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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닥터’ 장혁진 “제2의 ‘명존쎄’라고요?”

입력
2016.12.2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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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진은 오랜 무명 시절을 두고 “한숨과 술병이 함께 쌓여가던 날들”이라며 “마음고생은 했지만 배우로서 깊이를 더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최재명 인턴기자
장혁진은 오랜 무명 시절을 두고 “한숨과 술병이 함께 쌓여가던 날들”이라며 “마음고생은 했지만 배우로서 깊이를 더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최재명 인턴기자

의학드라마에 의사 역할로 출연하는데 14회까지 수술용 메스는 딱 한번 잡아봤다. 그것도 명색이 대학병원 외과과장인데 말이다. 아픈 환자는 돌보지 않고 병원 권력자 편에 서서 권모술수와 중상모략을 일삼으며 출세만 노리고 있으니, 딱 ‘명존쎄’(명치를 몹시 세게 때리고 싶다는 뜻) 감이다. 그런데도 왠지 밉지가 않다. 악역이지만 허당에 가까워 키득키득 웃음까지 자아낸다. 한 시청자는 만화 ‘포켓몬스터’의 사랑스러운 악당 ‘로켓단’에 비유하기도 했다.

배우 장혁진(45)이 껄껄 웃으며 항변 아닌 항변을 했다. “어딘가 좀 모자라 보이겠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악행을 펼치고 있는 겁니다.” 그는 시청률 20%대 인기를 끌고 있는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단연 돋보이는 신스틸러다. 김사부(한석규)를 견제하기 위해 돌담병원으로 파견된 거대병원 외과과장 송현철을 연기하며 요새 미움깨나 받고 있다는 장혁진을 만났다.

이름은 낯설지만 얼굴은 낯익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다 어느 지점에서 무릎을 탁 친다면, 아마도 영화 ‘부산행’일 확률이 높다. 이 영화에서 비열한 용석(김의성)에게 동화돼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가던 KTX 승무원 기철 역을 맡아 1,000만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낭만닥터 김사부’도 ‘부산행’ 덕분에 캐스팅됐다.

‘부산행’을 본 유인식 PD에게 송현철 역 제안을 받은 장혁진은 “도윤완 원장(최진호)의 수족인 송현철까지 악랄하면 시청자들이 피곤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캐릭터 해석을 달리했다. “송현철은 도윤완의 ‘꼬랑지’라고 생각했어요. 동물 꼬리를 보면 몸통에 붙어 있지만, 자기 멋대로 살랑거리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당신은 내가 당신의 말을 잘 듣는다고 생각하겠지만 과연 그럴까?’(웃음) 약간 의뭉스러운 느낌을 풍기고 싶었습니다.” 못되게 굴다가도 김사부의 호통에 바짝 주눅드는 송현철에겐 악역보다 밉상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린다. 더 자주 등장해 활약해 줬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니 손사래를 친다. “아유, 무슨 말씀을. 제 분량에 아주 만족합니다.(웃음)”

‘낭만닥터 김사부’의 거대병원 외과과장 송현철(오른쪽)은 장혁진의 개성 있는 연기 덕분에 밉지 않은 악역 캐릭터가 됐다. SBS 제공
‘낭만닥터 김사부’의 거대병원 외과과장 송현철(오른쪽)은 장혁진의 개성 있는 연기 덕분에 밉지 않은 악역 캐릭터가 됐다. SBS 제공
‘부산행’에서는 승무원 기철(왼쪽) 역을 맡아 ‘원조 명존쎄’ 김의성과 연기 호흡을 맞췄다. NEW 제공
‘부산행’에서는 승무원 기철(왼쪽) 역을 맡아 ‘원조 명존쎄’ 김의성과 연기 호흡을 맞췄다. NEW 제공

