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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야당, 샌더스의 실패에서 배워야

입력
2016.03.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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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정의당 비례후보 토론회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는 김종대 후보의 동영상을 카톡으로 받아 보았다. 병장 출신의 군사전문가인 김종대는 보수의 앞마당에서 휘젓고 다니는 진보 정치인, 북풍 공세를 막아낼 ‘사드’가 되겠다고 했다. “사드 미사일 하나 장만해서 공세 다 차단하고 막아 버리고 역공 취해 버립시다”는 대목에서는 청중들의 박수가 나왔다. 구호보다 팩트를 중시해 온 그가 ‘진보의 사드’가 되겠다는 말에 박수를 칠 수는 있겠지만, 한 달여 남은 4월 총선에서 그의 말처럼 역공세를 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진보, 야당의 숙명과도 같은 안보정국은 계속되고, 제3당 국민의당 출현으로 입지는 전에 없이 좁아져 있다. 고집의 노회찬이 자신의 지역구 서울 노원병을 버리고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창원성산의 정의당 후보로 출마하기로 한 것만 봐도 위기감이 어떠한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살면서 한번 먹은 마음은 바꾼 적이 없다던 그 아닌가. 2010년 서울시장 선거만 해도 그가 한명숙과 야권 단일화를 했다면, 오세훈의 0.6%포인트 차 승리는 어려웠다. 이런 노회찬이 움직인 데는 덩치가 달라진 보수 진보의 구도가 작용했을 것이다.

총선이란 정권을 심판하는 일인데, 야당을 심판하자는 게 말이 되는가. 진보, 야당의 이런 주장은 진실에 가깝지만 현실 정치에서 효용성은 그리 크지 않다. 이미 정부 여당이 던져 놓은 야당심판론에 유권자들은 움직이고 있다. 현 정부 3주년을 맞아 실시한 본보 여론조사에서는 정권심판론보다 야당심판론에 대한 호응이 더 많았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이런 현실이 진보, 야당으로선 억울할 법하지만 그렇다고 야당심판의 부당함을 놓고 공방을 벌일 한가한 계제도 아니다. 승부의 추라 할 정치지형, 일여다야(一與多野)의 선거구도는 벌써 기울어진 마당이다.

4년 전을 되돌아 보면 진보, 야당은 지금보다 더한 실정과 비리를 부각시키는 정권심판론을 밀고 또 밀었지만 순진한 계산이었다. 모든 게 때마침 터진 막말 파문을 계기로 ‘믿을 수 없는 야당 심판’으로 설정한 여당의 프레임(선거구도)에 갇히며,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지고 말았다. 강령에서 보수를 삭제하는 문제로 다퉜을 만큼 위기였던 여당은 프레임 덕에 진보, 야당의 목소리를 묻어 버릴 수 있었다. 4년 전 선거가 야당에 남긴 교훈이라면 유권자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정의로운 진실이라도 소비되지 않는다는 선거의 진리일 것이다. 사실 선거에서 그런 진실을 유통시키려면 어법까지도 바꿔야 한다.

사용하는 문장의 단어 수, 단어의 음절 수를 조사해 교양수준을 보여주는 플레쉬 킹페이드 지수란 게 있다. 지난달 미국 네바다 코커스(당원대회)에서 쏟아진 대선 경선 주자들 발언에 이를 적용했더니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은 중1, 버니 샌더스는 중3 수준이었다고 한다. 초보수 대중의 지지로 1위 행진 중인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 초등학교 2학년이면 이해할 말을 사용했다.

우리 정치권에서 진보, 야당이 유행처럼 대안으로, 혁신코드로 삼으려는 ‘샌더스 현상’에서도 배울 건 정치혁명의 구호나 바람이 아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도 “우리 현실이 미국하고 뭐가 다르냐”며 한국판 샌더스 돌풍의 점화에 애쓰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의 돌풍과 승리가 아닌 패배일 수 있다. 물론 샌더스가 분배와 복지를 앞세운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자로, 평생 아웃사이더로 불평등 해소를 외친 정치인인건 틀리지 않다. ‘폴생폴사’로 여론조사에 매달리거나, 정치연륜이 정치공학적 기교로 통하는 우리 정치인들과는 결이 달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한데 이 샌더스 바람을 잠재우고 있는 건 그가 추구하는 정치혁명의 가장 큰 수혜자 격인 흑인들이다.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이상주의가 아니라 현실주의, 무책임한 희망고문보다는 정치적 실용주의였던 셈이다.

이태규 정치부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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