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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공포에 한숨도 못 잤어요" 포항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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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공포에 한숨도 못 잤어요" 포항 엑소더스

입력
2017.11.16 16:5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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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친척ㆍ지인 집 대피 줄이어

KTXㆍ공항 승객 평소 2배 넘어

“작은 소리만 나도 깜짝 놀라…”

이재민 1500여명 ‘악몽’ 시달려

16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에서 시민들이 짐을 꺼내 옮기고 있다. 포항=김형준 기자
16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에서 시민들이 짐을 꺼내 옮기고 있다. 포항=김형준 기자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남아있을 이유가 있나요, 빨리 떠나렵니다.”

16일 오전 8시30분. 커다란 짐 가방을 든 김모(57)씨가 ‘붕괴위험,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어있는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 E동 입구에서 나와 자신의 차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당분간 포항을 떠나 부산 형님 집에 머물겠다“고 했다. 가방엔 아내와 딸을 포함한 가족 세 명이 갈아입을 의류와 귀중품 몇 개만 단출하게 담겨있었다.

김씨는 피로와 걱정이 가득한 낯빛으로 “(물건을) 더 챙겨 나오고 싶지만,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이라 집에서 1초라도 빨리 나오고 싶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가 살던 대성아파트 E동과 바로 앞뒤 D, F동은 전날 발생한 규모 5.4 지진에 건물이 훼손되면서 대피 명령이 떨어졌다. 실제 약간 기울어진 건물 외벽엔 여기저기 균열이 생겼고, 현관문과 베란다 유리도 여러 장 떨어져나간 상태였다.

주민들은 “짐을 챙겨 나온 김씨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김두진(56)씨는 “지진 충격으로 비틀렸는지, 문이 도저히 열리지 않아 아무것도 꺼낼 수 없었다”고 허탈해했다. 그 역시 한시라도 빨리 포항을 떠날 참이라고 했다. “가족이 대피해있는 흥해체육관에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는데다, 여진 공포에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단 며칠이라도 머물 만한 곳을 찾아서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고 있어요.”

같은 시각 KTX 포항역사는 평일인데도 인산인해였다. 산산조각 난 외벽 유리창, 뻥 뚫린 천장 등 하루 전 일어난 지진이 남긴 흔적 아래, 서울행 KTX 열차에 오르려는 ‘여행가방 행렬’이 줄을 이었다. 택시기사 이모(43)씨는 “주말에나 볼 법한 모습”이라며 “여진 공포에 고향으로 향하는 대학생이 많았던 하루 전과 달리 오늘은 가족단위 손님도 많았다”고 했다. 오전 11시5분 서울행 KTX를 탄 김동윤(18·포항공대 생명과학과 1학년)씨는 “지진으로 이번 주 모든 수업일정이 취소돼 인천 본가로 가 안정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구 학잠동에 산다는 80대 여성 김모씨 역시 “너무 무서워서 청심환까지 먹었는데도 밤새 한숨도 못 잤다”며 “세종에 있는 사위가 데리러 온다고 했지만, 빨리 (포항을) 떠나고 싶어 직접 가는 길”이라고 했다.

평소 승객이 적어 ‘적자 공항’이란 오명을 쓰고 있는 포항공항도 이날만큼은 승객들로 붐볐다. 오전 10시10분과 오후 5시 두 차례 김포공항으로 가는 대한항공 여객기(147석)엔 평상시(오전 40명, 오후 60명 안팎)보다 두 배가 넘는 승객(오전 90명, 오후 135명)이 탑승했다.

전기와 수도, 가스가 끊긴 집을 떠나 체육관과 교회 등 대피소에서 기약 없이 머물고 있는 시민들은 추위와 배고픔, 여진 공포로 종일 떨었다. 포항시에 따르면 이날까지 14개소에 분산 수용돼 있는 이재민은 총 1,500여명. 대부분이 이날까지 발생한 40여 차례 여진에 불안감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직장인 조모(55)씨는 “잊혀질 만하면 지진이 나서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다”며 “작은 소리만 나도 신경이 곤두서 깜짝 놀라곤 한다”고 했다.

자원봉사자 손길과 구호품 지원이 늘고 있다는 건 그나마 위안이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이재민들은 국밥과 과일 등 식사 지원을 받고 있고, 적십자 등 여러 구호단체에서 보내 온 구호품들로 보온과 위생 걱정을 덜었다.

포항=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16일 오전 경북 포항시 흥해읍 KTX 포항역사가 포항을 빠져 나가려는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16일 오전 경북 포항시 흥해읍 KTX 포항역사가 포항을 빠져 나가려는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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