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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작고 까만 절망에 길 잃지 않기를

입력
2017.06.1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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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난 반점은 소녀 눈에만 점점 더 커지는 것만 같다. 청춘이여, 작고 까만 절망에 길 잃지 않기를. 엣눈북스 제공
얼굴에 난 반점은 소녀 눈에만 점점 더 커지는 것만 같다. 청춘이여, 작고 까만 절망에 길 잃지 않기를. 엣눈북스 제공

검은 반점

정미진 글, 황미옥 그림

엣눈북스 발행ㆍ56쪽ㆍ1만6,000원

당분간 집밖에 나가고 싶지 않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뜻밖의 불행이 닥쳤을 때, 스스로를 자책한다. 무능력하다, 처신을 잘못했다고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장애물들이 놓인 인생이라는 달리기시합에서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을까.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공무원 시험에 낙방하기도 하고, 번번이 입사시험에 떨어져 백수 신세가 되기도 한다. 이 과정을 무사히 지나온다 한들, 결혼과 자식문제, 명예퇴직 등등 인생 고비고비 마다 넘어야 할 산들이 태산이다.

혈기 넘치고 당당하며 자신만만해야 할 청춘들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주눅 들고 위축되어 보인다.

거울 앞 소녀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얼굴에 나 있는 검은 반점을 바라보고 있다. 반점은 어느새 점점 더 커지는 것만 같고, 가리고 숨길수록 사람들이 더 쳐다보는 것 같다. 엄마와 목욕탕에 가서 깨끗이 닦아내 보고 싶지만 낙인처럼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등에도 검은 반점이 있다. 자신과 꼭 닮은 반점을 가진 사람을 만나 사귀어도 본다. 하지만 그 지긋지긋한 점 때문에 결국 그도 싫다. ‘내 몸에 검은 반점이 살고 있는 것일까, 검은 반점 속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일까?’ 이대로라면 검은 반점이 소녀의 인생을 삼켜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연필로 섬세하게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들은 주인공이 타인들이 가진 다른 색깔의 반점을 발견해 가면서 점차 컬러로 가득한 세상으로 변화된다. 책 속의 접힌 날개를 펼치니 파란 바다와 눈부신 하늘아래 아름다운 꽃과 마을이 보인다. 눅눅해진 마음까지 상쾌해지는 장면이다.

만지기도 조심스러운 그림책이다. 표지가 벨벳으로 되어 있어 손 자욱이 남으니 책을 펼칠 때도 신경을 쓰게 된다. 마치 자신을 소중히 다뤄달라고 말하는 듯하다. 엣눈북스는 시나리오 작가인 정미진씨가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만드는 독립출판사이다. 묵묵히 서점가에서 인지도를 올리고 있는 것은 그만의 깊이를 지닌 작품들을 출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만든 그림책으로는 ‘있잖아, 누구씨’, ‘잘 자, 코코’, ‘깍은 손톱’등이 있다.

청춘은 모래알처럼 작고 초라하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둘러보면 그 흩어진 수많은 모래알들이 햇빛에 찬란히 반짝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이 깔고 앉은 어두운 그림자는 그 빛에 비하면 한 톨 검은 점에 불과한 것이다. 그 작고 까만 절망에 사로잡혀 부디 길을 잃지 말기를. 오점과 불행이라는 상처가 시간이 흘러 단단한 굳은살로 박이면, 마침내 세상과 싸울 남다른 개성과 독특한 매력이라는 밑천이 되기도 하니까.

소윤경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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