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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 김지훈' 등장…男女대결로 몰아가는 '유투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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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 김지훈' 등장…男女대결로 몰아가는 '유투운동'

입력
2018.03.2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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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여성의 날 민주노총 전국 여성노동자대회에서 한 참석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여성의 날 민주노총 전국 여성노동자대회에서 한 참석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미투 운동' 열풍 속에 남성 중심적 사회 구조에 변화 조짐이 보이면서 위기를 느낀 일부 남성들의 대응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미투 운동에 대항하는 취지로 '남성 역차별'을 강조하는 소설제작 프로젝트 신청이 등장하는가 하면, 페미니즘 운동의 한 형태인 '미러링'을 모방한 남성주의 운동을 펼치자는 SNS 계정도 만들어졌다.

일부 남성들은 '미투 담론'에서도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설명과 지적을 이어가는 '맨스플레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투 운동에 공감한다면서도 경청보다는 문제점이나 보완점을 지적하며 대화를 주도하려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남녀 성대결 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은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리는 시도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 도 넘은 미투 조롱…'90년생 김지훈'부터 '유투'까지

최근 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90년생 김지훈'이라는 프로젝트 신청 글이 올라왔다. "남자라서 양보하고, 무거운 거 들고 자라는 역차별을 당하고 살아와 마음속에 생채기 난 90년대 남성들을 달래기 위한 소설을 쓰려 한다"는 취지였다.

여성의 일상 속 성차별을 빼곡하게 담아낸 소설 '1982년생 김지영'을 비꼰 것이다.

해당 사이트가 "성별에 의한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폭력, 혐오를 조장할 위험이 있는 콘텐츠가 포함돼 있다"며 펀딩 신청을 거부하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90년생 김지훈'이라는 이름을 단 누리꾼들이 페미니즘 관련 프로젝트에 거액의 후원금을 보냈다가 마감 직전에 취소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사이트 이용자들은 일부 남성들이 프로젝트를 무산시키려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미투, 페미니즘, 남성차별을 미러링 한다'고 소개한 미투 계정인 '유투(Youtoo)'가 생겼다. 이 계정 운영자는 "성범죄 무고죄로 인한 피해를 고발하고 남성이 당하는 차별을 공론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에서 난무하는 여성혐오 표현을 똑같이 남성혐오 표현으로 되돌려주는 페미니즘 운동 '미러링'을 본뜬 것이다.

한 이용자는 "더 큰 케이크를 만들어 평등하게 나누자는 소리를 자기 눈앞에 있는 파이를 뺏어가겠다는 얘기인 줄 알고 '내가 다 못 먹으면 너도 못 먹어'하며 흙바닥에 내팽개치고 짓밟자는 페이지"라는 리뷰를 남겼지만, 이 계정에 올라온 글에 '좋아요'를 누르며 지지하는 이도 눈에 띄었다.

◇ "미투가 이상하게 흐른다"…'미투 담론' 주도하려는 '아재'들

회사원 황모(31·여)씨는 최근 남자친구 임모(30)씨 때문에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임씨가 미투 운동에 크게 공감하더니, 요새는 '페미니즘 전문가'를 자처하기 시작한 것이다.

임씨는 요새 황씨에게 "미투 운동이 아쉬운 방향으로 흐른다", "페미니즘은 이런 점이 잘못됐다" 등 훈수까지 두기 시작했다.

황씨는 25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원래 자기가 잘 아는 분야는 일장연설하는 '맨스플레인' 성향이 있는데, 여성 문제에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면서 "직접 겪지 않은 문제에 훈수까지 두지는 말라고 한소리 했다"고 전했다.

회사원 장모(30·여)씨는 40대 남성인 상사가 최근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고 하기에 '좋은 분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 그가 "남자가 미투하는 것을 보면 '쪽팔리지도 않나' 싶더라"라고 말해 실망했다고 한다.

장씨는 "미투를 지지한다면서 '가해자는 남자, 피해자는 여자'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미투를 평가하는 걸 보니 어쩔 수 없는 '아재'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 사례처럼 여성들은 미투 운동에서조차 발언권을 쥐려는 남성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그간 남성 중심 구조에서 '객체'인 여성이 '발화의 주체' 자리에 어렵사리 올라섰다는 미투 운동의 의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미투플레인(metooplain)'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작가이자 역사가인 리베카 솔닛의 산문집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제시한 개념인 '맨스플레인(man+expalin)'에 미투를 합성한 것이다.

◇ "성대결 양상은 변화 움직임에 재 뿌리는 격"

전문가들은 미투 운동을 '남녀 성대결', '남혐·여혐' 양상으로 몰고 가는 것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상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실장은 "미투 운동의 핵심은 성 대결이 아니라 상대를 성적 대상화하는 비상식적, 비인권적 발상을 바로잡자는 것"이라며 "너도 당했니? 나도 당했어! 라며 성별 싸움으로 몰고 가는 것은 미투 운동의 취지를 한참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투 운동은 불평등한 권력을 남용해 다른 사람의 신체자유를 속박한 범죄를 문제 삼는 것"이라며 "모든 문제를 남녀 사이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불필요한 갈등만 조장할 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남성의 '미투플레인'에 대해서도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겉으로는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면서 자기 나름의 관점으로만 미투를 평가·진단하거나 지적하고 조언하는 것은 기존의 권력을 지키려는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미투플레인은 남성이 단 한 번도 성차별·성폭력을 가해하거나 방관한 적 없는 객관적 관찰자인 양 미투 운동에 자신의 말을 얹으려 하는 것"이라며 "시대의 요청을 읽지 못하는 것이고, 심한 경우 2차 가해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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