장혁진은 거듭 자신을 낮추지만 사실 그의 연기 이력은 어마어마하다. 올해만 해도 영화 ‘스플릿’ ‘커튼콜’ ‘럭키’ ‘계춘할망’ ‘우리 연애의 이력’ 등이 연달아 개봉했고, KBS2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에도 얼굴을 비쳤다. 영화 ‘내부자들’과 ‘강남 1970’(2015), MBC 드라마 ‘화정’(2015) 등 화제작들도 여럿 그의 필모그래피에 올라 있다. tvN 드라마 ‘미생’(2014)에서는 한석율(변요한)과 성대리(태인호)가 속한 섬유1팀의 문과장 역으로 9회에 한 차례 출연할 예정이었는데 13회에 재등장해 종방까지 계속 나왔다. 이렇듯 그의 연기는 배역의 크기에 상관없이 단숨에 눈길을 붙든다. 그는 “작은 역할이 존재감 없이 기능적으로 쓰이지 않게 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잔머리 굴리는 것”이라고 괜한 농담도 덧붙인다.

더 눈에 띄는 이력도 있다. ‘부산행’ 이전에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대부분에서 목소리 연기를 했다. ‘연상호의 페르소나’라 해도 과하지 않다. 눈앞에서 그의 목소리 연기를 직접 보고 있으니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연 감독이 차기작 ‘염력’에는 저를 안 부르네요. 그래도 1%의 희망은 아직 품고 있다는 사실을 연 감독에게 ‘꼭’ 전하고 싶네요.” 능청스럽게 시무룩한 표정을 짓던 장혁진이 유쾌하게 웃었다.

‘미생’의 김원석 PD가 “장혁진은 코미디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을 지녔다”고 평했는데 실제 그는 드라마에서보다 훨씬 더 유머러스하다. 과거 대학로에서 연극하던 시절에 방송사 개그맨 특채 제안도 받았다고 한다. 1995년 당시 최고 인기 개그그룹 틴틴파이브와 함께 연극 ‘보병 스토리’를 무대에 올렸을 때였다. 그땐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난타’ 원년 멤버로 4년간 공연했다. 맨 왼쪽이 장혁진, 그 옆이 류승룡, 맨 오른쪽이 김원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난타’ 원년 멤버로 4년간 공연했다. 맨 왼쪽이 장혁진, 그 옆이 류승룡, 맨 오른쪽이 김원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렇게 연극을 하다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를 만났다. 서울예대 연극과 90학번 동기인 류승룡, 충무로 신스틸러 김원해와 함께 원년 멤버로 세계를 누비며 공연했다. 지금도 ‘난타’ 공식 포스터엔 그의 얼굴이 있다. “스물아홉 무렵이었는데, 그새 제가 많이 늙었네요.(웃음)” 4년간 매진하던 ‘난타’를 그만둔 건 연기 갈증 때문이었다. “말을 못하는 배우가 배우인가. 어느 순간 고민이 되더라고요. ‘난타’가 완성도 면에서 다 갖춰졌던 때라 제가 할 몫은 다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난타’가 브로드웨이에 진출할 때 함께 가자는 제안도 받았지만 합류하지 않았어요. 지금 돌아보면 다행이다 싶어요. 배우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순식간에 망가져버리거든요. 자신이 최고라 생각하면 안주하게 되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죠.”

장혁진은 “배우는 끊임없이 스스로 상처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감성이 예민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20여년간 연극 무대를 누비며 생활고로 힘겨웠던 시간들을 떠올리면서도 그가 담대한 건 ‘배우’라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가슴 깊이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늙어 죽을 때까지 긴장할 것”이라고도 했다. “연기는 마치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 같아요. 얼마나 흥미로운지 몰라요. 평생 연기를 하면서 수많은 캐릭터를 만나겠죠. 그 캐릭터들에서 장혁진이라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 그러면서도 매번 새로운 연기를 보여드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장혁진은 “못된 인물을 못되게 연기해 못되다는 반응이 얻으면 연기를 잘했다는 의미 아니냐”며 기분 좋게 웃었다. 최재명 인턴기자
장혁진은 “못된 인물을 못되게 연기해 못되다는 반응이 얻으면 연기를 잘했다는 의미 아니냐”며 기분 좋게 웃었다. 최재명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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