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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당신의 삶의 질량은 얼마입니까?

입력
2017.08.0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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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에는 흔히 ‘연차’에 대해 통용되는 기준이 있다. ‘입사 후 1년 미만에 퇴사하면 조직 부적응자’라든가, ‘그래도 회사 생활 10년은 해야 전문가 아니야?’ 하는 통념들. 여기에는 연차가 높고 회사를 오래 다닐수록 더 ‘좋은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물론 연차가 쌓일수록 급여도 높고 경험도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대기업의 경우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초기 1년은 성과를 내기보다 교육 훈련을 하는 기간으로 여긴다. 사원 3년차는 돼야 조금 감이 오고, 대리 과장쯤 되어야 능숙하게 실무를 처리한다. 이처럼 켜켜이 쌓인 세월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제 아무리 고스펙의 똑똑한 신입사원이라도 몇 달 동안 끙끙대야 하는 문제를, 20년 차 부장님은 단 1분 만에 해결하지 않던가.

그래서 그런지 필자가 ‘퇴사의 추억’이라는 글을 브런치에 연재했을 때, 가끔 이런 반응이 있었다. ‘아직 나이도 젊은 사람이 뭘 안다고 회사에 대해 논하나요?’ 그 때 나의 대답이다.

‘물론 20년차가 되어야지만 알게 되는 회사의 진리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때가 되면 이미 사원 대리 시절의 현장감은 잊어버리고 관리자로서 50대로서의 입장만 생각할 것입니다. 사원 대리의 입장에서도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 있지 않을까요?’

10년차가 5년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은 산업사회의 논리가 반영되어 있다. 지금까지는 사람의 인생에서 평생 단 하나의 회사만 30년간 다녔기 때문에 같은 환경에서 누적되는 연차가 가장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평생직장이 없을뿐더러 정년이란 개념도 사라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혁신 경제에서는 기술과 산업이 몇 개월 단위로 급변한다. 어제 배운 지식이 내일 구식이 되는 시대. 대학에서 4년간 배우는 학문의 유통기한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창업가, 1인 기업가, 크리에이터 등 새로운 업의 개념들은 회사 안의 연차보다 퇴사 이후 연차가 더 중요하다.

필자 역시 대기업에서 5년간 배운 것보다 퇴사 후 창업하고 1년간 배운 것들이 더 많았다. 큰 조직에서 나의 시간은 하루와 한 달과 일 년이 똑같았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 속에 나는 점점 수동적이 되었다. 그러나 창업 이후의 삶은 정반대였다. 하루하루가 매번 다르고 매사가 시간 단위로 다가온다. 사업 전략, 운영, 리더십, 채용, 고객 개발, 콘텐츠 마케팅 등 창업이라는 전쟁터에서는 온갖 일들이 빵빵 터진다. 괴롭고 힘든 일도 있지만 그것조차 내가 성장하는 나의 자양분이 된다. 그래서 고작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마치 한 달이 지난 것처럼 시간이 풍성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자. 모두가 창업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창업을 하든 회사를 다니든 중요한 건 ‘내 삶의 질량’이 얼마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하루를 얼마나 정직하고 충실하게 사는가. 겉으로 보이는 부피만 큰 공허노동이 아니라, 누가 보지 않아도 내 가치관에 맞는 일을 찾아 차근차근 나답게 살고 있는가.

비록 큰 기업의 10년차라도 엉성하게 시간을 보내면 ‘짬밥’만 늘어난 1년차와 다를 바 없고, 작은 조직의 1년차라도 지금 이 순간과 정직하게 마주선다면 분명한 보상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팀의 공동창업자가 최근 퇴사를 했다. 대학생인 이 친구는 휴학을 하고 지난 1년 반 동안 스타트업을 경험했다. 다시 복학을 준비하는 지금 남들은 토익, 교환학생, 취업 등 이미 앞서가는데 자신만 뒤쳐진 것 같다고 불안해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남들이 마땅히 그 나이 때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좇기보다, 진작부터 자신만의 삶의 질량을 찾은 사람에게는 ‘남들보다 더 이른 때나 더 늦은 때’ 같은 건 없다고.

장수한 퇴사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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