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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언어보다 앞선 소통 수단, ‘보려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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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언어보다 앞선 소통 수단, ‘보려는’ 마음

입력
2018.04.22 13:1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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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이어주는 창문이며 성공을 위한 열쇠이다. 과거와 미래가 소통하는 것도 언어를 통해서다. 언어의 탄생으로 인류의 지식은 축적됐고 문명은 꽃을 피웠다. 그런데 상대방의 생각을 헤아리기 어렵고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달리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소통은 매우 어렵다. 특히 낯선 곳 낯선 사람과 만나면 소통이 여간 만만치 않다. 외국에 나가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bill)를 달랬더니 맥주(beer)가 나온 마냥 웃기에도 민망한 일을 한 두 번은 겪었을 터이다. 남의 부탁을 들어 줄 때는 외국어가 술술 통하다가도 내가 부탁하려 들면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 심지어 ‘맥도날드’ 발음도 못 알아듣는 체하는 외국인도 있다. 두(two) 개를 달라면 무엇이든 꼭 네(four) 개를 줘 곤란해하던 선배도 있다.

아마도 소통의 핵심이 관심이라서 그럴 것이다. 관심은 다른 사람의 의도와 처지를 잘 보려는 마음이다. 잘 ‘보려는’ 마음에는 포용, 관용, 용서와 같은 너그러운 감성과 이성적 영역인 의지까지 다 들어 있다. 영화 ‘러브 액추얼리’에서 다른 나라 사람을 사랑하게 된 주인공은 상대방의 언어를 공부한다. 한 친구는 성경의 참 맛을 보겠다며 최근 히브리어 공부를 시작했다. 영화 ‘her’ 주인공은 대화가 통하는 컴퓨터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다. 말이 통한다면 무엇과도 사랑에 빠질 수 있고 말이 통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보려는 마음이 먼저다.

사업을 할 때 고객 입장에 서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모든 서비스와 상품을 고객 관점에 맞춰 디자인한 고객여정지도(Customer Journey Map)가 널리 활용된다. 영국 런던에 살았던 전기 기술자 해리 벡은 전기회로도에서 영감을 얻어, 보는 사람이 필요한 정보를 빠르고 쉽게 알 수 있도록 생략과 왜곡이 지나친 지금의 지하철 노선도를 처음 만들었다. 고객여정지도는 이를테면 고객을 향한 기업의 바디랭귀지이고 지하철 노선도는 선의의 거짓말인데 모두 상대를 잘 보려는 마음에서 나온 발명품들이다. SNS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은 주목 받지 못한 영화, 소리를 낼 창구를 찾지 못한 음악, 시장의 파도에서 얼굴도 들이밀지 못하는 상품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들여다 보고 다시 집어 올리는 마법의 솔루션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을 활용한 마케팅이더라도 디지털에 남겨진 수 많은 시그널과 데이터에서 고객의 생각을 잘 들여다 보려는 마음이 결국은 성공과 실패를 가를 것이다.

결혼을 사랑이 가장 시험 받는 공간이라고 말한 게리 토마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남성이 여성과 대화하려면 ‘금성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지혜로운 자세다. 결혼 후에도 로맨스가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 또한 ‘그 후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책의 결말만큼이나 허망하기 일쑤지만 둘 다 여러 세대에 걸쳐 가능하지 않은 것을 기대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 때문에 자꾸 빠져든다. '서로 똑같으리라는' 터무니없이 잘못된 믿음이 남녀에 대한 차이를 좁히는 데 가장 큰 방해가 된다. 저마다 살아 온 삶이 다르듯이 말의 의미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엇이 됐든 ‘다른’ 상대방과 대화할 때마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잘 들여다 보려는 마음을 가지면 다름이 별일도 아니다. 상대방을 잘 보려는 마음을 갖고 말을 걸 때마다 양념처럼 바디랭귀지를 더하면 금상첨화다. 말이든 제스처든 당신에게 준 것들은 다 나에게도 소중한 것들이다. 계산서를 달라는 말과 함께 두 손으로 허공에 작은 네모를 만드는 손짓을 하면서부터 다행히 맥주를 받는 일은 없어졌다. 아까 그 선배는 손가락 두 개를 펴 이번에는 ‘꼭 두 개’를 강조하며 흔들어 댄 탓인지 여전히 네 개를 받고 있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그래서 힘들다.

구자갑 롯데오토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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