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권 뒤흔드는 편법 사례 많아
4대강 사업 밀어붙이기 때도 악용
모법의 취지를 무력화해 번번이 논란이 됐던 시행령 문제가 여야의 공무원연금 협상에서 또다시 막판 쟁점이 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제기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개정 요구의 배경에는 법 위에 군림하는 시행령으로 입법부를 무시해온 행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세월호법 시행령도 국회의 입법권을 뒤흔든 대표적인 사례로 본 것이다.
협상 난항의 원인이었던 세월호법 시행령 문제에 대해선 여야 모두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힌 건 시행령 6조다. 조사2,3과장은 별정직(민간)인데 비해 핵심보직인 조사1과장은 검찰에서 파견토록 했기 때문이다. 조사1과장은 ▦정부조사 결과 분석 ▦참사 원인 규명에 관한 조사 ▦고발 및 수사 요청 ▦청문회 개최 등 9가지 중요 업무를 맡는 자리다.
이 때문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야당은 “막강한 권한을 지닌 자리에 검찰공무원을 앉히도록 한 시행령은 업무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보장한 특별법 4조를 정면으로 부정한다”며 반대해왔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역시 이달 초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유족 측의 주장을 전달하며 사실상 수정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행령이 논란이 된 건 이번만이 아니다. 이명박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도 없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도 시행령 덕분이었다. 예비타당성 조사의 예외사항을 규정한 국가재정법 시행령 13조 2항에 기획재정부가 ‘재해예방’을 추가하는 편법을 쓴 것이다. 이에 대해 부산고법은 2012년 2월 이를 “모법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 시행령”이라고 판결했다. 이명박정부 5년간 행정부처의 시행령과 지침을 대상으로 제기된 헌법소원만도 한해 평균 65.4건에 달했다.
이 같은 행정부의 초법적인 시행령에 대한 견제 장치는 그간 사실상 없는 상황이었다. 국회법 98조가 ‘대통령령ㆍ총리령ㆍ부령ㆍ훈령ㆍ예규ㆍ고시 등을 제ㆍ개정 또는 폐지한 때에 행정부가 10일 이내에 이를 국회 소관 상임위에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했지만, 이는 그야말로 일방적이고 사후적인 통보 조치에 불과했다. 여야 모두 문제를 인식하고 있던 터라 세월호법 시행령 논란을 계기로 근본적인 개선에 뜻을 모은 것이다.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은 2012년 7월 이춘석 새정치연합 의원이 대표발의해 이달 1일 국회 운영위 국회운영제도개선소위에 상정됐던 법안이다.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않을 경우 국회 상임위가 행정부처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앞서 새누리당 역시 협상 과정에서 국회법에 시행령 개정을 강제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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