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지평선] 다시 태어난 세운상가

입력
2017.09.19 16:30
0 0

김수근은 한국 현대건축의 대가 중 한 명이다. 잠실종합운동장, 자유센터, 경동교회 등 그의 작품이 한둘이 아니다. 현대빌딩과 창덕궁 사이 담쟁이로 덮인 공간사옥은 김수근 건축의 백미다. 그렇다고 그의 건축이 호평만 받은 것은 아니다. 특히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은 큰 오점으로 지적된다. 작게 난 세로 창문과 감각을 마비시키는 듯한 철제계단은 이 건물을 누군가를 추궁하는 최적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 음습한 곳에서 서울대생 박종철이 숨지고 김근태 전 민주당 고문이 전기고문을 받은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 그런 김수근이 특별히 더 잊고 싶었던 공간이 바로 세운상가다. 세운상가는 1967년에 완공됐다. 그는 그때 공공시설을 두루 설치하는 등 원대한 꿈을 구현하려고 했다. 하지만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과의 갈등, 민간사업자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애초에 꿈꾼 건축물과는 너무 동떨어졌고 이 때문에 훗날 실패작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실제 4년 전 ‘해방 이후 최악의 건물’ 설문조사에서 세운상가는 18위에 오르기도 했다. 참고로 1위는 서울시 신청사, 2위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3위는 종로타워였다.

▦ 그렇다고 세운상가의 50년 사연마저 가벼운 것은 아니다.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유하는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이라는 시에서 “나는 세운상가의 키드, 종로3가와 청계천의 아황산가스가 팔할의 나를 키웠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음악평론가 신현준 또한 ‘빽판 키드의 추억’에서 청계천과 세운상가를 오가며 ‘빽판’(LP복제판)을 구하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만큼 감수성이 비범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도 용산전자상가나 테크노마트가 생기기 전 세운상가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일이 흔했다.

▦ 세운상가가 3년 6개월에 걸친 재생사업을 끝내고 4차 산업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한다. 한때 탱크도 미사일도 만들 수 있는 장인들이 모였다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면 세운상가가 실제 4차 산업의 중심지가 돼 ‘세상의 기운이 다 모인다’는 이름 뜻 그대로 번성하지 않을까 막연하게나마 기대해 본다. 그게 아니어도, 건물이 조금만 낡으면 때려 부수고는 재개발이니 재건축이니 하며 획일적 직육면체 구조물을 남발하는 문화에서 세운상가가 이렇듯 씩씩하게 버텨 준 것만으로도 반갑고 대견하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