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고 싶다’
치위생사로 일하던 2015년 1월, 이라온(현재 28)씨는 작은 소망을 담아 유튜브 영상을 만들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은혼’의 유명한 주제곡 ‘사무라이 하트’를 마이크에 대고 부르는 모습이 화면의 전부. 촬영, 영상 편집, 음악 믹싱 작업을 모두 혼자 했다.
반응은 놀라웠다. 처음으로 올린 영상이었는데도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을 좋아하는 커뮤니티에 널리 공유되면서 순식간에 구독자가 늘었다.
2년 후 ‘전업 유튜버’의 길로 들어선 이씨의 현재 구독자 수는 무려 232만명에 이른다. 유튜브 한국 채널 중 10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경우가 유명 가수나 기획사를 포함해도 100명이 채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구독자 중 해외 팬이 70%에 달하는 이씨는 특히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 동남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삼성로 샌드박스네트워크 스튜디오에서 이씨를 만나 처음 영상을 올렸을 때부터 ‘해외 투어’를 꿈꾸는 미래의 이야기까지 나눠 봤다.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평소 영상이나 사진 찍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또 원래 꿈이 성우였을 정도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기 때문에, 주제가를 녹음해 커뮤니티 등에 올린 적도 있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서도 볼 수 있도록, 내가 즐겁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영상에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노래도 부르고 이걸 영상으로도 찍어보자고 생각했다. 2015년 1월에 처음 올린 게 ‘사무라이 하트’였는데,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 서브컬처 커뮤니티에 엄청나게 공유됐다. 구독자 수가 급증하는데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치위생사를 하다가 ‘전업 유튜버’가 됐는데 그렇게 하게 된 계기는? 가족이나 지인은 어떤 반응이었나.
“좋아서 했기 때문에 전에는 낮에 일하고 밤에 새벽까지 편집하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하는 식으로 사실상 ‘투잡’을 했다. 4년 공부해서 치위생사 자격증을 땄는데 아깝기도 했고, 당시 일하던 곳에서 자리를 비우니 미안하기도 했지만 유튜버 일에 집중하고 공연이라든가 나의 꿈에 더 도전하기 위해 전업하기로 했다. 어머니가 집에 방음실을 만들어 주는 등(지금은 그 비용을 다 갚았다) 오히려 격려해 주셔서 감사했다.”
-평소 얼마나 자주 영상을 올리나?
“작년 공연 이후론 가급적 1주일에 1개씩 뮤직비디오 영상을 올리려고 하고 있다. 오래 전에는 모든 것을 혼자 했지만 지금은 편곡자와 믹싱 전문가에게 맡기기도 한다. 영상 편집은 아직도 직접 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혼자 하려면 사실 1주일에 1개 만드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외에 팬이 보낸 선물을 개봉하거나 일상을 찍은 ‘브이로그’ 등도 간간이 올리고 있다.”
-유튜버를 하면서 보람을 느낀 때는.
“내 노래를 듣고 힘을 얻었다는 댓글을 종종 보는데 그때 뿌듯하다. 심지어 ‘자살을 생각했었는데 살아갈 힘을 얻었다’을 글을 본 적도 있다. 내가 노래를 통해서 어떤 사람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감사하다.”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지난해 8, 9월에 국내 단독 콘서트를 해서 꿈을 하나 이뤘다. 오래 전부터 준비했는데 정말 많은 팬들이 왔다. 해외는 단독 공연은 아니지만 애니메이션 만화 축제 등에 초청 받아 공연을 한 적 있다. 지난해 12월 2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만화페스티벌 ‘아니메 사이코 말레이시아’에서는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팬들이 알아봐 줬고, 감격해 울음을 터뜨린 팬까지 있었다. 구독자의 70%가 해외 팬이고, 특히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구독자들이 아주 많다. 나중에 해외에서도 단독 공연을 하게 되는 것이 꿈이다.”
-주로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커버하는데 오리지널 곡도 부르는지.
“이미 던전앤파이터 벽람항로 등 게임 주제곡이나 게임 광고 음악을 녹음한 적이 있다.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좋아하는 팬층이 겹쳐서 게임회사로부터 요청이 온다. 앞으로는 커버곡 외에도 좋은 오리지널 곡을 더 많이 노래하고 싶다.”
-다음에 어떤 노래를 할지는 어떻게 정하나.
“댓글이나 이메일로 신청곡 요청이 엄청나게 많이 온다. 하지만 아무리 신청이 많다 하더라도 결국 내 보컬 스타일이나 음악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른다. 억지로 하고 싶지 않고, 내가 한껏 즐기면서 완벽하게 할 수 있는 노래를 해야 듣는 사람도 즐거워 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반인 유튜버가 급격히 늘고 있는데 처음 도전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유튜브로 성공하는 사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반드시 스타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내가 영상을 찍는 게 즐거우니 해 보자’는 생각이라면 바로 시도하는 게 좋다. 나는 음악 전공자가 아니지만 취미를 콘텐츠로 만들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자신의 본업이 아니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유튜브의 장점이다.”
최진주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라온의 첫 번째 영상 ‘사무라이 하트’ 보기
■5,500만 조회수를 자랑하는 ‘실루엣’ 보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