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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낄] “그까짓 걸 알아서 뭐하게?” 대학ㆍ인문학에 되묻다

입력
2017.04.2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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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인문학? 죽으면 뭐 어때서?”

자기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독한 선지자처럼 말해서도 안됩니다. 인공지능(AI)시대, 4차 산업혁명시대 우리는 도대체 무엇으로 존재증명을 할 것인가, 소몰이식 몰아붙이기가 한창인데 거기다 대놓고 저렇게 쏘아붙인다면, 너무 부담스럽거나 혹은 재수없게 느껴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좀 배웠고, 좀 산다는 사람들이 내뱉는 ‘자발적 가난’ 같은 말을, 진짜 가난한 사람들은 뭐라 생각할까요. 그래서 전복적 언어는 진지하기보다는 ‘풋!’ 터지는 웃음으로 구성되는 게 좋습니다. ‘야전과 영원’으로 일본 지성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발정난 문체의 소유자’ 사사키 아타루라면, 이게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연, 대담, 기고문 모음집인 ‘제자리 걸음을 멈추고’는 첫 글 ‘인문학의 역습’부터 압권입니다. 요즘 인문학은 위기이자 부흥의 시대입니다. 융합이란 이름의 통폐합이 적지 않지만, 동시에 인간됨 그 자체가 무엇이냐는 질문도 쏟아지면서 대학과 인문학을 살리자는 소리가 요란하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14년 교토세이카대 인문학부 재편 기념 강연회에서 행한 강연입니다. 우리나라라면 이런 자리에 선 사람은 ‘인문학이야말로 AI시대 선두학문이 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공치사로 끝냈겠죠.

그런데 사사키는 ‘대학? 인문학? 죽으면 뭐 어때서?’라고 되묻습니다. 대학과 인문학을 두고 “자신만 죽은 것을 모르는 시체”라는 야유까지 곁들여놨습니다. 더 나아가 대학과 인문학에 대한 ‘로망’ 자체를 자근자근 짓밟습니다. 대학과 인문학의 역사적 근원을 따져보니 문맹도 심하고 제대로 된 학문이나 책이 없어서 이리저리 얽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더라고 폭로합니다. 그 이후에라도 좀 나아졌나 봤더니 취업사관학교, 국가이데올로기 주입기구이긴 매한가지였다고 혹독하게 비판합니다. 이 타이밍에 늘 등장하는 돌림노래 ‘신자유주의 타령’ 이전에 대학은, 인문학은 이미 그러했다는 독설입니다. “대학은 여러 번 죽고 또 죽어서 소생이 불가능”하며 차라리 “죽은 채로 있는 편이 더 낫다”고까지 합니다. “어쩐지 다들 제가 밥상을 뒤엎기라도 한 듯한 표정이시네요”라는 말도 빼놓지 않아 줍니다.

그러면 진짜 대학, 진짜 인문학은 무엇일까요. 기존 대학, 인문학이 온갖 지식과 정보를 불러줄 때 “그까짓 걸 꼭 알아야 해? 알아서 뭐하게?”라고 되묻는 겁니다. 이미 끝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이 지금 나의 현재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자각 아래 그렇게 되물을 때 제자리 걸음을 멈추고 새롭게 전진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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