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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원근법] 고독사회

입력
2016.07.2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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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 달콤하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오래전 발표된 정현종의 시 ‘섬’이다. 섬이란 개인과 개인 사이에 놓인 고독일 터다. 현대사회의 너무나 많은 연결은 우리 인간을 지치게 한다. 피로는 고독을 그리워하게 한다. 고독은 외로움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사색과 안식을 선사한다.

“아침 신문에 실린 소식들이 닿지 않는 방이 당신에게 있어야 한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말이다. 밖으로부터의 소리가 크면 클수록 내면으로부터의 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 놓은 채 종이 신문을 읽고 다시 스마트폰으로 세상의 뉴스를 검색하지만, 실존적 공허함은 외려 커진다. 그러기에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할 수 있는 혼자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캠벨의 충고에 귀 기울이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고독의 의미를 성찰한 이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다. 정보사회의 진전이 가져온 결과는 ‘접속’의 과잉이다. 현대인들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각종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누군가에, 무언가에 접속돼 있다. 아니 잠든 사이에도 메시지는 속속 도착한다. 허다한 소통 속에 살아가지만, 진정한 소통에 이르는 ‘숭고한 조건’인 자아 성찰이라는 고독의 시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바우만은 진단한다.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다루는 사회학 강의 시간에 들려주는 이야기다. 인간은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관계적 존재’다. 동시에 삶이라는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혼자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와 같은 ‘고독한 존재’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될 때 비로소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보이게 된다. 이러한 차이에 대한 인식의 바탕 위에 소통은 풍성해지고 신뢰가 쌓인다. 고독과 소통은 둘 다 우리 인간에게 소중한 삶의 조건이다.

고독의 사회학적 의미를 이렇게 가르쳐 왔는데, 최근 발표된 두 자료는 고독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하나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국회 입법조사처의 국제 비교 자료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회통합지표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사회적 지원 네트워크’ 부문에서 10점 만점 중 0.2점을 받았다. ‘만약 당신이 곤경에 처하거나 도움받기를 원할 때 의존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는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더없이 고독한 사회라는 메시지다.

다른 하나는 서울지역 고독사 발생 건수에 대한 서울시복지재단의 발표 자료다. 2013년 서울시 고독사는 2,343건으로 집계됐다. 매일 6명 이상이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주목할 것은 25개 자치구 가운데 부유층이 거주하는 강남구가 156건으로 가장 많았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고독사가 경제적 문제를 넘어선 사회적 현상임을 함축한다.

내가 느끼는 아이러니는 바우만의 견해와 반대되는 현실이다. 바우만은 고독을 잃어버린 게 현대사회의 문제라고 주장하지만, 고독이 차고 넘치는 게 한국사회의 실상이다. 물론 세대에 따라 느끼는 고독이 다를 수 있다. 입법조사처 자료를 보면, 30, 40대의 고독도 깊었고, 50대 이상의 고독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가장 심각했다. 이 결과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회적 관계가 약화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사회로부터의 소외가 높아지는 것은 또 다른 아이러니다.

최근 우리 사회를 사회학자 신광영은 ‘불안사회’로, 저널리스트 고재학은 ‘절벽사회’로 명명한 바 있다. 이 정도 수준의 고독이라면 우리 사회는 동시에 ‘고독사회’이기도 하다. 인구ㆍ취업ㆍ교육ㆍ주거 등 사방이 온통 절벽들로 막혀 있어 느낄 수밖에 없는 반복된 개인적 불안이 사회적 고독으로 나타나는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더 이상 학생들에게 고독이 달콤 쌉쌀한 자기 성찰의 시간이라고 이야기할 자신감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고독사회는 차가운 사회다. 차가운 사회에 온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제도적 처방을 더 이상 미룰 순 없다. 고독사회 해법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소망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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