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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글쟁이 페달] 마스크 쓰고 자전거 타니 자괴감 들고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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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글쟁이 페달] 마스크 쓰고 자전거 타니 자괴감 들고 괴로워

입력
2017.03.3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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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강 시민공원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한강 시민공원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해를 더할수록 미세먼지가 심각해진다. 야외에서 취미 활동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실감할 것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기자였던 2000년대 초중반 미세먼지 문제를 취재한 적이 있다. “피엠텐(pm10)”이라고 하면, “오후 10시? 그게 뭐죠?”라고 되묻던 시절이다. 실화다. 그만큼 미세먼지에 대해 다들 깜깜했다. 이제 전 국민이 아침이면 미세먼지 수치부터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날씨뉴스에는 짜증과 분노가 넘친다. “중국을 공격하자”는 베스트 댓글도 여러 번 봤다.

얼마 전 세계적 과학잡지인 ‘네이처’에 실린 연구는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국과 일본의 사망률을 높였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중국 동부해안 공장지대가 한국 미세먼지 수치에 주는 영향은 명백해 보인다. 다만 그게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선 학계에서도 논의가 분분하고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확실히 문제다. 하지만 그것만 문제인 건 아니다. 한국 내 화력발전소, 엄청난 숫자의 경유차 등에서 나온 오염물질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2차 초미세먼지’가 되는 현상도 주요 원인이다. “생선구이” 운운은 헛소리로 치부한다 쳐도, 미세먼지를 전부 중국 탓으로 돌리는 태도 또한 합리적이진 않다.

동북아의 모르도르, 서울 시티
동북아의 모르도르, 서울 시티

미세먼지 이슈는 지금보다 더 진지하고 철저히 공론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지면은 자전거 칼럼이다. 아무래도 환경 문제의 정책 대안을 논하기에 최적의 공간은 아닌 것 같다. 그러므로 오늘은 한 사람의 자전거 동호인으로서 미세먼지 관련해 실용적인 정보를 공유하려 한다. 주제는 ‘미세먼지 마스크 3종 사용기’다. 물론 이건 ‘마스크를 쓴 상태로 자전거타기(라이딩)을 했다’는 뜻이다. 봄철 내내 미세먼지 상태가 나쁘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야 한다면 답답함을 무릅쓰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다. 문제는 마스크를 한 상태에서 호흡이 얼마나 편한가다. 아무리 먼지를 잘 막아도 숨쉬기가 지나치게 답답하다든가 착용감이 나쁘면 라이딩시 사용하기 어렵다.

어디서 연구비 지원을 받은 것도 아니고, 논문을 써서 학계에 발표할 것도 아니므로 실험설계는 대충 대충이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서, 각기 다른 마스크를 쓰고 약 40km 정도 한강에서 자전거를 탔다. 라이딩한 날의 미세먼지 수치는 매번 달랐는데, 대략 150~200(CAI 기준) 정도였다. 생각해보니 내 몸 상태도 매번 달랐던 것 같다. 어떤 날은 새벽까지 ‘떡이 되도록’ 술을 마셨고, 어떤 날은 감기 기운으로 기침을 했으며, 또 다른 어떤 날은 몸 상태가 양호했다. 아무튼 실험 환경이 전혀 균일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실험 설계 또한 엉망이었단 점을 독자들께선 유념해주시기 바란다. 강조하지만, 마스크는 물론 자비를 주고 직접 구입했다. 또한 이 실험의 주된 목적은 마스크의 기본성능(미세먼지 여과)에 대한 측정이 아니라, ‘마스크를 쓴 상태로 고강도 라이딩 시 얼마나 호흡이 편한가’이므로 행여 오해하는 일이 없길 당부해 둔다.

