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이고 재미있는 남녀, 연예계선 흥행 보증수표
일상에선 연애 상대로 인기… 똑똑해 보이려 잡지식 공부도
대부분 잘생기고 스펙 좋아, 변종 외모·능력 지상주의 지적도
“ 지거국(지역 거점 국립대) 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박겨례(24ㆍ대학생ㆍ가명)씨가 제시한 ‘뇌섹녀(뇌가 섹시한 여자)’의 조건이다. 그의 여자친구 역시 쿨하고 똑똑한 매력의 소유자라고. 박씨는 “학벌이 좋지 않다는 것은 곧 학창 시절에 놀았다는 얘기”라며 “그런 사람한테는 배울 것이 없을 것 같다”며 말을 잘랐다. 박씨의 이상형 목록에서 학벌이 좋지 않은 여성은 배제된다.
‘뇌섹남녀’라고 불리는 신인류가 등장했다. 뇌섹녀보다 먼저 등장한 뇌섹남은 지난 3월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2014 새낱말’에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뇌섹남은‘주관이 뚜렷하고 언변이 뛰어나며 유머가 있고 지적인 매력이 있는 남자’를 말한다. 케이블 방송사 tvN은 뇌섹시대, 문제적 남자라는 타이틀로 소위 뇌섹남들을 예능프로그램 전면에 내세웠다. 이른바 ‘언론 고시’로 KBS, 조선일보, YTN 입사 시험을 모두 통과한 ‘취업깡패’ 전현무를 필두로, 하석진 김지석 이장원 등 훈훈한 외모와 고스펙까지 갖춘 남자들이 등장한다. 아이돌 가수 EXID의 멤버 하니가 일으킨 ‘뇌섹녀 열풍’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어, 영어는 물론 미적분까지 척척 풀어내는 하니는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뇌섹녀의 매력을 선보이며 대한민국 남성들의 심장을 저격했다.
뇌섹남녀는 단연 연애 시장에서도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김혜리(22ㆍ대학생)씨는 “뇌섹남은 똑똑하고 배울 점이 많은 남자”라며 “어른스러워 보이고 나를 잘 보살펴 줄 것 같다”고 말했다. 홍승우(30ㆍ교사ㆍ가명)씨는 “예쁜데 멍청한 여자와 덜 예쁘지만 똑똑한 여자가 있다면 고민 없이 후자를 택하겠다”고 말했다. 홍씨는 “그냥 예쁜 것보다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가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며 “중학교 시절에도 반에서 1등 하는 여자애를 남몰래 흠모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혼기가 찬 젊은이들은 뇌섹남, 또는 뇌섹녀와 짝을 이루는 것이 2세를 위한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뛰어난 두뇌와 외모 자본을 갖춘 이성이라면 자녀 세대에게 우월한 유산을 물려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성욱(31ㆍ회사원ㆍ가명)씨는 “자녀들의 학업 수준은 엄마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어찌 보면 뇌섹녀를 배우자로 선택하는 것이 2세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채결(29ㆍ은행원)씨는 “여성들이 뇌섹남을 선호하는 것은 결국 남자의 능력과 경제력을 중시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채씨는 “뇌섹남=지적인 남자=돈 잘 버는 남자로 이어지는 구조가 지금의 뇌섹남 열풍을 만든 것”이라고 꼬집었다.
스스로 뇌섹남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도 있다. 광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이인범(25)씨는 “뇌섹남이라면 인사이트(insightㆍ통찰력)가 생명”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드라마 셜록에 등장하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이씨의 롤모델이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 정통할 수는 없는 법. 이씨가 선택한 방법 역시 얕은 지식의 습득이다. 이씨는 “책도 읽기는 하지만 주로 인터넷을 통해 30분 정도 정보들을 수집한다”고 설명했다. 이씨의 내공은 만남의 장에서 효험을 발휘한다. 상대가 어떤 말을 건네든 일단 아는 척,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이씨의 주특기. 이씨는 “미팅에 나가면 적어도 한 명 정도는 나에게 반하는 것 같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자랑만 늘어놓는 폭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신동호(28ㆍ연구원)씨는 이씨의 방법에 노련미를 더한다. 신씨는 “일반적인 상식을 많이 갖추는 것도 뇌섹남이 될 수 있는 방법이지만 포인트는 상대가 나를 멋있다고 느껴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여자들은 자랑을 많이 하는 남자들을 재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는 척을 하되, 자랑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잡지식을 쌓는 것은 뇌섹남녀가 되기 위한 조건의 일부에 불과하다. 뇌섹남녀는 기존의 ‘엄친아’, ‘엄친딸’과는 다른 차원의 인류다. 엄마를 통해 ‘전해’들었던 미지의 인물과 달리 외모 자본을 전면에 내세운다. 애석하게도 외모가 8할이요, 뇌가 2할인 셈이다. 뇌섹남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김혜연(22ㆍ대학생ㆍ가명)씨는 “잘생기면 당연히 좋다. 오히려 학벌은 덜 중요한 것 같다”면서 “잘생기면 싸우다가도 얼굴 보고 화가 풀린다더라”고 전했다. 능력 있는 여성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이병무(26ㆍ대학생)씨는 “당연히 성격과 외모도 뇌섹녀의 조건”이라며 못을 박았다. 오상진 아나운서가 이상형이라는 윤희영(27ㆍ회사원ㆍ가명)씨는 “인스타그램으로 늘 그의 모습을 감상하곤 한다”며 “오상진을 좋아하는 이유의 60%는 그가 똑똑해서이고, 나머지 40%는 그가 잘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모든 걸 다 갖춘 듯 보이는 뇌섹남녀가 결국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소외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는 뇌섹남녀 현상에 대해 “지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것들까지 중시되는 것은 대중들의 우상이 그만큼 진화한 것”이라며 “이러한 현상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트렌드로 자리잡게 되면 대중들도 일상 생활에서 상대방을 평가하는 기준점이 훨씬 높아지거나 객관성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상대적으로 뇌섹남녀의 기준에 미달되는 사람들은 사회적인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이건우인턴기자(서울시립대 경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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