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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떡

입력
2017.01.2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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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어렸을 적 나는 하도 새침데기여서 학교 앞 분식집 떡볶이를 먹어보지 못하고 자랐다. 복작복작 모인 아이들을 뚫고 그걸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엄마가 끓여주는 떡국이나 콩가루 후둑 떨어지는 인절미도 어린 내 눈에는 그다지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떡을 좋아할 기회를 그만 놓치고 말았다. 여태도 떡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내 집 냉동실에는 떡이 가득하다. 손바닥만 한 백설기에는 달달한 완두콩이 알알이 박혔다. 바쁠 때 하나씩 쪄 먹으라며 엄마가 보내준 것인데 스무 개도 넘게 켜켜이 쌓인 저 백설기를 언제나 다 먹을 수 있을까. 지난주에는 설날에 끓여먹을 떡국 떡도 보내왔고 떡볶이용 가래떡도 냉동실 한 칸을 다 채웠다. 팥소가 든 찹쌀떡은 다섯 개씩 은박지에 쌌다. 따뜻할 때 바로 냉동시킨 거라 밤에 꺼내놓으면 저절로 녹아 아침에 먹기가 딱 좋다. 외국살이를 하던 시절, 명절이나 생일만 되면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던 떡 생각이 공연히 간절해지곤 했다. 근처에 살던 유학생 친구들도 다 나 같아서 우리는 새삼 향수병에 시달리다 괜히 강변을 걷고 또 아무 식당에나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간 식당에서 캥거루 스테이크를 먹은 적도 있다. 지나치게 덜 익힌 캥거루 고기에서 뚝뚝 핏물이 흘러 기분이 더 나빠지고 말았지만. 곁에 없으니 그리운 것이라는 그 단순한 셈법을 몰라 우리는 우울하고 외로웠다. “나중에 집에 가면 엄마한테 수수팥떡부터 해달라 할 거야.” 그랬던 친구도 아마 돌아가자마자 수수팥떡 따위 잊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시절의 우리에게 내 냉동실 속 떡을 다 퍼다주고 싶은 심정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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