3차원 마스크
3차원 마스크

1번은 예전 일본여행 갔을 때 사온 코와(Kowa) 사의 ‘3차원 고밀착 마스크’다. 빨간 글씨로 크게 “PM 2.5 대책”이라고 박혀 있어서 “우왕 굿!”을 외치며 대책 없이 쓸어 담았던 기억이 난다. 평범한 디자인의 하얀 마스크다. 코 부분에는 밀착클립이 있다. 다른 마스크들에 비해 가볍고, 부피도 작다. 귀에 거는 방식이어서 탈착이 용이하고 압박감도 매우 작다. 그러나 이건 곧, 밀착력이 떨어진다는 의미이므로 미세먼지를 차단하는 데선 단점이다. 그리고 코 밀착클립이 있다 해도 귀에 거는 방식은 아무래도 밀폐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고강도 라이딩시 뜨거운 입김이 눈 주변으로 새어나간다. 당연히 안경이나 선글라스에도 약간 김이 서렸다. 또한 재질 특성상 땀과 침과 콧물로 금세 젖어버린다. 이 단점들은 일상용 미세먼지 마스크 대부분이 아마 비슷할 것이다. 가격이 저렴한 편이지만 현재(2017년 3월말) 이것과 동일한 제품은 한국 수입사 홈페이지에는 보이지 않는다.

9002v 마스크
9002v 마스크

2번은 3M 사의 9002V 제품이다. 배기밸브가 달린 산업용 2급 방진 마스크다. 이 회사에서는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산업용 마스크가 나온다. 기능에 대한 평가는 높지만 대부분 “나, 산업용!”이라 적혀있는 것처럼 부담스럽게 생겼다. 사이클을 탈 때는 부피가 큰 물건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무조건 작고, 가볍고, 접히는 물건이 선호된다. 9002V는 다른 산업용 마스크들과 달리 반으로 납작 접히는 것이 장점이다. 그리고 배기밸브가 있어서 습기가 밖으로 상당 부분 배출된다. 고무밴드로 고정하는 타입이므로 귀에 거는 방식보다 탈착은 불편한 반면, 밀착성이 좋고 안경이나 선글라스에 김이 서리지도 않았다. 호흡이 편한 정도는 1번과 비슷했다. 기본적으로 1회용 제품이라서 라이딩을 하면 역시 습기로 축축해지지만, 1번 제품보다 튼튼하고 질긴 느낌이다. 현재 인터넷을 통해 개당 1천원 전후로 구입할 수 있고, 이 정도면 품질과 기능에 비해 저렴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군데군데 고정부를 스테이플로 고정해 놓았는데, 사용시 거슬리는 느낌은 전혀 없지만 사고가 날 경우 이 부분이 이탈해 얼굴에 상처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스포스타 마스크
스포스타 마스크

3번은 본격적으로 자전거 라이더를 겨냥해 만들어진 마스크로, 영국 레스프로(Respro) 사의 스포스타 마스크다. 신축성 있는 외피와 교체형 내부 필터로 구성되어 있고, 벨크로로 고정시키는 방식이다. 이 마스크는 일단 비주얼이 압도적이다. 착용하자마자 “임모탄이신가?”란 놀림을 받았다. 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손이 가지 않을 수 있다. 이 마스크는 세 종류 중 밀착력이 가장 높으나 그만큼 압박감도 크다. 좌우 양쪽에 배기밸브가 달려 있어서 배기밸브가 한 개 뿐인 2번보다 호흡이 더 편할 것 같지만, 오히려 약간 더 답답한 느낌이다. 얼굴이 조이는 느낌이 너무 커서 일 수도 있는데 이 부분은 단언하기가 어렵다. 유지비가 비싸다는 것도 단점이다. 마스크 자체도 6만 원 가량으로 고가인데, 교체용 필터 역시 저렴하지 않다.

임모탄 조는 자전거와 기본적으론 무관합니다.
임모탄 조는 자전거와 기본적으론 무관합니다.

마스크 쓰고 자전거를 타는 실험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하며 자전거를 타야 하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다. 특히 힘든 오르막을 올라갈 때 마스크의 한계가 극명해졌다. 산소부족으로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기분이라 결국 마스크를 벗고 말았다. 맑은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 공공재인지가 절실하게, 그리고 절박하게 다가왔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이렇듯 병든 지구를 몸으로 느끼고, 인간의 탐욕을 직시하는 경험이다. 그래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우리의 기본권이 얼마나 짓밟히고 있는가를 절감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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