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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입사 20대 사원을 방사선 안전교육도 없이 현장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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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입사 20대 사원을 방사선 안전교육도 없이 현장 투입했다

입력
2016.06.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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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공장 배관 용접 연결 부위 방사선으로 확인 작업 중 피폭

양손 궤양 등 증상 악화에도 회사 측에 치료 요구조차 못해

2인1조 작업, 방사선 측정기 휴대 등 기본 매뉴얼조차 안 지킨 人災

평택 방사선 피폭 사고는 갓 입사한 젊은 청년이 피해자란 점 이외에도 기본적인 안전 규정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데다 회사 측이 사고를 은폐하려 했다는 점에서도 지난달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안전문(스크린도어) 정비업체 김모군 사망사고와 꼭 닮았다. 안전에 대한 근본적 인식의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우리 사회와 산업 현장 곳곳에서 똑 같은 사고가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사고가 난 A업체는 화학공장에 들어가는 설비를 제조ㆍ검사하는 회사다. 20대 양모씨는 A업체에 입사한 지 한 달 여만인 지난해 12월3일 사고를 당했다. 당시 경기 평택의 한 화학공장 공사 현장에 투입된 양씨는 제작이 완료된 배관을 검사하는 작업을 맡았다. 배관 내부를 흐르는 물질이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도록 용접 부위가 잘 연결됐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배관과 주변 설비에 흠을 내지 않고 이를 확인하려면 방사선 사진을 찍어봐야 한다. ‘비파괴검사’라고 불리는 이 검사는 병원에서 환자의 뼈에 금이 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방사선의 일종인 X선을 찍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양씨는 방사선 촬영 기기를 배관에 넣고 위치를 이리저리 옮겨가면서 사진 122장을 찍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따르면 양씨가 촬영을 끝낸 뒤 사진을 확인한 A업체의 현장 관리자들은 방사선 사진이 전혀 찍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는 기기의 안전 장치가 풀려 기기 내부에 들어가 있어야 할 방사성동위원소(방사선을 내는 물질) 일부가 외부로 노출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또 양씨가 사진을 찍는 내내 방사선에 피폭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뜻했다. 방사선은 냄새도 색깔도 없기 때문에 양씨는 작업 중 자신이 피폭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A업체 관리자들은 양씨를 즉각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기기 이상 사고도 나흘 뒤인 7일에야 본사에 보고했다. 그러나 본사 보고 당시에도 양씨의 피폭 가능성에 대해선 알리지 않았다. 더구나 본사는 이마저도 방사선 안전규제기관에 신고하지 않았다.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원자력 관련 사업자는 방사선 장해가 발생했을 때 진료 등 필요한 조치를 즉각 취하고 4시간 이내에 원안위에 구두보고를 해야 한다. 원안위 관계자는 “A업체 관리자들의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라고 말했다.

사고 이후 양씨는 손에서 통증 등 이상 증상을 느끼고 약국에서 화상 연고를 사다 발랐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았고, 사고 5일 뒤인 8일부터는 손 피부에 붉은 얼룩(홍반)이 나타났다. 이후 손이 부어 오르기(수종) 시작하더니 급기야 피부가 허는 궤양 증상까지 이어졌다. 원안위에 따르면 증상이 심해지는데도 양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탓에 월급을 받지 못할까 봐 피해 신고는커녕 회사에 치료 요구조차 하지 못했다. 뒤늦게 양씨의 손 상태를 알게 된 회사 동료의 도움으로 양씨는 피폭된 지 2주가 지난 지난해 12월17일 처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 한 관계자가 방사선 관련 작업 현장에서 안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이 사진은 이번 평택 방사선 피폭 사고와 무관). 원안위 제공
원자력안전위원회 한 관계자가 방사선 관련 작업 현장에서 안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이 사진은 이번 평택 방사선 피폭 사고와 무관). 원안위 제공

조카의 고통을 보다 못한 양씨의 이모는 지난 1월 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피해 사실을 제보했다. KINS의 상급 기관인 원안위는 곧바로 현장 조사에 착수했고, 조사 결과 A업체의 안전 규정 미준수 사례들을 추가로 적발했다. 방사선 사진 촬영 작업은 규정상 2인 1조로 해야 하는데, 양씨는 혼자 했다. 또 양씨와 동료 3명은 이전에도 방사선측정기를 지급받지 못한 채 방사선 사진 촬영 작업을 한 경우가 있었다. 방사선 관련 종사자들은 기준치 이상의 방사선에 노출됐는지를 바로 바로 확인해야 하는 만큼 반드시 방사선측정기를 몸에 지닌 채 작업해야 한다. 사고 당시에도 방사선측정기가 없었던 양씨는 얼마나 많은 양의 방사선에 피폭됐는지조차 확인이 불가능하다. 더구나 양씨와 일부 동료는 방사선 기기를 다루는데 필요한 직장 내 안전교육도 받지 못했다. 모두 원안법 위반이다.

지난달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일어난 10대 안전문(스크린도어) 정비공 사망 사고도 2인 1조 작업 등 기본적인 안전규정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했다. 피해 정비공이 소속된 안전문 수리업체 은성PSD가 작업 일지를 조작하며 규정 위반을 은폐하려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번 평택 방사선 피폭 사고와 유사하다. 피해 직원이 신입 사원으로 회사측에 개선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점 역시 비슷하다.

원안위는 현장 조사 중 방사선 전문 의료기관인 한국원자력의학원에 양씨의 진료를 의뢰했다. 방사선 피폭은 일반 병원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특수 분야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양씨는 현재 양손 모두 겉으로 보기엔 정상과 다름 없을 만큼 회복돼 A업체에 다시 출근하고 있다. 그러나 원안위에 따르면 양씨는 방사선 피폭의 영향으로 피부가 너무 얇아져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작은 자극에도 통증이나 불편을 느끼는 등 후유증을 겪고 있다. “일상적인 일을 할만큼 나을 때까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원안위 관계자는 전했다. 원안위 조사로 법 위반 사실이 확인되자 A업체는 뒤늦게 잘못을 인정하고 이번 사고를 산업재해로 처리한 뒤 양씨의 업무를 비파괴검사가 아닌 다른 분야로 전환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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