 맞설 상대로는 ‘어둑시니’를 골랐다. 어릴 적, 이북이 고향인 친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어둑시니는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괴물이었다. 어둑시니는 사람이 겁을 먹고 올려다보면 볼수록 몸집이 커져 나중에는 사람을 삼켜버린다고 했다. (…) 나는 오늘의 어둑시니를 가난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나와 내 가족만 살겠다는 이기심으로 그렸다. 그래 놓고 보니 지금 여기가 진짜 어둑시니 세상이었다. 어둑시니는 가난한 민중들마저 정규직 비정규직 차이로, 세대별로 갈라놓았다. (…) 그러나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함께 살기 위해 길 위에 서고, 어둑시니와 맞서기 위해 허공으로 오른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는 광화문과 구미, 밀양과 강정 그리고 평택과 이 땅 곳곳에서 불가사리가 깨어날 것이다. (…) 영하 10도를 훌쩍 넘긴 겨울밤, 그들이 굴뚝 위에서 어둑시니와 맞서고 있을 때, 나도 다시 어둑시니와 불가사리를 불러냈다.”

-불가사리와 어둑시니(한겨레 ‘세상 읽기’ㆍ김중미 작가 겸 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 전문 보기

드문 사랑이다. 시간은 일체를 파괴한다. 썩는 게 자연스럽다. 완미는 존재하는 게 아니다. 박제엔 생명이 없다. 방부(防腐)는 천연과 인위 간 타협이다. 해로(偕老)는 노력의 결과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 사랑은 변한다. 우리가 “너만을 영원히 사랑해” “죽을 때까지 너만 사랑할게”라고 뜨겁게 고백하는 이유는 ‘너만’을 ‘영원히’ 사랑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함을 우리의 무의식이 알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 개봉 18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으며 역대 국내 다큐멘터리영화 사상 가장 빠른 흥행 속도를 기록하고 있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는 이런 의미에서 다큐멘터리의 외피를 두른 판타지 장르라고 나는 생각한다. 76년째 부부이자 연인으로 살아온 89세 할머니와 98세 할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이 오롯이 담긴 영화 속 장면에 관객들은 감동 받아 눈물을 펑펑 흘리지만, 솔직히 말해 영화 속 할아버지처럼 한겨울 심야에 재래식 변소에서 졸졸 소리를 내며 오줌을 누는 할머니가 무서움을 타지 않도록 변소 밖을 지키며 노래를 불러주는 남자는 이 세상에 거의 없다. (…) 영화를 본 나는 눈물도 펑펑 흘렀고 마음의 정화를 경험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사랑을 꼭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이런 사랑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민망하게 여겨지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님아’ 속 사랑을 꿈꾸는 우리들의 마음은 흔히 “우리 아들 서울대 보내야지”라고 우리가 말할 때의 심정과 같은 종류인 것 같다. 우리가 간절히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다. 영화 속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완벽한 러브 판타지를 구현하는 슈퍼맨이고 원더우먼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실화를 담은 ‘사랑에 대한 모든 것’(10일 개봉)이 보여주는 사랑은 내겐 ‘님아’ 속 그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 아내가 호킹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당신을 사랑했어. 나는 최선을 다했어”란 말이 진지하고 사려 깊게 느껴지는 것은 완성되지 못한 사랑도 사랑이라는 이 영화의 메시지에 뜨거운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완전한 사랑은 아름답다. 그러나 영원한 사랑에 대한 강박이 우리 사랑을 힘들게 하는 역설 속에 우리는 산다. 사랑의 유한성을 받아들일 때 진짜 사랑이 시작되는 건 아닐까. 변하는 사랑도 사랑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변하는 사랑도 사랑이다(동아일보 ‘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 ☞ 전문 보기

“영화 속 노인 한 쌍이 주춤주춤 집 밖으로 나온다. 강원도 횡성 시골이다. 한밤중 사위가 온통 까맣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자꾸 “무섭다”고 한다. 무슨 일일까 궁금하다. 아, 여든아홉 할머니가 소피를 보러 나왔다. 행랑채 끝에 매달린 화장실로 들어간다. 밖에 뻘쭘히 섰던 아흔여덟 남편에게 노래를 해달라 조른다.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더니 노래를 웅얼거린다. 관객이 미쳤다.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지난주 박스 오피스 1위다. 대개는 ‘80년 사랑’이 문턱이다. 혼인 나이와 인간 수명, 그걸 너그럽게 더하고 빼도 부부로 늙는 건 80년에 걸려 넘어진다. 그 문턱을 넘긴 부부 얘기가 나라마다 간혹 들린다. (…) 영국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 “비결이 뭐예요?” 대답들이 간결했다. “미안해.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 “그래 맞아, 여보. 이 말만 했어요.” (…) 다큐에서 할아버지 숨소리가 기차 화통처럼 거칠어지자 할머니가 아궁이에 할아버지 옷가지를 태운다. 떠날 때 가벼우시라고. 이 대목에서 20대 관객도 운다. 할아버지는 얼굴 맞대고 누우면 할머니 얼굴을 하염없이 쓰다듬는다. 다들 모른다. 사랑은 결국 쓰다듬는 것이다. 삶에서 80년을 함께 산 부부는 해온 일들도 순박하다. 교사ㆍ정비공ㆍ집배원, 아니면 농부ㆍ주부였다. 같이 일하는 시간이 많았다. 밭일이고 뭐고 하루 서너 시간 곁을 지켰다. (…) 어떤 영화든 ‘산다는 게 뭔지’를 제대로 물어주면 그게 고맙다. 삶이란 수채화처럼 적당히 낡아간다고 영화가 속삭인다. (…) 작년 미국에서 최장수 부부로 공인받은 한 남자는 “언제나 아내를 따르라”고 했다. 아쉽게도 보통 남자는 그걸 모르고 죽는다.”

-‘님아, 그 강을…’(12월 17일자 조선일보 ‘萬物相’ㆍ김광일 논설위원)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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