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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국격(國格)을 생각하게 만든 한중 정상회담

입력
2017.12.18 13:4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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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칼럼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잘 되기를,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우리 대통령이 잘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겸손하되 당당하게 대응해 달라고 주문했다. 겸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당하진 못했던 것 같다.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런데 회담 내용은 나중이고, 문 대통령 부부의 느닷없는 ‘중국 인민 체험’, 중국측 경호원들의 한국기자 폭행, 그리고 공식 환영식장에서 왕이 외교부장이 우리 대통령의 팔을 툭툭 친 무례(無禮) 등의 사건사고로 얼룩졌다.

우리는 왜 불편했던 것일까? 중국이 알게 모르게 우리를 무시한 때문일까? 물론 그런 점도 있지만 우리 측의 준비와 대응 또한 잘했다고 할 수 없다.

요즘의 우리는 예(禮)라 하면 예절이나 매너 정도를 뜻하지만 원래 예는 사리(事理), 즉 일의 이치다. 일이 이치에 맞으면 예가 있는 것이고 이치에 맞지 않으면 무례(無禮), 결례(缺禮), 비례(非禮), 실례(失禮)라고 한다. 예절이나 매너를 넘어서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공자의 예 사상을 고스란히 담은 ‘예기(禮記)’ 곡례(曲禮)편은 예(禮)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릇 예란 제 몸처럼 여겨야 할 것과 멀리해야 할 것(친소ㆍ親疎)을 정하고 미심쩍고 의심스러운 것(혐의ㆍ嫌疑)을 결단하며 같은 것과 다른 것(동이ㆍ同異)을 구별하고 옳고 그름(시비ㆍ是非)을 밝히는 것이다.”

이것이 예다. 더불어 ‘논어(論語)’ 팔일(八佾)편도 예에 관한 내용인데, 예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는 거리낌 없이 마구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하지 않는 바가 있는 것, 즉 유소불위(有所不爲)이고 둘째는 앞에 그 사람이 없어도 마치 있는 듯이 여기고 늘 조심하는 여재(如在), 셋째는 매사에 아는 것도 다시 물어봐 주는 매사문(每事問)이 그것이다.

이런 예의 척도로 보면 지금껏 드러난 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비례나 무례의 사례를 이번 행사에서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눈에 거슬렸던 장면 하나는 14일 대통령의 서민식당 방문을 보여주는 화면에 나타난 강경화 외교장관의 모습이다. 대통령 뒤쪽에 앉아 외교관련 인사들과 대화하는 모습에서 잠깐이지만 강 장관은 턱에 팔을 괴고 웃는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아주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으로 불편했다. 바로 앞에 대통령이 있고 그곳은 나라의 명운을 걸고 외교전쟁을 위해 찾아간 적진 한 복판이다. 바로 그날 오후 중국 외교부장은 우리 대통령의 팔을 툭툭 치는 무례를 보였다는 점에서 더욱 마음에 잔상이 남는다.

정상회담에서 한국과 중국 두 정상이 주고받은 말 중에 귀에 거슬린 것은 문 대통령의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시주석의 ‘관건적 시기(關鍵的時期)’다. ‘관건적 시기’란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기로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해 보라는 압박 발언이다. 반면 ‘역지사지(易地思之)’는 그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내용이 없다. 그나마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자’는 정도의 상투적 발언이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 대통령이 정말 중국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면 그 첫째가 주변에 국내의 중국 관련 최고 전문가를 모으는 것이다. 어설픈 좌파 평론가 수준의 식견으로 지금의 중국을 상대할 수 없음은 이번 회담을 통해 분명해졌다. 지금 중국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촌철살인의 한 마디를 국민에게 제시하지 못한 게 한 방증이다.

우리의 비례(非禮)와 중국의 무례(無禮)가 만났던 이번 정상회담은 양측에 큰 상처를 남겼다. 제발 다음에는 예(禮)를 놓치지 않아 국격을 높이는 회담이 되길, 나라다운 나라에 살아보겠다는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말길 바란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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