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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개헌논의, 회피할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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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개헌논의, 회피할 일 아니다

입력
2012.06.2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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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사람들 이목에서 사라진 지 꽤 오래됐다. G20에 참가하고, 중남미국가를 순방하고, 콜롬비아와 FTA를 맺고…, 한창 때였으면 연일 뉴스의 중심이 될만한데도 도통 관심을 끌지 못한다. 바쁜 해외일정에도 간간이 "화물연대 파업은 바람직하지 않다" "종북세력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고 민감한 국내현안을 건드려도 야당의 논평조차 그저 짚고나 넘어가는 수준이다.

물론 위상이 변치 않는 곳도 있다. 하릴없이 매사를 MB 탓에 걸어 씹는 일로 낙을 삼는 이들이 우글우글한 인터넷 댓글공간 같은 곳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겐 레임덕이 없다"며 한껏 호기를 부렸던 그다. 말년 측근 비리도 영향을 미쳤지만 심각한 레임덕의 진짜 이유는 누구나 다 안다. 이견에 귀 막고 상대방에 문 닫아걸다 민심을 다 잃은 때문이다.

처음부터 레임덕이었음을 자조한 노무현 정부의 실패 원인도 같았다. 그걸 뻔히 보고 당장 그 반사효과로 집권하고도 MB 역시 다르지 않았다. 동일한 실패가 반복되면 그땐 사람보다는 제도를 의심해봐야 하는 법이다. 후보 때 그토록 국민에게 봉사와 소통, 단합을 약속하던 이들이 왜 번번이 독선의 나락으로 떠밀려가게 되는지를.

대통령 5년 직선 단임제는 '87년 체제'의 핵심이다. 이 제도는 장기집권과 독재 가능성을 차단하고, 짧은 기간에 국가운영 철학이 다른 정치세력들의 교체를 통해 우리사회를 실질적 민주화 단계로까지 끌어올린 실로 막중한 시대적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97년 체제'를 넘어 '2013년 체제' 주장이 나오는 이 시점에 5년 단임제도 시효만료 여부를 진지하게 검토해볼 때가 됐다.

무엇보다 시대가 바뀌었다. 더 이상 장기독재정치가 가능하지 않게 된 상황에서 당시의 명분을 고집해야 할 이유부터 없어졌다. 현 대통령제의 폐단으로 흔히 지적되는 지나친 권력집중은 청문회 등 여러 제도개선을 통한 권한의 분산 양도로 많이 완화돼 왔고, 앞으로도 그런 추세로 갈 것이다. 대통령 5년 단임제가 갖는 단연 큰 폐해는 집권 기간 내내 국민의 평가를 의식할 필요가 없는 무책임성이다.

짧은 임기에 마음은 급하고, 기회는 단 한번이니 일단 당선되고 나면 제 스타일대로만 일로 매진해도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 구조다. 여론이 안 좋으면 훗날의 역사에다 평가를 전가하면 된다. 전ㆍ현직 모두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란 말에 솔깃해한 까닭이다. 단언컨대 당대에 평가 받지 못한 지도자가 훗날 역사에서 대단하게 부활하는 경우란 없다.

일방질주를 막고 재임 중 줄곧 국민을 의식하면서 이견에 귀 기울이도록 하자면 현실적으로 재임기간을 줄이고 평가기회를 갖도록 하는 방법, 즉 4년 중임제 밖에는 없다. 어떤 제도에서든 불가피한 말년 레임덕도 4년 중임제에선 그나마 기간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원래 대선 때면 세(勢)불리 측에서 먼저 개헌문제를 들고나오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이재오 의원이 먼저 4년 중임제안을 던지면서 여야 예비후보들 모두 어떤 식으로든 논의에 가담하는 형국이다. 당초부터 진정성보다는 이슈메이킹을 통해 존재감을 키우려는 속내가 엿보여 외면했으나,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었던 건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유난한 소신 강박이 걸려서다. 경선 룰과 관련, 주변의 간곡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끝내 대화와 타협의 제스처 한번 없이 단호하게 제 길을 가는 그의 모습에서 집권 시 또다시 유사한 실패의 반복 개연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제도에 완벽한 답이야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4년 중임제가 민의의 상시 소통을 가능케 하는 유효한 방안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단한 능력의 제왕적 대통령보다는 그냥 상식 수준의 합리적 국가관리자로서의 대통령이 더 적합해진 시대다.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논의해 볼 때가 됐다. 5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말년에야 깨닫고 원포인트 개헌이라도 하자며 간절해 했던 방안이다.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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